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47-57] 예파라치

“또 그 민족만을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52]

많은 표적을 행하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예수님의 등장에 기득권자들이 모여 대책을 세운다. 대세가 예수님께 기울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이유는 로마통치하에서 굳건하게 유지되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서였다.

이때 그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예수가 죽으면 기득권을 유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된다고 과대 포장을 하지만 자신들의 유익을 좇은 결론이었다. 소위 대제사장인 가야바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었다.

요한은 예수의 죽음을 “그 민족 (이스라엘)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라고 기록한다.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에는 이방인들을 포함한다고 봐야한다.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좁게 이해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요10:1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려 놓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다. 성부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이유다. [요 10:17]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모의를 성부하나님께서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 아직 선한목자의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신다.

유월절때가 되자 유대인들은 예수를 찾았다. (파파라치들이 이시대부터 있었구나.) 많은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이었던 예수님은 어느새 현상범이 되어버렸다. 물질적 복과 평안을 구하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오늘 날 우리들의 모습도 저 유대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다.

 

시작하면서

그동안 말씀묵상 내용을 위키스페이스와 페이스북을 통해 적어왔다. 그런데 위키스페이스는 유료화 되었고 페이스북에는 말씀묵상보다는 그냥 일상을 담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묵상 공간을 찾다가 워드프레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필명은 thru14mm 로 하기로 했다. 내 카메라에는 14미리 단렌즈가 달려있다. 미러리스라 28미리지만. 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약간 광각이라 피사체가 작게 보인다. 그래서 디테일을 담으려면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약간의 왜곡은 감수하면서도.

나의 성경읽기도 이와 비슷하다. 말씀을 묵상하려면 더 깊이 다가가야 하고 그 결과는 왜곡?에 가깝다. 주관적이라는 의미다. 어디까지나 나의 묵상이다.

garhamkwon은 시간나는대로 내글을 번역해서 올리기로 했다. 아들과 말씀묵상을 나눌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