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13-28

사사기 8:13-28 (공동번역)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싸움을 끝내고 헤레스 고개를 넘어 돌아오다가 수꼿 젊은이 하나를 잡아 수꼿 추장과 장로들의 이름을 대라고 하였다. 그든 그들 칠십칠 명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기드온은 수꼿에 이르러 그 곳 사람들에게 일렀다. “제바와 살문나를 보아라. 너희는 제바와 살문나의 손목이라도 잘라 가졌느냐고 하면서 우리 기진맥진한 군대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를 우롱하였다.” 기드온은 그 성읍의 장로들을 체포한 다음, 들가시와 찔레를 베어다가 수꼿 사람들을 찢어버렸다. 또 브누엘 성의 망대를 헐어보리고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그런 다음 그는 제바와 살문나에게 물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당신 같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왕자다운 귀골을 타고 났더군요.” 기드온이 말하였다.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 너희가 그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절대로 너희의 목숨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맏아들 예델에게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 소년은 아직 어린이였으므로 끔찍한 생각이 들어 칼을 뽑지 못하였다. 그것을 보고 제바와 살문나가 말하였다. “사내 대장부답게 네게 일어나 우리를 쳐라.” 이 말을 듣고 기드온이 일어나 제바와 살문나를 쳐죽이고 그들이 타던 낙타의 목에서 목걸이를 떼어가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청하였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주십시오.” 기드온은 “내가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니요, 내 자손이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하며 그들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대들을 다스리실 분은 야훼시오.” 기드온은 말을 계속하였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소. 각자의 전리품 가운데서 루리 하나씩을 내놓으시오.” 적군은 이스마엘 사람이었기 때문에 금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드리고 말고요.”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전리품 가운데서 고리 하나씩을 기드온이 펴 놓은 겉옷 위에 던졌다. 그의 요청대로 들어온 고리의 무게는 금 천칠백 세겔이나 되었다. 그 밖에도 목걸이뿐 아니라 여러가지 고리가 있었고 미디안 왕들이 입던 붉은 옷과 낙타 목에 두르는 사슬도 있었다. 이 모든 것으로 기드온은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가 사는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온 이스라엘이 그 에봇으 섬기며 음란을 피웠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되었다. 이와같이 하여 미디안은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기세가 걲여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 기드온 생전 사십년 동안 세상은 평온하였다.

삿8:13-28
//미디안 두 왕을 사로잡은 기드온은 돌아오는 길에 수꼿과 브누엘 들려 저주한 대로 수꽂의 장로들을 찢어버리고 브누엘의 망대를 허물어 버리고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수꼿과 브누엘은 이방나라 사람들이 아니었다. 동족에게 행한 일이다. 마치 앞으로 기드온을 돕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없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기드온은 미디안 두 왕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한다. 그들이 기드온의 형제들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기드온은 자신의 장자에게 미디안 두 왕을 칼로 쳐죽이라고 명령했다. 기드온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기 아들에게 미디안 두 왕을 쳐단하는 영광을 물려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기드온의 아들은 두려워 칼을 뽑지 못했다. 결국 미디안 두 왕이 기드온에게 사내 대장부처럼 굴라고 하자 기드온이 미디안 두 왕을 칼로 쳐죽였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기드온은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며 왕위에 오르기를 거절했다. 과연 기드온이 겸손해서 왕위를 거절한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 왕이심을 알아서 거절했을까? 아니다. 기드온은 (하나님 대신) 금붙이를 택했다. 기드온은 사내 대장부 답지 못한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힘센 장사, 큰 용사라고 불러주셨지만 그는 끝내 작은자였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작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니 에봇을 만들어 에봇을 섬겼다. 하나님을 다만 부적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이라도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다.) 미디안으로부터는 평화을 얻어냈지만 역시 사십년 평화에 그쳤다. ////우리에게 자비가 없는 것은 믿음 역시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다고 말하면 그러니깐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러나 작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결국 우리에게 그 작은 믿음마져도 있다 없다 하는 모양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공동번역)”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 기드온은 믿음이 작은 사사였다. 예수를 만난 우리의 믿음은 적어도 기드온의 믿음보다는 커야하지 않을까… 믿음의 사람이라면 자비를 베푸는 것이 당연하고,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

사사기 8:1-12

사사기 8:1-12 (공동번역)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미디안과 싸우러 나가면서 우리를 부르지 않았으니 어찌 이럴 수 있소?” 이렇게 기드온에게 엄중한 항의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을 여러분이 한 일과 어찌 비기겠습니까? 에브라임의 주운 이삭이 아비에젤의 수확 전부보다 낫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미디안 추장 오렙과 즈엡을 여러분들 손에 부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어찌 여러분이 한 일만큼 클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노기가 풀렸다. 기드온이 요르단 이르렀다. 그와 그가 거느린 삼백 명은 지친 몸으로 강을 건너 추격을 계속하였다. 그는 수꼿에 이르러 그 곳 사람들에게 청하였다. “나를 따르는 이 군인들이 지쳤소. 먹을 것을 좀 주시오. 나는 미디안의 두 왕 제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는 중이오.” 수꼿의 추장들이 대답하였다. “당신 군대에게 빵을 주다니, 당신이 지금 제바와 살문나의 손목이라도 잘라가졌다는 말이오?” 기드온은 “좋소. 야훼께서 제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부치시는 날, 들가시와 찔레로 당신들의 살덩이를 찢어버리겠소.” 하고는 브누엘로 올라가 그 곳 사람들에게 같은 청을 해보았지만 브누엘 사람들도 수꼿 사람들과 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자기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 성의 망대를 헐어버리리라고 하였다. 한편 동방 백성의 전군은 전사자 십이만 명을 내고 만 오천 명이 겨우 살아 남아 제바와 살문나와 함께 카르콜에 진을 치고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데 기드온은 노바와 욕느하 동편으로 목동들의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적진을 들이쳤다. 제바와 살문나는 또 도망을 쳤지만, 기드온은 뒤쫓아가서 마침내 미디안 두 왕 제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군대를 섬멸하였다.

삿 8:1-12
//에브라임 사람들과 기드온의 기싸움. 미디안의 두 추장을 죽여 머리를 가지고 온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이 처음부터 부르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승전의 공을 기드온이 혼자 챙기는 것을 견제한 것이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 두 추장을 죽인 것이 승전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며 에브라임 사람들을 추겨 세우며 다독였다. 이제 기드온은 두 추장이 아니라 미디안 두 왕을 뒤쫓고 있었다. 혹시나 두 추장 대신 두 왕이라는 더 큰 영광(상)을 노렸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한 발 후퇴한 것은 아닐까? //기드온은 계속해서 미디안 두 왕을 추격했다. 추격하는 과정에서 수꼿과 미누엘 두곳 추장에게 먹을 것을 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수꼿 추장과 브누엘 추장은 미디안 두 왕이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이고 여전히 만 오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을 치고 있으니, 삼백 명을 이끌고 추격하는 기드온보다는 여전히 미디안 쪽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수꼿과 브누엘을 저주한 기드온은 잘한 일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저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듯,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드온은 마침내 도망치는 미디안 두 왕을 사로잡고 그 군대를 섬멸했다. 미디안과 연합했던 군사 규모는 전사자 12만명에 마지막에 섬멸당한 1.5만명을 더하면, 도합 13만 명이 넘는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와 비교하면 사오백배 수준이다. 그렇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러나 단순히 전쟁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신들의 싸움이다. 곧 세상의 어떤 신들도, 어떤 신들의 연합도 창조주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의 하나님이시다.

사사기 7:15-25

사사기 7:15-25 (공동번역)

이렇게 꿈 이야기와 그 해몽하는 말을 듣고 기드온은 야훼께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와 일렀다. “일어나라. 야훼께서 미디안 진을 너희 손에 부치셨다.” 기드온은 삼백명을 세 부대로 나누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뿔나팔 하나와 횃불이 든 빈 단지 하나씩을 주고는 이렇게 일렀다. “너희는 나를 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대로 하여라. 내가 적진에 접근해 가서 하는 대로 따라 하여라. 내가 거느린 부대가 나와 함께 나팔을 불면 너희도 적진을 둘러싸고 있다가 나팔을 불며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쳐라.” 기드온이 자기 부대 일백 명을 거느리고 적진에 다다른 것은 한밤중 보초가 막 교대하고 나서였다. 그들은 나파을 불며 손에 든 단지를 깼다. 세 부대가 모두 나파을 불며 단지를 깨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 손으로는 나팔을 불며,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쳤다. 그러면서 적진을 둘려싼 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적군은 온통 갈팡질팡 아우성치며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삼백 명 군대가 나팔을 불어대고 있는 동안 야훼께서 적으로 하여금 저희끼리 마구 칼로 찔러 죽이게 하셨다. 그리하여 스레라 쪽으로 도망치던 적군은 벳시타에 이르렀고 더러는 타밧 건너편 아벨므홀라 냇가에 이르렀다. 납달리 지파와 아셀 지파와 온 므나쎄 지팡에서 불려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을 추격하는데, 기드온은 에브라임 온 산악 지대에 전갈을 보냈다. “내려와 미디안을 막아라. 그들을 앞질러 벳바라에 이르기까지의 요르단 강 나루들을 점령하여라.” 이 소집령을 받고 에브라임 사람은 모두 몰려나와 벳바라에 이르기까지의 요르단 강 나루들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미디안의 두 추장 오렙과 즈엡을 사로잡았다.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즈엡은 즈엡 포도주틀에서 죽이고 계속 미디안을 추격하였다. 오렙과 즈엡의 머리는 요르단 강을 건너 기드온에게 전해졌다.

삿7:15-25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개역개정에서는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라고 번역한다. ‘여호와의 칼, 기드온의 칼’이라고도 외쳤다. 음. ‘기드온 만세’ 나 ‘기드온의 칼’이라고 외쳤다는 부분은 뭔가 편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에 기드온이 편승했다고 그냥 넘어갈 일인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던가? //기드온과 삼백용사! 한 밤의 기습에 동원된 병사는 삼백용사가 맞다. 삼만이 넘는 병사를 돌려보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기드온은 납달리 아셀 므낫세 지파를 불러 미디안을 추격하게 했다. 싸움은 하나님께서 미디안으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셔서 자중지란으로 패하게 하셨는데, 기드온은 전갈을 보내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지파들로 하여금 미디안의 패로를 막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일까?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믿음의 힘센 장사가 되도록 해주셨는데 기드온은 육신적으로 스스로 높아지려고 했던 것 같다. 교만이다. 미디안의 두 추장 오렙과 즈엡을 죽인 머리를 가져오게 한 것 역시 자신에게 왕과 같은 권위가 있음을 과시하려던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 끊임없이 징표를 구했던 기드온은 드디어 사람들로부터도 징표를 얻어내었다.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사사기 7:1-14

사사기 7:1-14 (공동번역)

여룹바알이라고도 하는 기드온과 그가 거느리는 온 군대는 일찍 일어나 엔하롯에 진을 쳤다. 미디안은 거기에서 북편으로 모래 언덕 아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너희의 손에 미디안을 부치지 않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체도 않고 제 힘으로 승전했다고 으스댈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 너는 지금이라도 무서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이 군인들에게 일러라.” 기드온이 지체않고 그들을 떠나가게 하니 이만 이천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다. 야훼께서 다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군인이 아직도 많다. 모두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추리겠다.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라고 내가 일러주는 사람만 너와 행동을 같이하게 하여라. 그러나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 못 된다고 일러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와 행동을 같이할 수 없다.” 기드온이 군인들을 데리고 물가로 내려가니, 야훼께서 이렇게 일러주시는 것이었다. “개처럼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한편에 세우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마구 들이켜는 자들을 다른 편에 세워라.” 그러자 혀로 핥는 자의 수는 삼백명밖에 안 되었고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무릎을 끓고 물을 들이켰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나는 물을 핥아 먹은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리라. 나 이제 미디안을 네 손에 부쳤다.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라.” 기드온은 군인들이 가지고 있던 단지와 뿔을 거두어들이고는 삼백명만 남겨두고 나머지 이스라엘 군대를 모두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다. 미디안 군은 그 아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날 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적의 진지로 내려가거라. 내가 적진을 네 손에 부쳤다. 그러나 만일 내려가기가 무섭거든 먼저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내려가거라. 그리고 그들이 지껄이는 것을 들어보아라. 너는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어 진으로 쳐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부하 부라를 데리고 적진으로 접근해 가보니,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모든 동방의 백성들이 메뚜기떼처럼 거기 평지를 덮고 있었고 낙타는 바닷가의 모래처럼 수없이 많았다. 기드온이 다다라보니, 마침 한 병사가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리떡 한 덩러리가 우리 미디안 진으로 굴러들어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우리 천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뒤엎자 천막은 쓰러지고 말았네.” 친구가 대꾸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일세. 하느님께서 미디안과 이 모든 진을 그의 손에 부치셨군.”

삿7:1-14
//이보다 더 쉬운 싸움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나하나 조목조목 알려주셨다. 기드온은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군인의 수와 상관 없다. 메뚜기떼 같고 바닷가의 모래 같은 적군이라도 삼백명이면 족하다. 오히려 많은 군인을 데리고 싸우면 병사가 많아서 이겼다고 자고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미디안 병사의 해몽. 이방 병사가 기드온을 어찌 알았을까? 더군다나 하나님을 어찌 알았을까? 물론 이방 병사는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냥 신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전쟁을 신들의 놀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들을 기드온의 손에 부쳤다고 해몽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하나님의 영이 이방 병사의 꿈과 해몽에 함께 하신 것이다. 징표를 구하고 또 구하는 믿음이 작은자 기드온을 하나님께서는 이방 병사의 꿈과 해몽을 통하여 믿음이 큰 자, 힘센 장사, 큰 용사로 준비시키신다. 오늘 이야기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로 불신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들려주신다. 종교지도자들의 입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세상이 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사기 6:25-40

사사기 6:25-40 (공동번역)

그날 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비의 일곱 살 된 살진 소를 끌고, 네 부하 열 사람을 데리고 가서 네 아비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곁에 있는 아세라를 찍어라. 그리고 이 산성 꼭대기에 너의 하느님 야훼께 바칠 제단을 차곡차곡 쌓아라. 그리고 그 살진 소를 잡고 찍어낸 아세라 목상을 태워 번제를 드려라.” 기드온은 부하 열 사람을 데리고 야훼쎄서 시키신 대로 하였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과 성읍사람들이 두려워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해치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성읍 사람들이 일어나 보니, 어이없게도 바알의 제단은 헐려 있었고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은 찍혀 있었으며 새로 선 제단 위에는 살진 소가 번제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고 서로 부산을 떨며 조사하고 캐어본 결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한 일임을 알아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요아스를 닦달하였다. “당신 아들을 내놓으시오. 죽여버려야겠소. 바알의 제단을 헐고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을 찍어벼렸는데 어찌 그냥 두겠소?” 요아스는 둘러선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답변하였다. “당신들이 바알을 역성하겠다는 거요? 당신들이 바알을 도울 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바알을 역성하는 사람은 해뜨기 전에 죽을 테니 그리 아시오. 만일 바알이 신이라면,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헐었으니 친히 나서서 기드온을 칠 것이 아니오?” 그날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었다. 바알의 제단을 헐었기 때문에 바알이 그와 맞설 것이라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마침 미디안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백성들을 다 모아가지고 강을 건너 이즈르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기드온은 뿔나팔을 불어 아비에젤 일족에게 따라 나서라고 하였다. 그는 또 전령들을 므나쎄 온 지파에 보내어 므나쎄 지파도 따라 나서라고 불러내었다. 아셀 지파와 즈블룬 지파와 납달리 지파에도 전령들을 보내니 그들도 올라와서 기드온과 합세하였다. 기드온이 하느님께 아뢰었다. “이미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제 손으로 구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이렇게 해주십시오. 보십시오. 제가 타작마당에 양털 한 뭉치를 이렇게 펴놓습니다. 만일 이 양털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고 땅바닥은 말라 있으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제 손으로 구하시려는 줄로 알겠습니다. 정말 그대로 되었다. 기드온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털 뭉치를 짜보니 한 대접 가득 물이 나왔다. 기드온이 다시 하느님께 아뢰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노하지 마십시오. 양털뭉치로 꼭 한 번만 더 시험하게 해주십시오. 이번엔 양털만 말라있고 사방이 땅바닥은 이슬로 젖게 해주십시오. 그 날 밤 하느님께서 그대로 해주셨다. 양털은 말라 있었고 사방의 땅바닥은 온통 이슬로 젖어있었다.

삿6:25-40
//어제 기드온에 대해 살펴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천사는 기드온을 힘센 장사라고 불렀다. 개역개정에서는 큰 용사라고 불렀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일하고 밤에 몰래 일한 기드온에게 적합한 표현일까 묻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힘센 장사라고 부르시면 힘센 장사다. 큰 용사가 아니었어도 큰 용사다. 오늘 25절에 보면’ 기드온은 적어도 십부장이었다. 부하 열사람이 있었다. 34절부터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기드온이 힘센 장사, 큰 용사로 이스라엘을 이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작은자로 하나님께 징표를 구한다. 양털로 하나님의 뜻을 반복해서 묻는 것은 확실히 불신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믿음이) 작은 자 기드온의 요청을 들어주셔서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뜻을 확인시켜 주셨다. 이렇게 기드온을 힘센 장사로 (믿음이 큰 용사로) 만들어 가셨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험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병이 낫는 것으로, 복권에 당첨되는 것으로,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는 것으로, 시험을 잘 보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어서는 소용이 없다. 대신 내가 손해보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시험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 그 말씀에 순종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하나님만으로 기뻐해야 한다. 적어도 나의 유익과 무관해야 한다. 나를 기쁘게 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아니어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굳이 하나님께 징표를 구할 필요가 없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