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0:30-36

열왕기하 10:30-36 (공동번역)

야훼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마음에 들도록 일을 잘하였다. 나의 뜻대로 아합 가문을 잘 처치하였다. 그러므로 네 후손이 사 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왕위에 오르리라.” 그러나 예후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법을 준수하는데 성의를 다하지 못하였다. 그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여로보암의 죄를 버리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적에게 찢기게 하시니 하자엘이 이스라엘 국경을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그는 요르단 강 동쪽 길르앗과 가드와 르우벤과 므나쎄 전지역, 아르논 계곡에 인접한 아로엘, 길르앗과 바산 지방을 공격하였다. 예후가 용맹을 떨치며 무슨 일을 했는지 그 나머지 역사는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예후는 세상을 떠나 선조들에게로 돌아가 사마리아에 안장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즈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예후는 사마리아에서 이십팔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왕하10:30-36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일을 잘하였다고 한 번 인정 받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면 계속 하나님의 마음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데 성의를 다한다는 것이다. 예후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데 실패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인생을 마무리할 때, 용맹을 떨치며 무슨 일을 했는지 남기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는데 성의를 다했다고 인정받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주여 주여 부르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했하였어도 그들을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평가하시며 그들을 물리치신다. 그런 사람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준수하기 위해 성의를 다하지 않는다면 수치를 당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신나게 뽐내며 살았는데 예수께서 모른다 하시면 이보다 더 불쌍한 일이 또 있을까?

열왕기하 10:15-29

열왕기하 10:15-29 (공동번역)

그리고 다시 떠나가는데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그를 맞으러 나왔다. 예후는 그를 만나 인사를 나눈 다음, “나는 그대를 진정으로 믿는데, 그대도 나를 그처럼 믿어주겠소?” 하고 물었다. 여호나답이 그러겠다고 대답하자 예후는 “그대 생각이 그러하다면 손을 내미시오.”하고 말하였다. 여호나답이 손을 내밀자 예후는 그를 자기의 병거에 끌어올리며 말하였다. “함께 갑시다. 내가 얼마나 야훼께 열성을 품고 있는지 보여주겠소.” 그리고 그를 자기의 병거에 태워 사마리아에 이르러 아합의 잔당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다. 이렇게 예후는 야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였다.
그리고 나서 예후는모든 백성을 모아놓고 말하였다. “아합은 바알을 조금밖에 섬기지 않았지만, 예후는 바알을 열성으로 섬길 것이다. 이제 바알을 섬기는 예언자들과 사제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오너라. 내가 곧 바알에게 성대한 제사를 드리리라. 무릇 이 제사에 빠지는 자는 살아 남지 못하리라.” 예후는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박멸하려고 이런 계략을 썼던 것이다. 성회를 열어 바알을 예배하도록 하라는 예후의 지시를 따라 마침내 성회가 선포되었다. 예후는 이스라엘 각지에 사람을 보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여들어 바알의 신전으로 들어가니,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가득차게 되었다. 예후는 의상 맡은 자에게 바알으 섬기는 자들이 입을 예복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그가 그들의 이입을 예복을 가져오자 예후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함께 바알의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이 자리에 당신들과 함께 야훼의 종이 한 사람이라도 있지 않은가 잘들 살펴보시오. 다만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만 있도록 하시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희생제와 번제를 드리려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예후는 신전 밖에 군인 팔십 명을 배치하고 일렀다. “이 바알의 무리들을 너희에게 맡긴다. 한 놈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하나라도 놓치면 그 놓친자가 대신 죽으리라.” 번제를 다 드리고 나자 예후는 근위대와 장교들에게 명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다 죽여라.” 그리하여 근위대와 장교들이 들어가 무리를모두 칼로 쳐죽였다. 이윽고 그들은 바알 신전의 지성소에까지 들어가 바알 신전에 있던 목상들을 밖으로 꺼내다가 불에 태우고 바알 제단을 부수며 신전을 헐허 변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까지 그냥 남아 있다. 이렇게 하여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를 뿌리뽑았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만은 버리지 못하여 베델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를 그대로 섬겼다.

왕하10:15-29
//죄를 짓게 하는 환경을 뿌리째 뽑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러나 마음의 죄를 버리는 것은 어렵고도 어렵다. 예후가 그 덫에 걸렸다. 저자는 예후가 바알 숭배를 뿌리뽑았으나 여로보암의 죄만은 버리지 못하여 금송아지를 그대로 섬겼다고 못박았다.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누구지? 예후가 여호나답에게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말한 것으로 보아 요호나답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한 나의 열심!’ 하나님을 위한 예후의 열심과 여호나답의 열심을 비교한다면, 여호나답의 열심은 예후가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일상적 열심이었다면 , 예후의 열심은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후의 열심이 이벤트성이었다는 것은 예후가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한편 여호나답의 열심이 일상적 삶(열심)이라는 것은 그의 열심(삶)이 유언으로 이어져 250여 년이 지난 후대에 자손들까지도 여전히 신실하게 지키고 있다는 예레미야 35장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누구나 몇 번의 특별한 열심을 내볼수는 있겠지만, 아무나 일상적 열심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나의 열심은 금방 퇴색되고 말 것이다. 밥먹듯 호흡하듯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열왕기하 10:1-14

열왕기하 10:1-14

//예후를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예후는 왕위를 지키기도 폐하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그러나 예후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지혜로 피의 숙청(정)을 한다. //예후는 하나님께서 아합 가문에 내리신 말씀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셨다며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을 모두 죽였다. 왕자들 칠십 명과 아합의 측든들과 제사장들도 하나도 남기지 않 다 죽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아합 가문에 문안 왔던 유다 왕의 동생들 일행 사십이 명까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였다. //예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집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십분 경험하고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 왕자들의 일행까지 다 죽이는 잔인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탐욕을 뒤섞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 때도 매순간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명이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열왕기하9:1-13

열왕기하9:1-13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에게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라고 명했다. 예후에게 기름부으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처음 하셨다. 그런데 실행은 엘리사의 명령으로 한 젊은 선지자에 의해 성취되었다. 엘리야가 불순종한 것인가?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이 회개하자 아합가문에 대한 심판을 미루셨다. 그래서 아합의 아들 때에 와서 집행된 것이다. 아합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저질렀어도 회개하면 벌은 유보된다.  하나님의 자비는 이처럼 무궁하시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쓰임새와 상관없이 의인의 회중에 들어갈 수없다. 예후도 마찬가지다. 쓰임새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때문이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보다, 지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열왕기하 8:16-29

열왕기하 8:16-29 (공동번역)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유다 왕위에 오른 것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 오년이었다. 여호람은 삼십이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동안 다스렸다. 그는 아합의 사위가 되다 보니, 아합 왕조가 하던 대로 이스라엘 왕들의 전철을 밟아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당신의 종 다윗을 보시어, 유다를 멸망시키고 싶지 않으셨다. 일찍이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를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다스리고 있는 동안에 에돔은 유다에 반기를 들고 저희의 왕을 세웠다. 그러자 여호람은 병거대를 출동시켜 사일로 건너갔다. 왕과 병거대장들은 밤에 출동하였다가 도리어 에돔 군에게 포위되어 참패를 당하였다. 그래서 그의 군대는 도망쳐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리하여 에돔은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 오늘에 이르렀다. 리브나가 반란을 일으킨 것도 그 때였다. 여호람 왕의 나머지 역사는 유다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람은 숨을 거두고 조상들에게로 돌아가 다윗성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아하지야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여호람의 아들 아하지야가 유다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의 일이었다. 아하지야는 이십이 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였다. 그는 아합 가문과 혼인하다 보니, 아합 가문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시리아 왕 하자엘을 맞아 싸우려고 라못길르앗으로 갔다. 그런데 시리아 군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혔다. 요람 왕은 라못에서 시리아 왕 하자엘과 싸우다가 입을 상처를 치료하려고 이즈르엘로 돌아왔다.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지야가 이즈르엘로 가서 아합의 아들 요람을 문병하였다.

왛아 8:16-29
//유다왕 여호람과 여호람을 이은 아하시야의 꼬리표는 “아합 왕조가 하던 대로’ ‘아합 가문의 전철을 그대로 밟다’ 였다. 아합의 사위가 되고 아합 가문과 혼인한 결과 하나님의 눈을 거슬리는 일을 하게되었다.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자 유다 왕조는 급겨히 기울게 된다. 여호람 때는 에돔이 유다로부터 독립을 했다. 아하시야 때는 이스라엘과 연합해도 시리아와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유다의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요담에게 문병을 가는 것은 형제애로 따지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형제애가 하나님 사랑보다 커서는 안 된다. 형제애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방과의 통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