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5:1-14

출애굽기 5:1-14 (공동번역)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을 광야로 내보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나 파라오는 야훼가 누군데 그의 말을 들어야 하냐며 이스라엘을 내보낸다는 당치도 않은 말이라며 거절했다. 모세와 아론은 히브리인의 하느님께서 찾아오셨으니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 하느님 야훼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야훼께서 질병이나 전쟁의 피해를 입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집트 왕은 호통치며 모세와 아론이 히브리 사람들이 일을 못하게 부추긴다며 그들을 쫓아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의 숫자가 이집트 사람보다 많아졌는데도 히브리인에게 노동을 시키지 말라는 거냐며 모든 공사 감독과 현장 감독을 불러 히브리 사람들에게 흙벽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짚을 공급하지 말고 스스로 모아서 벽돌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렇다고 생산량을 줄여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히브리인들이 일하기 싫어서 하느님께 제사드리러 가게 해달라고 떠들고 있으니 전 보다 더 심한 일거리를 주어 모세와 아론의 허튼소리에 귀를 기울일 겨를도 주지 마라고 명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에 두루 흩어져 짚여물로 쓸 짚을 모아들어야 했다. 생산량도 맞춰야 했다. 공사 감독들은 생산량을 못맞추면 매를 들며 다그쳤다.

출5:1-14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찾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한다. 모세와 아론은 야훼 하나님을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고 바로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질병과 전쟁의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바로에게 말했다. 그러나 야훼(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들을리 없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면 태양의 아들인 자신이 충분히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히브리인의 신(하나님)이 질병과 전쟁의 신이라면 제국을 이룬 이집트의 신이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모세와 아론처럼 (기독교의 신으로) 제한하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예수를 물질과 건강과 형통의 하나님으로만,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소개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요 창조주가 아닌가? //오늘날 섣부른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메세지는 모세와 아론이 전한 메세지처럼 거절당하고 있다. 긁어 부스럼이랄까? 오늘날 교회는 더 부자가 되어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만사형통해야 믿음이 좋은 것으로 평가한다. 그래야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세상 가치관을 따라 더 가지려고 한다. 우리가 가진 복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아니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말만 한다면, 우리 신앙에도 긁어 부스럼이 생기고 만다. //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주신 말만을 바로에게 전한 것일까? 물론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주신 말만 전했어도 마음이 완악한 바로가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모르면 마음이 완악할 수밖에 없다. 일평생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기독교의 신만이 아니시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신)이시요 창조주다.

출애굽기 4:18-31

출애굽기 4:18-31 (공동번역)

모세는 돌아와서 장인 이드로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편히 가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야훼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어서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모세를 죽이려고 찾던 자들이 다 죽었다고 안심시키셨다. 모세는 아내와 아들을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돌아갔다. 모세의 손에는 하느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집트에 돌아가거든 온갖 이적을 파라오 앞에서 보여라. 그러나 나는 파라오로 하여금 억지를 부려 이스라엘을 떠나 보내지 않게 하겠다. 그러면 너는 파라오에게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일렀건만 너는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들어라, 내가 이제 너의 맏아들을 죽이리라.’]
모세가 길을 떠나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묵는데 야훼께서 찾아오시어 그를 죽이려고 하셨다. 시뽀라가 돌칼로 제 아들의 포경을 자르고 그것을 모세의 발에 대며 당신은 피로 얻은 나의 신랑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야훼께서 모세를 놓아주셨다. 시뽀라는 모세에게 할례를 베풀어 피흘려 얻은 신랑이라고 말했다.
아론은 모세를 만나러 광야로 나가라는 야훼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산에 가서 그를 만나 입을 맞추었다. 모세는 야훼께서 자기에게 사명을 주시며 하신 모든 말씀과 일러주신 모든 증거들을 아론에게 들려주었다. 모세와 아론은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아론은 야훼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백성 앞에서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백성들은 믿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시어 자기들이 당하는 괴로움을 살펴주셨다는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예배했다.

출4:18-31
// 모세가 이집트로 가는 도중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죽을 죄를 진 모세의 죄목이 무엇인가? 모세(십보라)는 이것을 ‘할례’ 때문이라고 기록에 남겼다. 할례는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할례를 받는 사람들은 할례의 의미를 모르고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할례를 베풀 때야 비로소 할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결국 할례를 받아서 히브리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베풀어서 진정한 히브리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도는 복음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복음을 받았다고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을 베푸는 (전하는) 사람이 진정한 성도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믿었다. 특별히 백성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 살피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보셨다는 말을 듣고 엎드려 주님께 경배했다. 이것이 믿음이다. 주님께서 성도를 굽어 살피시고, 성도가 고통받는 것을 보신다는 것만으로 성도는 주님께 경배할 이유가 충분하다. 출애굽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간다는 것은 고역에 지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뜬금없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약백성에게 주님께서 굽어 살피신다는, 주님께서 자신들의 고통받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소식만으로도, 이집트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복음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카타콤의 순교자들에게, 신사참배로 옥에 갇혔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도 언약백성을 굽어 살피신다는 말씀이 곧 복음이었다. 임마누엘! 암울한 한국 교회의 현실에도 임마누엘의 약속만으로 위로를 받는다.
////출애굽의 여정에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원포인트 역할을 했다. 아론은 오랜 동안 모세를 돕는다. 하나님은 모세가 혼자 일하게 나두지 않으셨다. 독불장군은 없다. 하나님의 일은 합력하여 선(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다. 선발투수도 있고 원포인트 투수도 있고 마무리도 있다. 맡은 보직이 무엇이든 감독되신 하나님 뜻에 순종해야 한다. 감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감독이시다.

출애굽기 4:1-17

출애굽기 4:1-17 (공동번역)

모세는 하느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헛소리라고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느냐고 물으시자 모세는 지팡이라고 대답했다. 야훼께서는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자 뱀으로 변했다. 모세가 뱀이 무서워 뒤로 물러서자 야훼께서 모세에게 손을 내밀어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다.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으니 그 뱀이 도로 지팡이가 되었다. 야훼께서는 이것을 보여주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야훼께서 모세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믿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야훼께서는 모세 손을 문둥병이 든 것처럼 변했다가 다시 말끔하게하는 이적도 보여주셨다. 첫번째 증거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둘째 증거를 보면 믿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이 두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으면 나일강 물을 퍼다가 마른 땅에 부으면 물이 피가 되는 증거를 보여주라고 하셨다.
모세는 야훼께 자신은 말재간이 없다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자신이 없다고 항변했다. 야훼께서 모세를 꾸짖으셨다. 야훼께서는 사람에게 입을 주었고 벙어리나 귀머거리를 만들고 눈을 열어주거나 못보게 하는 분이 자신이 아니냐며 모세를 책망하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어서 가라고 명하셨다. 모세가 입을 열 때 야훼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모세가 다시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사명받기를 사양했다. 야훼께서 크게 화를 내시며 레위 사람인 모세의 형 아론을 거명하셨다. 야훼께서는 아론이 말을 썩 잘하는 사람인데 그가 모세를 만나로 오고 있으며 그가 모세를 만나 기뻐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아론에게 모세가 할 말을 들려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 번 더 야훼께서는 모세나 아론이 말할 때에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이 할 일을 가르쳐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론이 모세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해줄 것이고 모세는 아론에게 하느님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다.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잡고가서 증거를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다.

출4:1-1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증거를 세가지나 주셨다. 망명정부의 지도자였다가 금의환향하는 것도 아니니, 도망자로 완전히 잊혀진 자로 지내던 모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설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팡이-뱀-지팡이, 손-문둥병 같은 손-깨끗한 손, 그리고 피로 변할 나일 강물을 증거로 제시하라고 했다. 앞의 두 증거는 모세에게 당장에 보여주셨으나 마지막 증거는 모세도 믿어야 하는 증거였다. //증거를 삼세번까지 받았음에도 모세는 말이 어눌하다며 사명을 회피했다. (말이 어눌하다는 것은 그냥 핑계가 아닐 수 있다. 40년이면 모국어가 입에서 돌기만 할뿐 제대로 나오지 않을 세월이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조금 화를 내셨다. 하나님께서는 도구을 사용하시는 분이 도구에 대해 모를 리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직접 도구를 사용하실 것이니 도구가 스스로 무엇을 할까 고민할 이유가 없으며 그저 쓰임만 받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모세는 다른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라며 거듭 사명을 거부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크게 화를 내셨다. (모세에게 크게 화를 내셨다는 것은 아비의 마음이다. 잠언 3:12) 누구를 도구로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도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사용하신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도구라고 하셨다. 그리고 모세의 형 아론을 모세의 조력자로 불렀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아론에게는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모세는 아론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까지 책임져야 한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도 모세의 말과 행동을 책임지실 것이다. 이제 모세에게는 순종만 남았다. //책임지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렇다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책임자의 지시에 순종해야 한다. 내 능력이 부족한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보완하신다. 그러니 순종을 하면 된다.

출애굽기 3:13-22

출애굽기 3:13-22 (공동번역)

모세가 하느님께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 그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곧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 하고 말씀하시는 그분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어서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야훼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르셨다.’ 하며 이렇게 전하여라. ‘나는 너희들을 찾아와서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너희를 이집트의 억압에서 끌어내어 가나안족, 헷족, 아모리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기로 작정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네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집트 왕에게 가서 ‘히브리인의 하느님 야훼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우리는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우리 하느님 야훼께 제사를 드려야 하겠소.’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이집트 왕은 단단히 몰아세우지 않는 한 너희를 내보내지 않을 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내가 손수 온갖 놀라운 일로 이집트를 칠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야 그는 너희를 떠나 보낼 것이다. 내가 이 백성을 얼마나 아끼는지 이집트인들에게 보여주리라. 따라서 너희가 그곳을 떠날 때 빈손으로 나오지는 아니할 것이다. 부인들은 저마다 이웃 여인과 자기 집에 사는 여인에게서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을 얻어낼 것이고 너희는 그것으로 아들과 딸들을 치장하리라. 이렇게 너희는 이집트를 털리라.”

출3:13-22
//’나는 나다.’ ‘나다’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 그냥 ‘나다’라고 하신다.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는 뜻이리라. 세상 신(하나님)들은 자신이 무슨 신(하나님)인지 설명이 필요하다. 태양의 신인지, 바다의 신인지, 지혜의 신인지…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믿는 하나님(신)은 이름이 필요없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고백하듯 전능하신 아버지요 창조주 하나님(신)이시기 때문이다. 신들 중의 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다’라고 하셨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거든 조상들이 믿어 온 하나님(신)이라고 하셨다. 반복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조상 대대로 믿어 온 바로 그 하나님(신)이라고 하셨다. 이 언약의 하나님(신)이라는 관계가 이름보다 중요하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의 이름을 모르는 것과 같다. //그래도 ‘야훼/여호와(나다)’라는 이름을 주셨다. (출애굽기 3장에서야 이 이름이(‘여호와’가) 사용 된다.) 세상의 잡신들(하나님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름을 주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서명하신 신(하나님)이 누구인지 확실히 하시기 위해 ‘나다’라는 이름을 가르쳐주셨다. 피조물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신 것이다.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는 언약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 언약을 상기시켜주면 그들이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장로들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달해야 한다. //요셉을 모르는 바로가 요셉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바로는 하나님의 언약에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기껏해야 세상 신에 불과한 바로는 참 신이신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나다’. 주님의 음성을 잊지 않게 하소서!

출애굽기 3:1-12

출애굽기 3:1-12 (공동번역)

모세는 미디안 사제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그곳에서 야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모세에게 나타났다. 떨기에서 불꽃이 타오르는데도 떨기가 타지 않는 것을 본 모세가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았다. 그것을 야훼께서 보시고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셨다. 모세가 예 말씀하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하느님께서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셨다. 모세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느님은 “나는 네 선조들의 하느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어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라.” 모세가 하느님께 “제자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하느님께서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너는 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다음 이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리라.”

출3:1-12
//이집트 왕궁에서 우두머리와 재판관으로 성장했던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는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양떼의 주인이 아닌 삯꾼 목자는 그 당시 가장 낮은 신분이었다고 알려진다. 왕자에서 거지가 된 것이다. 물론 제사장의 사위였으니 그렇게까지 천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40년 동안 낮아지고 낮아진 모세를 주하나님이 부르셨다.
// 부르심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주신 사명의 주어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하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소명을 받은 모세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도구인 모세가 사용자인 하나님께 나는 능력없는 적합하지 않은 도구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소명을 받은 자(도구)가 해야 할 일이다.
// “너희가 이 산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소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징표는 일이 이루어 졌을 때 확실해 진다. 따라서 소명 받았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소명의 시작은 하나님과 함께 함이요, 소명의 중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함이며, 소명의 마침은 순종의 결과로 하나님께 감사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신다.
//내가 하나님의 도구로 잘 사용되고 있는가? 나의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지는 순종의 삶과 예배적 삶을 살고 있는가로 알 수 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