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12-19] 호산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나갔다. 예수님이 보이기도 전에 저들은 호산나를 외쳤다.
“호산나 (오 구원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로마의 통치로부터 구해 주실 것을 기대했다. 저들은 웅성웅성 대었을 것이다. “죽은자도 살리시는 분이래. 그분이 우리를 로마의 통치에서 구해 주실거야.” “맞아요, 나는 그분이 무덤에서 죽은자를 살리시는 것을 직접 보았어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이 백성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그것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무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무리들의 뜨거운 반응에 바리새인들은 온세상이 그를 따른다고 자조한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현상수배했던 포스터가 대선 주자 선거포스터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저 멀리 나타나시는 예수님!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 위풍당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호산나의 외침은 잦아들 것이다. 시온의 딸들 처럼 무리들도 두려움에 빠져들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일까 의구심이 회자될 것이다.
호산나. 오 구하소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우리 주님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시는 분이시다. 물에 뛰어들어 우리를 구해 주시려고 왕의 옷을 벗어 던지셨다. 그런데 우리는 물에서 건져주심보다 그 후에 보따리도 주실 수 있는지 없는지에 더 관심이 많지는 않은지?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ㅠㅠ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가오” (외모)가 아니라 호산나 구원자로 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