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1:13-20

요엘 1:13-20 (공동번역)

사제들아, 베옷을 걸치고 슬피 울어라. 제단에서 시중드는 자들아, 통곡하여라. 내 하느님께 시중드는 자들아, 와서 베옷을 걸치고 밤을 새워라. 너히 하느님의 전에 드릴 곡식도 포도주도 모두 떨어졌다. 단식을 선포하여라. 성회를 소집하여라. 장로들아, 전국민을 불러 너희 하느님 전에 모으고 야훼께 부르짖어라.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야훼께서 거둥하실 날이 다가왔구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마구 멸하실 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음식은 볼 수도 없이 되지 않았느냐? 우리 하느님의 전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았느냐? 흙이 말라 그 속에서 씨앗은 죽고 곡식이 없어 창고는 비고 곳간은 무너졌다. 목장이 없어져 가축들이 울부짖고 소떼들이 소란하다. 양떼라고 그 벌을 면할쏘냐? 야훼여, 내가 주께 부르짖습니다. 들판의 목장이 타버렸습니다. 벌판의 나무들도 모조리 타버렸습니다. 물줄기들은 모두 마르고 들판의 목장도 모두 타버려 가축들이 벌판에서 주께 부르짖습니다.

욜1:13-20
//하나님의 말씀을 성심껏 실천하지 않아 내린 저주들. 요엘은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저주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고 전한다. 종교지도자들에게 통곡하며 금식을 선포하며 전국민적으로 하나님께 탄식(기도)하라고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왕으로 거둥(임금님 행차)하신다. 심판자로 오신다. 하나님의 전에서 사람들의 기쁨과 즐거움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가축들과 자연만물들도 벌을 면하지 못하고 주께 탄식한다. 흙이 말라 그 속에서 씨앗은 죽는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천되지 못한다는 뜻이니, 곡식이 없고 창고는 빈다. 열매없는 삶이다. 열매 없는 삶은 가축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목장과 벌판의 물줄기도 모두 마르고 타버린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총체적 난국을 면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심껏 실천하지 않은 결과는 혹독할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곳이 곧 지옥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곳, 불순종의 자리가 지옥이다. 천국은 저 머리 하늘 위에 있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나라다.

요엘 1:1-12

요엘 1:1-12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내린 하나님의 말씀! 브두엘이 누군지 요엘이 누군지 어느 시대에, 누가 왕일 때 활동했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다만 브두엘 (하나님의 설득), 요엘 (여호와가 하나님) 이라는 이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만이 신(하나님)이심을 설득할 필요가 있는 대상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받는다. //먼저 늙은이들은 들으라고 하신다. 젊은이들보다 그래도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본 사람들이다. 풀무치-메뚜기-누리-황충으로 이어지는 메뚜기 재앙은 하나님의 저주의 징조의 하나다. 이웃나라의 침략도, 짓밟힌 포도원도, 약혼자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신명기 28:15~) 모세는 신명기 28장 전반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 그 말씀들을 성심껏 실천하면 받을 온갖 복을 말한 뒤 “그러나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않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지시하는 그의 모든 계명과 규정을 성심껏 실천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온갖 저주가 너희를 사로잡을 것이다. …” 하고 선언했다. //요엘의 독자들에게 지금 이들 저주가 임한 것이다. 이전에는 이들 저주가 각각 임했다면, 지금은 저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임할 정도다. 전무한 일이다. 그 결과 모든 사람에게서 기쁨은 사라졌다. 기쁨이 사라진 근원은 저주가 임한 근원,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성심껏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쁨의 원천은 삼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설득하신다. 예수께서 우리의 본이 되신다.

사사기 21:13-25

사사기 21:13-25 (공동번역)

그리고 나서 온 회중은 사람을 보내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사람들과 화해하고자 하였다. 베냐민 사람들은 돌아와서 살아 남은 야베스길르앗 여인들을 아내로 맞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의 수가 모자랐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하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생각하고 마음이 언짢았다. 그래서 회중의 장로들은 “베냐민 여인들이 모조리 없어졌으니, 살아 남은 남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어줄 수 있을까?” 하고 의논하였다. “이스라엘 중에서 지파 하나가 없어지지 않게 베냐민 지파에서 살아 남은 자들의 씨를 이어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리 딸들은 그들과 결혼시킬 수 없고…” 이스라엘 백성은 베냐민 지파에 딸을 시집보내면 저주를 받겠다고 서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해마다 실로에서 야훼의 축제가 열리지!” 실로는 베델에서 세겜으로 뻗는 길 동편에 있는 성으로서 베델의 북쪽, 레바논의 남쪽에 있었다. 그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시켰다. “포도밭에 숨어 있다가 실로 처녀들이 떼를 지어 춤추러 나오는 것이 보이거든 포도밭에서 나와 그 실로 처녀들 중에서 아내를 골라잡아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거라. 만일 여자의 아비나 형제가 와서 시비를 걸면 우리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만. ‘전쟁에서 여자를 잡아다가 아내로 삼듯이 그들도 당신네 여자들을 그렇게 한 것이니 용서해 주시오. 당신들이 자의로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다면 서약을 깨뜨리는 죄를 지은 것이 되겠지만그렇지도 않지 않소?'” 베냐민 사람들은 그 말대로 춤추는 여인들을 붙잡아 사내 수효만큼 아내감을 골라가지고 자기들 상속지로 돌아가서 성읍들을 재건하고 살게 되었다. 이렇게 해준 다음,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을 떠나 각각 자기 지파, 자기 가문이 사는 상속지로 흩어져 돌아갔다. 그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멋대로 하던 시대였다.

삿21:13-25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멋대로 하던 시대. 그래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때를 따라 사사를 세워주셔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셨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서원을 무를 생각은 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 베냐민 지파를 존속시키려고 했다. 서약을 깨뜨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야베스길르앗 주민을 살육하는 죄를 짓고도 죄인줄 몰랐다. 서약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남은 베냐민 사람들이 처녀를 납치하도록 묵인하는 죄를 짓고도 서약을 깨뜨리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ㅠㅠ //이것은 순종에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종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서약을 지키는 것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없는 집단 지성은 서약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서약은 무를 수 있다. 그러나 살인은 안 된다.

사사기 21:1-12

사사기 21:1-12 (공동번역)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서, 아무도 딸을 베냐민 가문에 시집을 보내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스라엘 군은 베델로 가서 저녁이 되도록 하느님 앞에 앉아서 소리를 질러 대성통곡하며 이뢰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이런 일을 당해야 했습니까? 어찌하여 오늘 이스라엘에서 지파 하나가 없어지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습니까?”
이튿날 이스라엘 군은 일찍 일어나 그곳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친교제를 드리면서 이스라엘 지파 중에 어는 지파가 야훼 앞에 모인 이 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는지 알아보았다. 누구든지 미스바로 야훼 앞에 나오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엄숙히 서약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동족 베냐민 지파를 생각하고 마음들이 언짢았다. “오늘 이스라엘에서 지파 하나가 없어졌구나. 우리가 아무도 딸을 베냐민 가문에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야훼께 서약을 해놓았으니,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아내를 얻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어느 지파가 미스바에 올라와 야훼 앞에 나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야베스길르앗에서는 이 대회에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점호해 보니, 과연 야베스길르앗 주민 가운데서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회중은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면서 지시하였다. “야베스길르앗으로 가서 여자와 아이들까지 온 주민을 칼로 쳐죽여라. 너희가 할 일은 이것이다. 모든 사내를 죽이고 사내와 한자리에 든 적이 있는 여자도 전멸시키고 처녀들만 남겨두어라.” 그들은 이 명령대로 하고는 야베스길르앗 주민 가운데서 사내와 한자리에 든 적이 없는 처녀 사백 명을 찾아내어 가나안 땅 실로에 있는 진지로 데려왔다.

삿21:1-12
//이스라엘에 왕이 없는 시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던 때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니 이스라엘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자신들의 뜻을 세웠다. 소위 서원/서약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서원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이유는 없다. (예수께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거의 진멸시키자 열두지파 중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에 딸을 주지 않겠다고 쓸데없는 서약까지 했었다. 하는 수 없이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불참한 야베스길르앗 주민을 쳐죽이고 처녀들만 남겨 베냐민지파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서약을 돌이킬 생각을 못한 전형적인 꼰대들의 방법이다. ////이스라엘은 나름 범죄하게 하는 지체(지파)를 잘라버리거나 뽑아버리고 서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적용했겠지만, 우리를 정결케 하는 것은 육체적 물리적 정결이 아니라, 영적 정결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니 정결할 수 없다. 하나님의 훈수가 없이는 악수만 계속 두게 될뿐이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말씀은 따르지 않고 전통과 관습에만 얽매인다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것이다.

사사기 20:29-48

사사기 20:29-48 (공동번역)

이스라엘은 기브아 사면으로 돌아가며 복병을 배치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이스라엘 군은 베냐민 군을 치러 올라가서 전과 마찬가지로 양쪽에 대열을 벌였다. 베냐민 군은 성을 비우고 그들을 맞아 싸우러 나왔다. 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베델로 가는 길과 기브온으로 가는 길에서 이스라엘 군을 쳐죽이기 시작하여 그 벌에서 삼십 명 가량 죽였다. 베냐민 군은 이스라엘 군이 먼저처럼 도망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이스라엘 군은 도망치는 체하여 적군을 성에서 큰길까지 유인해 내기로 작전을 세웠다. 한편 이스라엘 주력 부대는 있던 자리를 떠나 바알다말에서 전투 태세에 들어갔고 이스라엘 매복 부대는 기브아 주변에 숨어있다가 그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전 이스라엘 군에서 뽑힌 만 명 정예부대가 기브아 정면에 나타났다. 싸움은 치열하였다.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들이 앞으로 얼마나 비참한 일을 당할지 까맣게 몰랐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눈 앞에서 베냐민을 치셨다. 그날 이스라엘 군은 칼 쓰는 베냐민 군 이만 오천 백 명을 죽였다. 베냐민 군은 자기네가 패하였음을 알았다. 이스라엘 군이 베냐민 군이 보는 데서 뒤로 물러선 것은 기브아 주변에 복병을 배치해 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복병은 재빨리 기브아에 밀려 들어가 온 성 주민을 쳐죽였다. 이스라엘 군은 복병과 신호를 짜두었다. 그 성에서 연기가 치솟으면 싸우던 이스라엘 군은 발길을 돌리게 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베냐민 군은 이스라엘 군인을 삼십 명 가량 죽이면서 이스라엘 군이 저번 전투 때처럼 도망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신호로 삼았던 대로 연기가 그 성에서 기둥처럼 오르기 시작하였다. 베냐민 군인들이 돌아다 보니, 온 성이 불길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때를 놓치지 않고 이스라엘 군이 돌아섰고, 베냐민 군인들은 자기들의 운명이 다한 줄 알고는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군 앞에서 발길을 돌려 광야 쪽으로 빠져 나가려고 하였지만 벗어날 길이 없었다. 성에서 나온 부대로 한데 어울려 그들을 도륙하였다. 그들은 베냐민 군을 포위하여 틈을 주지 않고 동쪽으로 기브아 맞은편에 이르기까지 추격하며 짓부수었다. 그때에 쓰러진 베냐민 용사는 만 팔천 명이나 되었다. 남은 자들은 방향을 바꾸어 광야를 통과하여 림몬 바위 있는 데까지 도망쳤다. 그리로 가는 길에서도 이스라엘 군은 적을 오천 명이나 쳐죽이고 또 기돔까지 따라가면 남은 이천 명을 죽였다. 이렇게 해서 그날 죽은 베냐민 전사자 총수는 이만오천 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칼을 쓰는 용사들이었다. 그러나 육백 명은 광야를 통과하여 림몬 바위까지 도망쳐서 넉 달을 그 바위 있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스라엘 군은 다시 베냐민의 민간인들에게 돌아와서 그 성 사람과 짐승을 만나는 대로 칼로 쳐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성읍들에도 닥치는 대로 모조리 불을 놓았다.

삿20:29-48
//베냐민의 패배도 교만이 원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에 베냐민을 에 부치셨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패인은 교만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선 두번의 전투에서의 승리가 교만을 불렀다. 700명의 왼손잡이 특수부대를 너무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스라엘 전군의 유인전/매복전에 걸려든 베냐민은 결국 패하고 말았다. //한편 이스라엘 전군은 세번째에야 숫적 우위로 자만하지 않고 유인전과 매복전으로 베냐민 군을 이겼다. 베냐민 군대가 이만 육천 명이었는데 이만 오천 일백 명이 전사하고 나머지만 광야로 도망했다. 기브아에 있던 베냐민 사람들도 칼을 피할 순 없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전군은 다른 베냐민 마을들도 불을 놓아 쑥대밭을 만들었다. //베냐민 무뢰배들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자정의 노력을 하지 않은 베냐민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베냐민 지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물론 시시비비를 하나님 앞에서 따져보지도 않고 베냐민지파를 응징하려고 했던 이스라엘 전체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전쟁은 그 무엇보다도 큰 상처를 남긴다. 하물며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니…승자가 있을 수 없다. 이 모든 일은 영적 지도자들의 타락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매개 역할을 해야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자, 진짜 왕이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교회 내의 다툼도 마찬가지다. 왕자리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나님나라 백성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다면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인가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