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7:1-23

열왕기하 17:1-23

왕하17:1-23
//도대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의 경우 전에 있던 이스라엘 왕들만큼 악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악이 덜 악하다고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들은 사마리아(이스라엘)를 멸망으로 이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한 것은 자신들의 신(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다른 신을 섬기며, 다른 민족들의 풍습을 따르며, 자신들이 만든 규례를 따라 살았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속을 썩였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에게 예언자들과 선견자들을 시켜 악습을 버리고 돌아와 하나님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라고 경고하셨다. 그래도 그들은 예언자들과 선견자들의 경고를 드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 못지않게 고집이 세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업신여겨 하나님을 본받지 않고 주위의 민족들을 본받았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우상숭배와 인신제사와 점쟁이와 술객들을 의지하는 죄의 종의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속을 썩여드렸다. //결국 하나님께서 크게 노하시어 이스라엘을 당신 앞에서 쫓아내셨다. (이제 유다 지파만 남았다. 그러나 유다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이스라엘이 받아들여 지키던 풍속을 따랐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침략자들에게 넘겨주시어 포로 끌려가게 하셨다. 여로보암이 지은 온갖 죄에 빠져 그 죄를 버리지 못해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앗수르로 사로잡혀갔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그 자체가 죄의 포로요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다. 이미 지옥에 사는 것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으면 이미 하나님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생이다. 유다는 형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아 이방에 포로로 끌려감을 보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이스라엘이 걸은 길을 따라갔다. 이 모든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는 과연 다를까? 우리 역시 하나님의 속을 썩여드리며 살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열왕기하 16:1-20

열왕기하 16:1-20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즈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다윗처럼 하느님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전철을 밟았다. 심지어 가나안에서 쫓아냈던 민족들의 고약한 풍속을 본받아 자기의 아들을 불살라 바치기까지 했다. 이런 아하즈에게 시리아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이틈에 에돔 왕은 엘랏을 (유다로부터) 탈환해서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아하즈는 나라에 있는 금은을 있는대로 모아 아시리아 왕에게 사절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아시리아 왕은 아하즈의 간청을 받아들여 시리아를 정복하고 시리아 왕 르신을 죽였다. 아하즈는 아시리아 왕을 만나러 가서 그곳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형과 자세한 도본을 만들어 사제 우리야에게 보냈다. 사제 우리야는 아하즈가 돌아오기 전에 그 제단을 완성했다. 아하즈는 돌아와 그 제단에 올라가서 번제와 친교제를 드렸다. 그리고 야훼 앞에 있던 놋쇠 제단은 치워버렸다. 그런 뒤에 하하즈는 사제 우리야에게 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명했다. 이전 놋제단은 자신이 야훼께 문의하는 데만 쓰겠다고 말했다. 사제 우리야는 아하즈 왕의 지시대로 하였다. 아하즈는 이렇게 성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왕이 출입하던 성전의 바깥 대문을 봉하였다. 아하즈는 죽어 그의 선조들과 나란히 다위 성안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히즈키야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하 16:1-20

//유다 왕 아하스. 그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전철을 밟았다. 첫째 아하스가 이전 가나안 사람들의 풍속을 따라 인신제사를 드렸다. 둘째 아하즈는 시리아 왕(아람 왕)과 이스라엘의 침공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앗수르에 조공을 바쳐 위기를 모면했다. 세째 아하즈는 자신을 구해 준 앗시리아를 방문해서 본 앗시리아 신전의 제단을 도입하고 새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고 성전기물을 옮겨 성전의 기능을 마비시켰고 결국 마침내 성전 문을 봉해버렸다. 더이상 하나님께 나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듯 이스라엘 왕들의 전철을 밟았다는 것은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겨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을 죄에 빠뜨리는 것이다. 제사장 우리야까지 왕명에 동참했다. //날이 갈수록 세상에는 매력적인 새로운 의지할 것이 늘어난다. 말씀을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린다. 그러니 점점 더 하나님께 나갈 생각은 뒷전으로 밀린다. 마침내 참 하나님(신)께 나아가는 문을 스스로 봉해 버린다. 아하스와 우리가 다를게 없다. ㅠㅠ 이렇듯 하나님께 나가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사는 수밖에 없다.

열왕기하 15:1-22

열왕기하 15:1-22 (공동번역)

아마지야의 아들 우찌야가 유다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의 일이었다. 그는 십육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출신으로서 이름을 여골리야라고 하였다. 그는 부왕 아마지야가 그러하였듯이 야훼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였다. 그러나 산당은 그대로 존손시켰으므로 백성들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희생제를 드리고 향을 피웠다. 우찌야 왕은 야훼께 맞아 나병환자로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세자 요담에게 왕궁의 일과 나라 일을 맡기고 뒤로 물러나 홀로 지냈다. 우찌야의 나머지 치적과 행적은 유다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우찌야는 선조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성 안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요담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여로보암의 아들 즈가리야가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우찌야 제삼십팔년의 일이었다. 그는사마리아에서 육개월간 다스렸다. 그는 선조들이 그러하였던 것과 같이 야훼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렸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못하고 그 악습을 되풀이하였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반란을 일으켜 이불르암에서 그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다. 즈가리야의 나머지 치적은 이스라엘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야훼께서 예후에게 “네 자손이 사대까지 이스라엘 왕위를 이으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우찌야 제삼십구년의 일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일 개월간 다스렸다.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반란을 일으켜 사마리아로 쳐올라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다. 살룸의 나머지 치적과 그가 꾸몄던 음모는 이스라엘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왕이 되고 나서 므나헴은 성문을 열어주지 않던 다부아 성을 쳐 그 안에 살던 사람을 모두 죽이고 디르사에서 시작하여 온 지역을 쳤다. 심지어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가르기까지 하였다.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유다왕 우찌야 제삼십구년의 일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십 년간 다스렸다. 그는 야훼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다.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렸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고 그 압습을 되풀이하였다. 그가 다스리던 때에 아시리아 왕 불이 이스라엘을 침입한 일이 있었다. 므나헴은 왕의 자리를 지키도록 도와달라고 하며 은 천 달란트를불에게 주었다. 그 은은 이스라엘의 모든 부자에게 각각 오십세겔씩 내도록 하여 거둔 것이었다. 이 돈을 받고 아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땅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돌아갔다. 므나헴의 나머지 치적과 행적은 이스라엘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므나헴이 선조들과 함께 잠들자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하 15:1-22
//남유다에서는 우찌야(아사랴)가 왕위를 계승하고 북이스라엘에서는 즈가리야(스가랴)-살룸-므나헴으로 이어진다. 북이스라엘의 스가랴는 살룸에게 살해당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후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자리매김한다. //우찌야는 무려 오십이 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다. 그러나 우찌야는 나병환자로 그의 아들 요담이 실질적인 왕이었을 것이다. 우찌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의 나병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했을 수도 있다. 사관은 우찌야가 하나님 앞에 나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는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왕으로서는 자신의 병고침보다 백성들에게 옳은 일을 펼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북이스라엘 스가랴는 살룸에 의해 살해 당한다. 예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해,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그래도 막판에 회개해서 예후 왕조는 4대를 더 이어져 스가랴에게까지 왔다. 말씀은 성취된다. 스가랴는 고작 반년만에 생을 마감했다. 만약 스가랴가 회개했으면 어땠을까? 하여간 이 땅에서의 처벌은 무한정 미뤄지지 않는다. (처벌이 무한정 미뤄지는 곳은 오직 예수 안이다.) //북이스라엘은 정변에 정변을 거듭하며 이어진다. 스가랴를 죽인 살룸은 고작 한 달 간 다스렸다. 므나헴이 반란을 일으켜 살룸을 죽이고 십년 간 왕위를 차지했다. 므나헴 역시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 므나헴은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자 백성들에게 혈세를 걷어 조공을 바쳐 평화를 샀다. 그래봤자 10년도 안 되는 짦은 평화였다. ////평화를 향한 쉬운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다만 좁고 협착한 길이다. 그래선가 사람들은 넓고 어려운 길을 택한다. 죽음의 길이다.

열왕기하 14:17-29

열왕기하 14:17-29 (공동번역)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지야는 이스라엘 왕 요호아하즈의 아들 여호아스보다 십오 년을 더 살았다. 아마지야의 나머지 역사는 유다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아마지야는 라기스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반란군은 라기스까지 쫓아가 그들 죽였다. 그러나 그의 시체만은 말에 실어 예루살렘으로 모셔가다 다위 성에 있는 왕실묘지에 안장시켰다. 온 유다 백성이 나이 십육 세인 우찌야를 택하여 부왕 아마지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다. 왕이 세상을 떠나 선조들에게 돌아간 다음 엘랏을 찾아 유다의 한 성으로 재건한 장본인이 우찌야다.
여호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지야 제십오년의 일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사십일 년간 다스렸다. 그는 야훼게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 빠뜨렸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고 그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해에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은 것은 그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종인 예언자 요나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요나는 갓헤벨 출신으로서 아미때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이스라엘의 고생이 막심한 것을 야훼께서 눈여겨보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이나 자유인이나 할 것 없이 고생하고 있으며 도와줄 이도 없었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버리지 않기로 하시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을 시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여로보암의 나머지 업적과 그의 치적, 공적 그리고 그가 치른 전쟁 및 유다에게 빼앗겼던 다마스쿠스와 하맛을 탈환한 것 등은 모두 이스라엘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여로보암이 선조들과 함께 잠들어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곁에 안장되자 그의 아들 즈가리야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하 14:17-29
//남유다 왕 아마지야(아마샤)는 자신을 사로잡고 남유다을 수탈해간 북이스라엘 왕 요시아(여호아스)보다 십오 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오래 살았다고 복이 아니다. 아마샤도 선왕 요아스처럼 신하들에게 암살되었다. 요아스는 우상숭배로 아마샤는 교만으로 말년을 망쳤다. 그나마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정치를 폈다는 평가로 만족해야 하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평가의 잣대는 다윗이다. 물론 다윗도 완벽/완전하게 살지는 않았다. 다윗의 삶도 굴국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지만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복원력을 보였다. 다윗은 성령이 떠나지 않기를 노래했던 사람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은 아들 이름을 여로보암이라고 지었다. 여로보암(1세)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이름 값을 해냈다. 사십일 년이나 왕위에 있었고 영토를 회복했다. 그러나 사관의 평가는 냉정하다. 여로보암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그 악습을 답습했다. 하나님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사관은 여로보암2세 당시의 번영과 영토회복을 여로보암이 잘 다스렸기 때문이 아니라 고생이 막심한 이스라엘을 눈여겨 보신 하나님의 자비때문이라고 분명히 토를 달았다. ////영화 암살자(들) 논란이 뜨겁다. 극우는 마치 이스라엘의 영토회복과 번영을 이끈 여로보암을 칭송하는 모양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종이나 자유인이나 고생이 막심한데 도와줄 사람이 없자 여로보암을 잠시 구원자로 사용하신 것 뿐이지 않은가? 여로보암의 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잣대는 확실하다. 여로보암에 대한 사관의 한줄평은 그가 하나님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이다. 박통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국민이 고생이 막심한데 도와줄 사람이 없자 박통을 잠시 구원자로 사용하신 것 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박통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줄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박통의 경제성장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바른 정치를 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하의 총에 암살당한 그의 결국이 역사의 잣대다. 박통에 대한 한줄평을 써야한다면 분명 <그는 ‘독재자’였다.>라고 적힐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이라는 수식을 붙인들 독재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 동네 꼬마였을 때는 몰랐지만 자라면서 빨갱이로 몰리고 연좌제로 고생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어쩌다 박통의 혜택을 입은 쪽에 속했겠지만 피해를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 아직도 그 울분을 삭히지 못하신 분들도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혹여 애통할 일이 없거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정의롭지도 진실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면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의에 주리고를 영적/종교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자비를 누리고 있다면 자비를 베푸는 복을 누리라고 하신다.

열왕기하 14:1-16

열왕기하 14:1-16 (공동번역)

요아스의 아들 아마지야가 유다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즈의 아들 여호아스 제이년의 일이었다. 그는 이십오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이름은 여호아띤이라 하였다. 그는 야훼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고 부와 요아스 못지않게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폈지만, 선조 다윗과 같지는 못하였다. 산당을 철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희생제를 드리고 향을 피웠던 것이다. 그는 왕권이 튼튼하게 되자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그 살인자들의 자손들은 죽이지 않았다. 그는 모세의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야훼의 명령을 따랐던 것이다. “자식의 잘못 때문에 아비를 죽이지 못하고 아비의 잘못 때문에 자식을 죽이지 못한다. 죽을 사람은 죄지은 바로 그 사람이다.”
소금골짜기에서 에돔 군 일만을 무찌르고 셀라를 점령한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그는 그 곳을 욕드엘이라 불렀는데 아직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 무렵 아마지야가 예후의 손자이며 여호아하즈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에게 사람을 보내어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유다 왕 아마지야에게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냈다.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송백에게 딸을 며느리로 달라고 청혼아였다가 지나가던 레바논의 들짐승에게 짓밟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대는 에돔을 쳐 이겼다고 하여 목에 힘을 주고 우쭐거리는데, 혼자 집안에 머물러 있어라. 어찌하여 그대의 신세와 유다의 운명을 망치려고 스스로 설치는가?” 그러나 아마지야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유다의 영토인 벳세메스에서 유다 왕 아마지야와 맞붙었다.
유다 군은 이스라엘 군에게 패하여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도망쳤다.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아하지야의 손자이며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 왕 아마지야를 벳세메스에서 사로잡았으며, 예루살렘에 이르러 에브라임 성문과 모퉁이 성문 사이의 성벽을 사백 척이나 헐었다. 그는 야훼의 전과 왕실 금고에 있는 금은과 세간을 닥치는 대로 다 털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여호아스의 나머지 업적과 그의 치적 및 공적, 유다 왕 아마지야와의 전쟁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아스는 숨을 거두어 사라미아에 있는 왕실묘지에 매장되었다.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하 14:1-16
//유다 왕 아마지야(아마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고 선왕 요아스 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정치를 폈다. 그러나 선왕 요아스가 말년에 우상숭배에 빠지고 신하들에게 암살 당한 것과 같이 아마샤도 교만해져서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요아스)에게 사로잡히는 굴욕을 당하고 유다의 보물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나님을 죽을 때까지 기쁘시게 하는 것은 이처럼 어렵다. //구체적으로 아마샤는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연좌제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씀대로 살던 아마샤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교만해지고 말았다. 이참에 형제 북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었다. 북진통일을 원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오히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아마샤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충고했으나 아마샤는 듣지 않았다. 결국 아마샤는 신세를 망치고 말았다. //// 우리는 참 교만해지기 쉬운 존재다. 조그만한 성과에도 종이 비행기를 타고야 만다. 부추기는 사람들의 말은 들려도 주의주는 성경말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살아가야 한다. 예수께서는 예수의 말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 예수께서 곧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영, 성령만이 우리로 말씀을 듣게 하여 교만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