왕상 13:1-10

왕상 13:1-10

“보라 그 때에…” 사관은 오늘 사건이 주목을 끄는 사건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건이니 당연히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 벧엘로 왔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일반적으로 선지자를 뜻한다. 굳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기록한 이유는 말씀과 이적이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이거나 거짓 선지자와 구별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로 온 이유는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함이었다.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서 분향하고 있었지만 여로보암 개인을 향한 예언은 아니었다.) 예언은 요시야 왕 때 산당 제사장들을 폐하고 사람의 뼈들을 제단위에서 불사른다는 선언이다. (이 예언은 왕하 23장에서 이루어졌다. 360년후의 사건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예언의 말씀이 이루질 것에 대한 징조로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 제단 곁에 서서 분향을 하고 있던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제단을 만들고 절기를 만들어 새로운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는 그 때에 제단이 제단되지 않게 하는 재를 뿌리는 예언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아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조금의 경외함도 없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을 체포하라고 손을 뻗어 명령을 내렸지만,  여로보암의 손은 말라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쏟아졌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손이 다시 회복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고 여로보암의 손은 다시 회복되었다.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쏟아졌건만, 마른 손이 다시 회복되었건만 여로보암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만든 종교의 지도자로 삼으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왕궁으로 데려가 대접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하나님께서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신 명령을 따라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 갔다.

하나님의 사람의 마음이 잠깐 흔들렸을까? 그는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되풀이 하면서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고 할 지라도”라는 가정구를 붙여 대답했다. (ㅎㅎ 조금 흔들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예루살렘과 벧엘은 10마일 (약 16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하프마라톤보다도 가깝다.  그래도 반나절 걸어서 가야하고 다시 반나절 걸어서 돌아와야 한다. 그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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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보내신다. 제단이 무너져 재가 쏟아지는 이적과 자신의 마른 손이 회복되는 이적을 목격하고 체험하면서도 여로보암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곳이 없었다.

왕상 12:25-33

왕상 12:25-33

여로보암. 솔로몬이 청년 여로보암의 부지런함을 높이 평가하여 요셉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결국 망명에서 돌아와 요셉족속을 중심으로 한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된다. 그가 부지런히 잘하는 일이란 노동감독이었다.

왕이된 여로보암에게 기다리는 일 역시 노동감독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왕궁도 필요하고 요새도 필요했다. 건축에 매진하던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의 중심은 여전히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여로보암에게 필요했던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조금만 내려가면 실로였다.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야 했다. 이미 죽었다면 남북전쟁을 막은 스마야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다른 선지자가 있었을 것인데)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났다. ‘자기 마음대로’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

금송아지도 만들도, 산당도 만들고, 레위 자손이 아닌 자로 제사장을 삼고 심지어 절기도 자기 마음대로 정했다고 사관은 기록한다.

자기 마음대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를 정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잡는데는 성공했을 지 몰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잡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왕상 12:12-24

왕상 12:12-24

삼일이 지났다. 여로보암과 온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다. 이들의 순종적인 자세에 르호보암은 자신이 세겜으로 온 이유, 즉 이스라엘 왕 오디션에 참석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마치 이미 왕이라도 된 듯한 기세로 (심사위원 앞에서) 포악한 말을 뿜어 냈다. 르호보암은 원로의 자문대신 철부지 친구들의 조언을 따랐다.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하겠다.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부리겠다.” 백성이 아닌 노역자를 대하는 자세였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백성들도 르호보암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관은 이것이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고 기록한다.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오디션에 실패하였다. 다만 유다지파의 왕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노동감독관 아도람을 내 보내 백성들을 노역자 취급하였다. 백성들은 이미 르호보암 정권으로부터 마음을 돌렸다. 백성이 아니라 노역자로 대우한다는 생각에 아도람을 돌로쳐서 죽였다. 그제서야 르호보암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루살렘으로 줄행랑쳤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라는 새패를 썼다.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오직 유다지파만 르호보암을 따랐다. 그리고 한 조각 베냐민 지파가 유다편에 선다. 헤브론과(유다와) 세겜(에브라임)사이에 낀 베냐민지파는 선택해야 했다. 지리적으로는 예루살렘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혈육적으로는 에브라임을 배신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베냐민은 요셉과 같은 배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첫 왕 사울이 바로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다. 베냐민은 작은 지파지만 온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지파였다. 그들의 선택은 유다고 에브라임도 아닌 성전 (하나님의 이름) 이었을 수 있다.

르호보암은 여전히 잠에서 덜 깨어난 듯 유다와 베냐민의 군사를 모아 이스라엘을 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북 이스라엘 편에 서지 않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백성들은 순종했다.

왕상 12:1-11

왕상 12:1-1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다.

세겜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하나님께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아브람(아브라함)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신 곳이다. 아브라함이 그곳에 첫 제단을 쌓았다. [창 12:7]

그리고 출애굽후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여호수아가 마지막 유언을 한 곳이기도 하다.[수 24] 당시 하나님의 성소는 상수리 나무 곁에 있었다.[24:26] (아브라함이 첫 제단을 쌓은 상수리 나무와 같은 나무일 필요는 없겠으나 상징하는 바는 크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고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한 지파다. 그래서 가나안 중심의 노른자 땅을 차지했다. 어쩌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운명적 만남인가? 유다지파의 갈렙은 반대로 남쪽 산지 헤브론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이스라엘이 이렇게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한 ‘여호수아’파와 유다를 중심으로 한 ‘갈렙’파로 이원화된 나라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다가 강성해 지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삼하5:3]

하여간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간 이유는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다윗 당시에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내려 왔는데 역학구조가 헤브론에서 세겜으로 옮겨간 것이다.) ‘여호수아파’에게는 여로보암이라는 새로운 패가 있었다. 애굽 시삭왕에게 망명가 있던 여로보암을 불러와서 대표로 삼았다. 여호수아파의 요구는 노역을 줄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르호보암은 삼일 말미를 얻어 측근들의 자문을 구했다.

솔로몬 왕을 섬겼던 원로 자문단은 여호수아파의 요구를 백성들의 요구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오늘 (이번에 한번)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영원히 왕위를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문했다. 르호보암은 두번째 자문단 친구들과도 의논했다. 이들은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어린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백성들을 노역자로 생각했다.

백성을 백성으로 여기느냐 아니면 노역자로 부리느냐가 르호보암이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답은 낼 나온다. 이미 알지만.

그러나 르호보암의 문제도 왕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솔로몬이 파괴한 것은 선지자제도였다. 어제 적었지만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 ‘선지자’라는 단어는 여로보암에게 분열왕국을 예언한 아히야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아히야는 실로에 기거하면서 예언을 했을 것이나 솔로몬은 들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아들 르호보암에서랴. 르호보암의 실수는 왕위에 대한 문제를 원로들과 아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다. 실로로 내려갔어야 했다. 선지자에게 들어야 했다.

 

왕상 11:26-43

왕상 11:26-43

내우외환이라 했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내우다. 느밧이 무슨 일을 했는지 성경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도 일찍 죽었나보다. 그래서 여로보암의 어머니 이름을 스루아라고 기록하면서 과부라고 토를 달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여로보암은 착실하게 자랐다. 솔로몬이 부지런한 청년이 큰 용사가 되는 것을 본 것으로 짐작컨데 솔로몬이 느밧을 총애했을 수도 있겠다. 일찍 죽은 신하의 아들이 잘 자라자 감독의 한 자리를 맡겼다고나 할까.

여로보암을 눈여겨 본 사람은 솔로몬만이 아니었다. 하나님도 계셨다. 솔로몬의 불순종에 대한 벌로 여로보암을 선택하셨다.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솔로몬의 손에서 열지파를 빼앗아 주겠다고 하셨다. 솔로몬의 불순종을 이방신들을 경배하여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길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다윗 집안과 한 지파를 남겨두는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하시면 솔로몬이 죽으면 열 지파를 주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과 여로보암의 언약이다. 이 언약은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모순이다.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리라’와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내 마음에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에 합당해야 한다. 우리가 놓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도 마찬가지다.

아히야와 여로보암의 만남이 솔로몬의 귀에 들어갔다. (정말로 낮말은 새가 듣는다더니 아니 솔로몬이 새와 대화한다더니) 이에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했고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애굽왕 시삭에게로 망명한다. 솔로몬이 사울왕처럼 되어버린 것은 많은 지식이 그의 영혼을 핍절하게 했기 때문은 아닐까? 악령에 시달렸을 것이다. 솔로몬의 사십년 통치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부귀영화의 찬란함의 뒤안길.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을 돌린 (귀를 돌린) 지혜자의 마지막이다. 솔로몬의 역사에서 ‘선지자’라는 단어는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선지자 나단’이후 (왕상 1장) 쭉 없다가 오늘 본문 ‘선지자 아히야’에서야 (11장) 다시 나타난다. 이런 예언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솔로몬의 말로가 이렇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솔로몬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