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9-18

열왕기하 1:9-18 (공동번역)

(사마리아 왕은) 오십인대장을 부하를 딸려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들이 산으로 올라가 보니, 엘리야는 마침 산 위에 앉아 있었다. 대장이 “하느님의 사람이여, 당장 내려오시오. 어명이오.” 하고 외치자, 엘리야는 그 오십인대장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렇다,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 대장과 함께 너희 오십인부대를 삼켜버릴 것이다.” 그러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대장과 함께 그 오십인부대를 삼켜버렸다. 왕은 다시 다른 오십인대장을 부하를 딸려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도 또한 산으로 올라가 외쳤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어명이오, 산에서 즉시 내려오시오.” 엘리야가 그들에게, “그렇다,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 대장과 함께 너희 오십인부대를 삼켜버릴 것이다.” 하고 대답하자 하느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대장과 함께 그 오십인부대를 삼켜버렸다. 왕은 세번째로 오십인 대장을 부하를 딸려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는 산에 올라가서 엘리야를 만나 그 앞에 무릎을 꿂고 애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소인과 이 군인 오십 명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미 두차례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인부대를 대장과 함께 삼켜버렸습니다. 이제 이 목숨만은 아껴주십시오.” 그 때 야훼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일렀다. “그와 함께 내려가거라. 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하여 엘리야는 그와 함께 하산하여 왕 앞에 나타나 그에게 말을 전하였다. “야훼께서 이렇게 선언하셨소. ‘네가 에크론의 신 바알즈불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사람을 보내다니, 이스라엘에는 신이 없느냐? 네가 그런 일을 했을므로, 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이대로 죽고 말 것이다.'”
엘리야가 전한 야훼의 말씀대로 왕이 죽자 그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아우 여호람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제이년이었다. 아하지야 왕의 나머지 역사는 이스라엘 왕조실로에 기록되어 있다.

왕하2:9-18
//사마리아 왕을 엘리야의 신탁을 들었음에도 엘리야를 잡아오라고 오십인부대를 보냈다. 첫 두 오십인부대는 사마리와 왕편에 섰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타죽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은 엘리야의 필살기가 아니던가? ㅎㅎ 엘리야의 반응이 정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말을 들어주셨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비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다. //세번째 오십인부대의 대장은 어명을 집행하기 보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군사라면 왕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주의 백성이라면 왕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세번째 대장은 첫 두 오십인부대장과 달리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하나님 대하듯 했다. 물론 첫 두 대장도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저 수식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번째 대장은 하나님께서 목숨을 가법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 목숨이 달렸다는 것도 알았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사람을 대하는 것도 달라진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에 합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을 참 하나님(신)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마리아 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없어 교회 다닌다면서도 점집을 들락거리느냐고 주님은 책망하신다. 그 결국은 죽음이다. 우리가 믿는 신(하나님)이 참 신(하나님)이신줄 모른다면 그 자체가 이미 생명이 없는 것이다. ////최근에 오디세이 영화를 봤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영웅들과 일반인들의 차이는 영웅들은 신들과 함께 하고 일반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웅들은 정의와 경건을 행한다. 정의는 사람들과의 관계고 경건은 신들과의 관계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영웅들이다. 임마누엘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성도가 영웅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정의와 경건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방 신화에서도 사람들이 정의롭지 않고 불경하자 신들이 사람들과 멀어졌다. 하물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랴!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또 부르신다. 정의와 경건의 삶으로!

열왕기하 1:1-8

열왕기하 1:1-8 (공동번역)

아합이 죽은 뒤에 모압이 이스라엘에 반기를 들었다. 아하지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의 다락방 난간에서 떨어져 몹시 다쳤다. 그래서 그는 에크론의 신 바알즈붑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의 병이 회복될 수 있는지를 문의하게 하였다. 그런데 야훼의 천사가 디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나타나서 사라미아 왕이 보낸 사람들을 만나 이렇게 전하라고 명하였다. “이스라엘에는 신이 없어서, 에크론의 신 바알즈붑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가느냐? 나 야훼가 선언한다. 너는 결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대로 죽고 말 것이다.” 엘리야는 이 말을 전하고 떠났다. 왕의 특사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왜 이렇게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도중에서 웬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께 돌아가서 야훼의 말씀을 전하여라. – 나 야훼가 선언한다. 이스라엘에는 신이 없어서 에크론의 신 바알즈붑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사람을 보내느냐? 바로 그 때문에 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대로 죽고 말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왕은 그 말을 한 사람이 어떻게 차린 사람이더냐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가죽으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몸에는 털옷을 걸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틀림없이 디스베 사람 엘리야다!” 하면서

왕하1:1-8
//이스라엘의 신(하나님) 여호와. 에그론의 하나님(신) 바알세붑.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은 엘리야를 통해, 사마리아 왕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신)이 없어서 에그론의 신(하나님)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책망하신다. 사마리아의 왕은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을 세상 하나님(신)처럼 대했다. 적어도 아픈 몸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신보다 에그론의 하나님이 더 잘 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신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섬기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신(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의 기쁨을 도모하는 예배다. 참 예배가 될 수 없다.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이스라엘의 신만이 참 신(하나님)이심을 다시한번 보여주실 것이다. 사마리아 왕은 참(신) 하나님 대신 생명없는 하나님(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었다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엘리야가 누군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의 신(하나님) 여호와가 참 신(하나님)이심을 증거한 자가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신)이 그냥 신(하나님)이 아니라 참 신(하나님)이심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모두 자기 신들을 믿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요즘은 최고에 The 자를 붙이는 시대다. The 하나님(신)! 그래 봤자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님(신)이면 여전히 그저 신(하나님)이다! 참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참 하나님 한 분의 다스림에 순종해야 한다. 그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위기가 닥치면 또 다른 하나님(신)을 찾을게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