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11-24

사사기 4:11-24 (공동번역)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가운데 켄 사람 헤벨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문중에서 떨어져 나가 케데스 근처 사아나님 상수리나무 곁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올라갔다는 것을 전해 들은 시스라는 구백 대나 되는 철병거까지 합친 전군대를 하로셋하고임에서 키손 강으로 출동시켰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일렀다. “행동을 개시하시오. 이날은 야훼께서 시스라를 그대 손에 부치시는 날이오. 정녕 야훼께서 그대 앞에 서서 전진하실 것이오.” 그리하여 바락은 만 명 부대를 이끌고 다볼 산에서 쳐 내려갔다. 야훼께서 시스라가 거느린 그의 전병거대와 군대를 바락 앞에서 혼란에 빠뜨리셨다. 그러자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쳤다. 바락은 그 병거대와 군대를 하로셋하고임까지 따라가며 추격전을 벌였다. 시스라의 군대는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칼에 맞아 쓰러졌다. 한편 시스라는 켄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을 향해 뛰어 도망쳐 갔다. 하솔 왕 야빈과 켄 사람 헤벨 가문은 서로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야엘이 나와 시스라을 맞으며 말하였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나리. 어서 들어오십시오. 마음놓으십시오.” 시스라가 그의 천막에 들어오자 야엘은 담요로 그를 덮어주었다. 시스라는 목이 마르니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청하였다. 야엘이 우유가 든 가죽부대를 열어 좀 마시게 하고는 다시 그를 덮어주자, 시스라는 야엘에게 부탁하였다. “천막 문에 섰다가 누가 와서, 여기에 누가 없느냐고 묻거든 없다고 해주고.” 헤벨의 아내 야엘은 천막 말뚝과 망치를 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말뚝이 땅에 꽂히도록 그의 관자놀이에 들이박았다. 시스라는 기진맥진하여 정신없이 자다가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때마침 바락이 시스라를 추적하여 왔다.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으며 입을 열었다. “들어와 보십시오. 장군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락이 들어가 보니 시스라는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힌 채 죽어 쓰러져 있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그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가나안 왕 야빈의 기세를 꺾으셨다. 그 후로 가나안 왕 야빈은 점점 심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눌리다가 마침내 망하고 말았다.

삿4:11-24
//가나안 하솔 왕 야빈과 (유목민) 겐 사람 하벨 가문은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다. 패잔병 신세의 시스라가 겐사람 하벨 가문의 텐트로 반갑게 들어간 이유다. 군사적으로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없어도 적어도 자신을 숨겨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사기 기자는 겐사람 헤벨이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이라고 이미 덫을 놓았다. 군사동맹이 강할까 통혼동맹이 강할까? 물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다. //사사기 기자는 전쟁의 디테일은 적지 않았지만, 시스라의 죽음을 자세히 기록한다. 시스라를 죽이는 영광(?)이 드보라의 예언처럼 바락이 아니라 한 여인에게 돌아가는 과정을 자세히 기술한다. 바락처럼 하나님을 잘 모르면 하나님의 신탁대로 일만 대군을 이끌었어도 (임마누엘의)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벨의 아내는 무슨 배짱(생각)으로 시스라를 쳐죽였을까? 겐 족속도 모세의 장인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왔을까? 그래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있었을까? 그냥 승자편에 섰던 것일까? 하여간 전쟁에 패하고 장군 시스라가 죽자 하솔 왕 야빈의 기세도 꺾였다. 하솔 왕은 이스라엘의 손에 눌려 마침내 망하고 말았다. 말씀의 성취는 드보라도 바락도 야엘도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다. 사사기 기자는 23절에서 이 모든 일의 주어가 하나님이라고 적는다.

사사기 4:1-10

사사기 4:1-10 (공동번역)

에훗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야훼께서는 하솔을 다스리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넘겨주셨다. 그의 군대 지휘관은 하로셋하고임에 사는 시스라라는 자였다. 야빈은 철병거를 구백 대나 가지고 있으면서 이스라엘을 이십년 동안 심하게 억압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께 울부짖었다. 그 때 이스라엘을 다스린 판관은 라삐돗의 아내 여예언자 드보라였다. 그가 에브라임 산악 지대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밑에 자리압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에게 나와 재판을 받곤 하였다. 이 드보라가 납달리 케데스에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다가 놓고 일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이렇게 명령하셨소. ‘너는 납달리 지파와 즈블론 지파에서 만명을 뽑아 다볼산으로 이끌고 가거라. 그러면 나는 야빈의 군대 지휘관 시스라를 키손 강으로 유인해 내겠다. 내가 그의 전군을 병거대까지 유인해 내다가 네 손에 부치리라.'” 바락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만일 당신이 저와 함께 가신다면 가겠지만, 함께 가시지 않는다면 못 가겠습니다. ” 드보라는 “내가 꼭 함께 가겠소. 하지만 이번 길에서 그대에게 영광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알아두시고. 야훼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오.” 하고 일어나 바락과 함께 케데스로 갔다. 바락이 즈블룬과 납달리 지파를 케데스로 출동시켰다. 만 명이나 되는 부대가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가는데,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갔다.

삿4:1-10
//3장 마지막에 사사 삼갈에 대한 짧은 기록이 있다. 삼갈은 블레셋 6백명을 목동들이 가지고 다니는 막대기로 쳐죽였다. 드보라 사사 이야기는 삼갈이 아닌 에훗에게서 바톤을 이어 받는다. 따라서 에훗시대는 에훗과 삼갈의 더블 사사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더블 사사가 다스렸기 때문에 옷니엘의 두배인 팔십년 동안 평안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에훗 시대의 평안은 하솔 왕 야빈에 의해 깨어졌다. 외침의 기간도 8년 18년에서 이번에는 20년으로 길어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여선지자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신다. 고대 근동에서 천대 받던 왼손잡이를 사사로 세우시고, 또 그에 못지않게 천했던 목동 출신을 사사로 세우신 하나님은 급기야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여자를 사사로 세우셨다. (여성 안수를 금하는 사람들은 드보라 선지자를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하다.) //여선지자 드보라가 재판했다는 기록은 이웃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일 수도 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선지자 본연의 신탁, 곧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드보라와 함께 하시는 표징을 (말씀의 성취를 통해) 익히 경험해 왔을 것이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하나님의 신탁을 전했다. 바락은 신탁에 순종하는 조건으로 드보라에게 함께 가자고 요청했다. 바락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표징을 지닌 드보라의 동행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략과 전술을 이미 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한 바락은 결국 (임마누엘의)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는 신탁도 듣게 된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으면서도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하는 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현실에도 많은 성도들이 임마누엘보다 자기 열심으로 종교생활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사기 3:12-31

사사기 3:12-31 (공동번역)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모압 왕 에글론의 기세에 눌리게 하셨다. 그들이 야훼의 눈에 거술리는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 백성과 합세하여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종려나무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년 동안 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께 울부짖자 야훼께서는 그들을 구원할 자를 세우셨다. 그라 바로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치는 조공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 에훗은 길이 한 자 남짓되는 쌍날 비수를 만들어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들어가 모압 왕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쳤다. 에글론은 매우 살진 사람이었다. 에훗은 조공을 바치고 나서 그 조공을 메고 온 사람들을 보내고 자신은 길갈 근처 우상들이 성 있는 데까지 왔다가 돌아가서 은밀히 드릴 말이 있다고 왕에게 고하였다. 왕이 모시고 섰던 신하들을 물리치자 에훗은 그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마침 왕은 여름 별장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에훗이 아뢰었다. “대왕께 하느님의 전갈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곧 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에훗은 오른쪽 허벅지에 있는 칼을 왼손으로 빼어 왕의 배를 찔렀다. 그칼이 자루까지 박혔는데 그가 칼을 배에서 뽑지 않았으므로 기름덩이가 칼에 엉겨 붙었다. 에훗은 다락방 문을 닫아 잠그고 문간채로 나왔다. 그가 나간 뒤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방 문이 잠긴 것을 보고는 왕이 여름 별장 변소에서 뒤를 보고 있거니 생각하였다. 그들은 기다리다가 차츰 걱정스러워졌지만, 다락방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이윽고 열쇠를 가져다가 열어보니 그들의 상전은 죽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에훗은 몸을 피하여 우상들이 서 있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쳤다. 그는 그곳에 이르러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울려 퍼지게 나팔을 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앞세우고 산악지대로부터 쳐 내려갔다. 그가 외쳤다. “나를 따라 나서라. 야훼께서 너희 원수 모압을 너희 손에 부치셨다.” 그들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암을 통하는 요르단 나루를 점령하고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 그들이 쳐죽인 힘세고 날쌘 모압 장정의 수는 만명이나 되었는데 한 사람도 도망치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 날로 모압은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 그 후 팔십년 동안 세상은 평온하였다. 에훗 다음에 나타난 사람은 아낫의 아들 삼갈이었다.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다. 이리하여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이 되었다.

삿 3:12-31
//사사 옷니엘이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했다. 40년의 평안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을 잊게 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잊어버린다면 세상 평화는 능사가 아니다. //두번째 판관은 에훗이다. 베냐민 지파 출신 왼손잡이 에훗이다. 베냐민 지파의 베냐민이란 이름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이름인데, 정작 에훗은 ‘왼손잡이’라고 소개된다. 원어의 뜻은 ‘오른손이 묶인 사람’ 곧 오른손을 쓰는 데 제한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사사기 20장 16절에 베냐민 군대중에 왼손잡이 정예부대 칠백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에훗도 베냐민 지파에서 왼손잡이로 훈련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은 이런 에훗을 판관으로 사용하셨다. 고대 근동에서는 왼손잡이를 부정하고 결함이 있고 더럽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른손(바른손, 옳은손)이 아닌 왼손을 사용하는 에훗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선발하는 기준은 세상기준과 많이 다르다. //사사 에훗의 행적은 옷니엘보다 자세히 기록되었다. 그래서인지 에훗시대는 팔십년이나 지속되었다. 옷니엘의 두배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또 하나님을 잊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목동 삼갈을 사사로 세워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첫번째 사사 옷니엘이 장군이었다면, 두번째 사사 에훗은 조공단을 이끌었지만 왼손잡이 특수부대원 출신이었다. 세번째 등장하는 사사 삼갈은 목동이었으니 사사의 출신배경이 점점 낮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은 세상 기준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한자를 들어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사기 3:1-11

사사기 3:1-11 (공동번역)

가나안 전쟁을 겪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을 빠짐없이 시험하기 위하여 야훼께서 남겨두신 민족들이 있다. 그 목적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알아보시려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일찍이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쟁을 가르치시려는 것이었다.
다섯 추장이 거느린 불레셋족, 온 가나안 족, 시돈족, 바알헤므론 산에서 하맛 어귀에 이르는 레바논 산에 자리잡은 히위족이 그들이다. 이들을 남겨두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려는 것이었다. 야훼께서 모세를 시켜 그 조상들에게 명한 계명을 이스라엘이 순종하는가 않는가 알아보시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족, 헷족, 아모리족, 브리스족, 히위족, 여부스족과 섞여 사렴서 서로 시집 장가 가다보니, 그들의 신을 섬기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저희의 하느님 야훼를 저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겨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못할 짓을 하였다. 야훼께서는 크게 화를 내시어 이스라엘을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의 손에 넘기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구산리사다임을 팔년 동안 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께 울부짖자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시려고 한 구원자를 세우셨다. 그가 바로 갈렙의 동생 크나즈의 아들 오드니엘이었다. 야훼의 영이 그에게 내리자 그는 이스라엘 판관이 되어 싸움터로 나갔다. 야훼께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부치셨음으로 그가 구산리사다임을 쳐 이겼다. 그 후 크나즈의 아들 오드나엘이 죽기까지 사십년 동안 세상은 평온하였다.

삿 3:1-11
//약속의 땅에서 몰아내지 못한 민족들.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들을 남겨두신 이유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길을 명심하고 순종하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서 몰아내지 못한 민족들은 내우로, 블레셋과 시돈족 같은 주변 민족들은 외환으로 시험에 사용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내부적으로 약속의 땅 일곱족속과의 통혼으로 그들의 신들을 섬겨 시험에서 탈락했다. 하나님께서 크게 화를 내셨다. 그래서 외부의 왕으로 이스라엘을 팔년간 다스리게 하셨다. (아마도 내부 가나안족들은 이스라엘에 부역을 하는 단계라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건지시려고 옷니엘을 판관으로 세웠다. 하나님의 영이 옷니엘에게 내리자 그는 메소포타미아 왕을 쳐서 이겼다. 판관(사사) 옷니엘이 죽기까지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은 평온했다. ////사사기의 첫번째 사이클이다. 하나님의 시험방식은 이방 민족의 침입이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가르치는 시험이었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은 경험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다. 아니 경험해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어떻게 하면 잊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사사기의 사이클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열 번 이상 반복 기록된 이유도 후대에 (우리에게까지) 교훈을 주기 위해서다.

사사기 2:11-23

사사기 2:11-23 (공동번역)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들을 섬겨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못할 짓들을 하였다. 자기네 조상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신 조상의 하느님 야훼를 저버리고, 주위 백성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따르며 절하여 야훼의 노여움을 샀다. 그들은 야훼를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 야훼께서는 크게 화를 내시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적에게 침략을 받아 노략질을 당하게 하셨다. 또한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 손에 팔아 넘기셨으므로 그들은 도저히 원수들과 맞설 수가 없었다. 그들이 출정할 적마다 야훼께서 손수 그들을 치셨던 것이다. 야훼께서 경고하시며 맹세하신 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심한 곤경에 빠지면, 야훼께서는 판관들을 일으키시어 약탈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곤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을 이끄는 판관들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몸을 팔아 그 신들을 예배하였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야훼의 계명에 순종하며 걸어온 길을 그대로 살지 못하고 그렇게도 쉽사리 떠났던 것이다. 야훼께서는 그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판관들을 일으키시고 언제나 그 판관들과 함께 해주셨다. 그리하여 그 판관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거듭거듭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셨다. 야훼께서는 원수들에게 억눌려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가엾게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다시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 앞에 절하며 섬겼는데, 그 하는 짓이 조상들보다도 더 나빴다. 굽힐 줄 모르고 못된 길로만 가는 버릇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야훼께서는 몹시 화가 나셔서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이 백성의 조상들과 계약을 맺을 때 명령한 대로 이 백성은 살지 않는다. 통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수아가 채 몰아내지 못하고 죽은 민족들을 이 백성 앞에서 결코 몰아내지 않으리라. 그들을 시켜 이스라엘을 시험해 보리라. 이 백성이 조상들처럼 내가 가르쳐준 길을 명심하고 바로 가는지 시험해 보리라.” 야훼께서 그 민족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부쳐 한꺼번에 몰아내지 아니하시고 남겨두신 것은 이 까닭이었다.

삿2:11-23
//사사기의 사이클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못할 짓을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표적인 못할 짓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하셔서 주변 국가들로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노략질 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심각한 곤경에 빠졌다. 하나님께서는 심각한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에 판관(사사)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여전히 판관들의 말을 듣지 않고 범죄하였어도 하나님께서 판관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판관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을 지켜주셨다. 그러나 판관이 죽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또 다시 다른 신들을 섬겼다.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들 보다 점점 더 나빠졌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어겼다. 하나님의 명령을 통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자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서 아직 채 몰아내지 않은 주민들을 그대로 두시기로 하셨다.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가르쳐 준 길을 명심하고 바고 가는지 시험하셨다. //결국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시험에서 떨어지는 역사다. 재수하고 삼수하고…. 구수 십수를 해도 하나님의 시험에서 떨어졌다. ㅠㅠ ////결국 하나님과 이스라엘 조상이 맺은 계약을 하드캐리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드캐리의 종지부를 찍으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의 구세주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으면 우리도 별 수 없이 사사시대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을 명심하고 바로 가는 것이다. 오 주님,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을 명심하고 바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