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1-12

사사기 8:1-12 (공동번역)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미디안과 싸우러 나가면서 우리를 부르지 않았으니 어찌 이럴 수 있소?” 이렇게 기드온에게 엄중한 항의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을 여러분이 한 일과 어찌 비기겠습니까? 에브라임의 주운 이삭이 아비에젤의 수확 전부보다 낫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미디안 추장 오렙과 즈엡을 여러분들 손에 부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어찌 여러분이 한 일만큼 클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노기가 풀렸다. 기드온이 요르단 이르렀다. 그와 그가 거느린 삼백 명은 지친 몸으로 강을 건너 추격을 계속하였다. 그는 수꼿에 이르러 그 곳 사람들에게 청하였다. “나를 따르는 이 군인들이 지쳤소. 먹을 것을 좀 주시오. 나는 미디안의 두 왕 제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는 중이오.” 수꼿의 추장들이 대답하였다. “당신 군대에게 빵을 주다니, 당신이 지금 제바와 살문나의 손목이라도 잘라가졌다는 말이오?” 기드온은 “좋소. 야훼께서 제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부치시는 날, 들가시와 찔레로 당신들의 살덩이를 찢어버리겠소.” 하고는 브누엘로 올라가 그 곳 사람들에게 같은 청을 해보았지만 브누엘 사람들도 수꼿 사람들과 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자기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 성의 망대를 헐어버리리라고 하였다. 한편 동방 백성의 전군은 전사자 십이만 명을 내고 만 오천 명이 겨우 살아 남아 제바와 살문나와 함께 카르콜에 진을 치고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데 기드온은 노바와 욕느하 동편으로 목동들의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적진을 들이쳤다. 제바와 살문나는 또 도망을 쳤지만, 기드온은 뒤쫓아가서 마침내 미디안 두 왕 제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군대를 섬멸하였다.

삿 8:1-12
//에브라임 사람들과 기드온의 기싸움. 미디안의 두 추장을 죽여 머리를 가지고 온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이 처음부터 부르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승전의 공을 기드온이 혼자 챙기는 것을 견제한 것이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 두 추장을 죽인 것이 승전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며 에브라임 사람들을 추겨 세우며 다독였다. 이제 기드온은 두 추장이 아니라 미디안 두 왕을 뒤쫓고 있었다. 혹시나 두 추장 대신 두 왕이라는 더 큰 영광(상)을 노렸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한 발 후퇴한 것은 아닐까? //기드온은 계속해서 미디안 두 왕을 추격했다. 추격하는 과정에서 수꼿과 미누엘 두곳 추장에게 먹을 것을 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수꼿 추장과 브누엘 추장은 미디안 두 왕이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이고 여전히 만 오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을 치고 있으니, 삼백 명을 이끌고 추격하는 기드온보다는 여전히 미디안 쪽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수꼿과 브누엘을 저주한 기드온은 잘한 일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저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듯,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드온은 마침내 도망치는 미디안 두 왕을 사로잡고 그 군대를 섬멸했다. 미디안과 연합했던 군사 규모는 전사자 12만명에 마지막에 섬멸당한 1.5만명을 더하면, 도합 13만 명이 넘는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와 비교하면 사오백배 수준이다. 그렇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러나 단순히 전쟁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신들의 싸움이다. 곧 세상의 어떤 신들도, 어떤 신들의 연합도 창조주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의 하나님이시다.

사사기 7:15-25

사사기 7:15-25 (공동번역)

이렇게 꿈 이야기와 그 해몽하는 말을 듣고 기드온은 야훼께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와 일렀다. “일어나라. 야훼께서 미디안 진을 너희 손에 부치셨다.” 기드온은 삼백명을 세 부대로 나누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뿔나팔 하나와 횃불이 든 빈 단지 하나씩을 주고는 이렇게 일렀다. “너희는 나를 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대로 하여라. 내가 적진에 접근해 가서 하는 대로 따라 하여라. 내가 거느린 부대가 나와 함께 나팔을 불면 너희도 적진을 둘러싸고 있다가 나팔을 불며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쳐라.” 기드온이 자기 부대 일백 명을 거느리고 적진에 다다른 것은 한밤중 보초가 막 교대하고 나서였다. 그들은 나파을 불며 손에 든 단지를 깼다. 세 부대가 모두 나파을 불며 단지를 깨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 손으로는 나팔을 불며,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쳤다. 그러면서 적진을 둘려싼 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적군은 온통 갈팡질팡 아우성치며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삼백 명 군대가 나팔을 불어대고 있는 동안 야훼께서 적으로 하여금 저희끼리 마구 칼로 찔러 죽이게 하셨다. 그리하여 스레라 쪽으로 도망치던 적군은 벳시타에 이르렀고 더러는 타밧 건너편 아벨므홀라 냇가에 이르렀다. 납달리 지파와 아셀 지파와 온 므나쎄 지팡에서 불려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을 추격하는데, 기드온은 에브라임 온 산악 지대에 전갈을 보냈다. “내려와 미디안을 막아라. 그들을 앞질러 벳바라에 이르기까지의 요르단 강 나루들을 점령하여라.” 이 소집령을 받고 에브라임 사람은 모두 몰려나와 벳바라에 이르기까지의 요르단 강 나루들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미디안의 두 추장 오렙과 즈엡을 사로잡았다.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즈엡은 즈엡 포도주틀에서 죽이고 계속 미디안을 추격하였다. 오렙과 즈엡의 머리는 요르단 강을 건너 기드온에게 전해졌다.

삿7:15-25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개역개정에서는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라고 번역한다. ‘여호와의 칼, 기드온의 칼’이라고도 외쳤다. 음. ‘기드온 만세’ 나 ‘기드온의 칼’이라고 외쳤다는 부분은 뭔가 편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에 기드온이 편승했다고 그냥 넘어갈 일인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던가? //기드온과 삼백용사! 한 밤의 기습에 동원된 병사는 삼백용사가 맞다. 삼만이 넘는 병사를 돌려보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기드온은 납달리 아셀 므낫세 지파를 불러 미디안을 추격하게 했다. 싸움은 하나님께서 미디안으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셔서 자중지란으로 패하게 하셨는데, 기드온은 전갈을 보내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지파들로 하여금 미디안의 패로를 막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일까?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믿음의 힘센 장사가 되도록 해주셨는데 기드온은 육신적으로 스스로 높아지려고 했던 것 같다. 교만이다. 미디안의 두 추장 오렙과 즈엡을 죽인 머리를 가져오게 한 것 역시 자신에게 왕과 같은 권위가 있음을 과시하려던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 끊임없이 징표를 구했던 기드온은 드디어 사람들로부터도 징표를 얻어내었다.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사사기 7:1-14

사사기 7:1-14 (공동번역)

여룹바알이라고도 하는 기드온과 그가 거느리는 온 군대는 일찍 일어나 엔하롯에 진을 쳤다. 미디안은 거기에서 북편으로 모래 언덕 아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너희의 손에 미디안을 부치지 않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체도 않고 제 힘으로 승전했다고 으스댈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 너는 지금이라도 무서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이 군인들에게 일러라.” 기드온이 지체않고 그들을 떠나가게 하니 이만 이천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다. 야훼께서 다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군인이 아직도 많다. 모두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추리겠다.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라고 내가 일러주는 사람만 너와 행동을 같이하게 하여라. 그러나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 못 된다고 일러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와 행동을 같이할 수 없다.” 기드온이 군인들을 데리고 물가로 내려가니, 야훼께서 이렇게 일러주시는 것이었다. “개처럼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한편에 세우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마구 들이켜는 자들을 다른 편에 세워라.” 그러자 혀로 핥는 자의 수는 삼백명밖에 안 되었고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무릎을 끓고 물을 들이켰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나는 물을 핥아 먹은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리라. 나 이제 미디안을 네 손에 부쳤다.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라.” 기드온은 군인들이 가지고 있던 단지와 뿔을 거두어들이고는 삼백명만 남겨두고 나머지 이스라엘 군대를 모두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다. 미디안 군은 그 아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날 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적의 진지로 내려가거라. 내가 적진을 네 손에 부쳤다. 그러나 만일 내려가기가 무섭거든 먼저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내려가거라. 그리고 그들이 지껄이는 것을 들어보아라. 너는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어 진으로 쳐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부하 부라를 데리고 적진으로 접근해 가보니,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모든 동방의 백성들이 메뚜기떼처럼 거기 평지를 덮고 있었고 낙타는 바닷가의 모래처럼 수없이 많았다. 기드온이 다다라보니, 마침 한 병사가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리떡 한 덩러리가 우리 미디안 진으로 굴러들어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우리 천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뒤엎자 천막은 쓰러지고 말았네.” 친구가 대꾸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일세. 하느님께서 미디안과 이 모든 진을 그의 손에 부치셨군.”

삿7:1-14
//이보다 더 쉬운 싸움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나하나 조목조목 알려주셨다. 기드온은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군인의 수와 상관 없다. 메뚜기떼 같고 바닷가의 모래 같은 적군이라도 삼백명이면 족하다. 오히려 많은 군인을 데리고 싸우면 병사가 많아서 이겼다고 자고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미디안 병사의 해몽. 이방 병사가 기드온을 어찌 알았을까? 더군다나 하나님을 어찌 알았을까? 물론 이방 병사는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냥 신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전쟁을 신들의 놀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들을 기드온의 손에 부쳤다고 해몽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하나님의 영이 이방 병사의 꿈과 해몽에 함께 하신 것이다. 징표를 구하고 또 구하는 믿음이 작은자 기드온을 하나님께서는 이방 병사의 꿈과 해몽을 통하여 믿음이 큰 자, 힘센 장사, 큰 용사로 준비시키신다. 오늘 이야기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로 불신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들려주신다. 종교지도자들의 입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세상이 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사기 6:25-40

사사기 6:25-40 (공동번역)

그날 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비의 일곱 살 된 살진 소를 끌고, 네 부하 열 사람을 데리고 가서 네 아비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곁에 있는 아세라를 찍어라. 그리고 이 산성 꼭대기에 너의 하느님 야훼께 바칠 제단을 차곡차곡 쌓아라. 그리고 그 살진 소를 잡고 찍어낸 아세라 목상을 태워 번제를 드려라.” 기드온은 부하 열 사람을 데리고 야훼쎄서 시키신 대로 하였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과 성읍사람들이 두려워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해치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성읍 사람들이 일어나 보니, 어이없게도 바알의 제단은 헐려 있었고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은 찍혀 있었으며 새로 선 제단 위에는 살진 소가 번제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고 서로 부산을 떨며 조사하고 캐어본 결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한 일임을 알아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요아스를 닦달하였다. “당신 아들을 내놓으시오. 죽여버려야겠소. 바알의 제단을 헐고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을 찍어벼렸는데 어찌 그냥 두겠소?” 요아스는 둘러선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답변하였다. “당신들이 바알을 역성하겠다는 거요? 당신들이 바알을 도울 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바알을 역성하는 사람은 해뜨기 전에 죽을 테니 그리 아시오. 만일 바알이 신이라면,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헐었으니 친히 나서서 기드온을 칠 것이 아니오?” 그날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었다. 바알의 제단을 헐었기 때문에 바알이 그와 맞설 것이라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마침 미디안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백성들을 다 모아가지고 강을 건너 이즈르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기드온은 뿔나팔을 불어 아비에젤 일족에게 따라 나서라고 하였다. 그는 또 전령들을 므나쎄 온 지파에 보내어 므나쎄 지파도 따라 나서라고 불러내었다. 아셀 지파와 즈블룬 지파와 납달리 지파에도 전령들을 보내니 그들도 올라와서 기드온과 합세하였다. 기드온이 하느님께 아뢰었다. “이미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제 손으로 구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이렇게 해주십시오. 보십시오. 제가 타작마당에 양털 한 뭉치를 이렇게 펴놓습니다. 만일 이 양털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고 땅바닥은 말라 있으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제 손으로 구하시려는 줄로 알겠습니다. 정말 그대로 되었다. 기드온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털 뭉치를 짜보니 한 대접 가득 물이 나왔다. 기드온이 다시 하느님께 아뢰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노하지 마십시오. 양털뭉치로 꼭 한 번만 더 시험하게 해주십시오. 이번엔 양털만 말라있고 사방이 땅바닥은 이슬로 젖게 해주십시오. 그 날 밤 하느님께서 그대로 해주셨다. 양털은 말라 있었고 사방의 땅바닥은 온통 이슬로 젖어있었다.

삿6:25-40
//어제 기드온에 대해 살펴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천사는 기드온을 힘센 장사라고 불렀다. 개역개정에서는 큰 용사라고 불렀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일하고 밤에 몰래 일한 기드온에게 적합한 표현일까 묻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힘센 장사라고 부르시면 힘센 장사다. 큰 용사가 아니었어도 큰 용사다. 오늘 25절에 보면’ 기드온은 적어도 십부장이었다. 부하 열사람이 있었다. 34절부터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기드온이 힘센 장사, 큰 용사로 이스라엘을 이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작은자로 하나님께 징표를 구한다. 양털로 하나님의 뜻을 반복해서 묻는 것은 확실히 불신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믿음이) 작은 자 기드온의 요청을 들어주셔서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뜻을 확인시켜 주셨다. 이렇게 기드온을 힘센 장사로 (믿음이 큰 용사로) 만들어 가셨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험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병이 낫는 것으로, 복권에 당첨되는 것으로,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는 것으로, 시험을 잘 보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어서는 소용이 없다. 대신 내가 손해보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시험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 그 말씀에 순종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하나님만으로 기뻐해야 한다. 적어도 나의 유익과 무관해야 한다. 나를 기쁘게 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아니어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굳이 하나님께 징표를 구할 필요가 없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

사사기 6:11-24

사사기 6:11-24 (공동번역)

야훼의 천사가 아비에젤의 후손 요아스의 성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와서 앉았다.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밀 이삭을 포도주틀에서 떨고 있었는데, 야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일렀다. “힘쎈 장사야,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기도온이 반문하였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왜 우리가 지금 이 모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실 때 야훼께서 온갖 기적을 행하셨다는 말을 우리는 선조들에게서 들었습니다마는 그 기적들이 지금 다 어디 갔습니까? 지금은 야훼께서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부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야훼께서는 그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러 가거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기드온이 말하였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아시는 대로 우리 문중의 부대는 므나쎄 지파에서도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집안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야훼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미디안을 한 사람 해치우듯 쳐부수리라.” 기드온이 말하였다. “정말로 제가 눈에 드셨거든,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표를 보여주십시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여기를 떠나지 말고 계십시오. 예물을 내다 드리겠습니다.”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이자리에 있겠다.” 이 말을 듣고 기드온은 물러가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잡아 요리하고 가루 한 에바로 누룩 넣지 않는 떡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기 바구니에 담고 국물은 그릇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에 있는 그에게 가져갔다. 기드온이 오는 것을 보고 야훼의 천사가 그에게 일렀다. “고기하고 누룩 넣지 않은 떡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은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자, 야훼의 천사는손에 든 지팡이를 뻗쳐 그 끝을 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떡에 대었다. 그러자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떡을 살라버렸다. 야훼의 천사는 그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야훼의 천사라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오, 주님 야훼여, 제가 주님의 천사을 대면해 뵈었군요!” 야훼께서 “안심하여라, 너는 죽지 않을 테니 두려워하지 마라.” 하셨다. 그리하여 기드온은 거기에서 야훼께 제단을 쌓아 바치고는 그 제단을 “안심시켜 주시는 야훼”라 이름지어 불렀다. 그 제단은 이날까지도 아비에젤의 성 오브라에 서 있다.

삿6:11-24
//기드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임마누엘이다. 천사의 첫말은 “하나님이 기드온과 함께 계신다” 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내가 너를 친히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이처럼 기드온에게 주어진 사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임마누엘이다. 성도가 누려할 복도 사명을 받는 것보다 임마누엘이 우선이어야 한다. //이에 반하여 기드온은 현실만 직시하느라 번번히 임마누엘을 놓치고 만다. 천사와 대면하면서도 하나님을 뵙지 못한다. 그래서 받은 사명에 대해 주저한다. 결국 그는 세상 다른 신을 섬기듯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가지러 갔다 온다.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는 것을 기드온은 몰랐다. //기드온은 세상 방법으로 제물을 바쳤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바친 제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받으셨다. 그제서야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천사와 대면한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천사를 본 기드온에게 죽지 않을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안심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를 보고는 살자가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을 대면했다고 기록에 남은 사람들은 야곱이든 모세든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든 혹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목격한 아브라함이든 이사야든 에스겔이든 욥이든 다 죽지 않았다. 곧 하나님을 대면하면 누구나 영적으로 죽은자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죽은자가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뵙게 된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대면하여 볼 수 없다. 그래서 임마누엘을 확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1세기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그 이후로도 성도는 성도 안에 거하시는 예수의 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우리도 예수의 영이 거하시는 형제자매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 예수의 영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나를 통해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을 볼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죽을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가 생명을 얻는다.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18:13) 하고 말씀하시며, 이 세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가르치셨다. 나의 예배(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뿐이다. 아버지 하나님,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