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29-40

사사기 11:29-40 (공동번역)

야훼의 영이 입다에게 내렸다. 그는 길르앗과 므나쎄 지역을 일주하고 길르앗 미스바에 있다가 다시 거기에서 암몬 군의 배후로 돌았다. 거기에서 입다는 야훼께 서원하였다. “만일 하느님께서 저 암몬 군을 제 손에 부쳐주신다면, 암몬 군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 제 집문에서 저를 맞으러 처음 나오는 사람을 야훼께 번제물로 바쳐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입다는 암몬 진지로 쳐들어갔다. 야훼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부쳐주셨으므로 아로엘에서 민닛 어귀에 이르기까지 스무 성읍을 쳐부수었다. 또 아벨그라밈까지 진격하며 마구 짓부수었다. 이리하여 암몬 군은 이스라엘 군에게 꺾이고 말았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소구를 잡고 춤을 추며 집에서 나와 그를 맞은 것은 그의 외동딸이었다. 입다는 자기 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옷을 찢으며 외쳤다. “아이고, 이 자식아, 네가 내 가슴에 칼을 꽂는구나. 내가 입을 열어 야훼께 한 말이 있는데, 천하 없어도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데 이를 어쩐단 말이냐!” 그러자 딸이 아뢰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를 두고 야훼께 하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그대로 하십시오. 야훼께서 아버지의 적수인 암몬 사람들에게 복수해 주셨는데, 저야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그리고서 딸은 한 가지만 허락해 달라고 하며 아버지에게 청을 드렸다. “두 달만 저에게 말미를 주십시오. 그러면 벗들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 돌아다니며 처녀로 죽는 몸, 실컷 울어 한이나 풀겠습니다.” 입다는 두 달 말미를 주어 딸을 떠나 보냈다. 두 달 동안 딸은 벗들과 함께 산에 들어가 처녀로 죽는 것을 한하여 실컷 울었다. 두 달이 지나 아버지에게 돌아오자 아버지는 딸을 서원한 대로 하였다. 그 딸은 남자를 안 일이 없었다. 이로부터 이스라엘에는 한가지 관습이 생겼다.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생각하고 이스라엘 처녀들은 해마다 집을 떠나 나흘 동안 애곡하게 된 것이다.

삿11:29-40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입다는 승전을 위해 인신번제의 서원을 했다. 인신번제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서원이 하나님의 영의 임한 사람에게 가당한 일인가? 하나님의 영이 임했어도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도 별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입다는 서원을 왜 돌이키지 못했나? 레위기 5장 4-6절에 보면 경솔하게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 선한 일이든 서원하였을 경우,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면 자신의 허물을 여호와께 어린 양이나 염소를 바쳐 속죄제를 드려 속죄하면 되었다. 레위기 27장에 따르면 입다 딸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은 10-30세겔로 대속금을 내면 되었다. 그런데 입다는 잘못된 서원에 따른 허물을 인정하고 속죄하거나 대속금을 내는 대신 서원을 이행했다.ㅠㅠ //입다가 율법에 무지했기 때문이었을까? 출애굽의 역사를 꿰고 있던 입다가 과연 율법에 무지했을까? 그럴리 없다. 그러나 입다 평생에 대속금을 내고 서원을 무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입다 시대는 제사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시대였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제사장 하나 입다의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고나 할까? //물론 수령과 사령관인 입다는 ,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입다는 대속금을 내거나 속죄제를 드려 하나님께 올린 서원을 무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수치스러운 일이 될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 딸이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십자가에서 대속금을 내시고 속죄제로 죽으셨다. 때로는 서원을 무르고서라도 하나님을 기쁘신 뜻에 따라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잘못한 서원을 지키시길 원치 않으신다. 돌이키라고 하신다.

사사기 11:12-28

사사기 11:12-28 (공동번역)

입다는 암몬족 임금에게 사절을 보내어 말을 전했다. “나와 그대 사이에 무엇이 잘못됐다고 내 영토에 쳐들어 왔는가?” 암몬족 임금은 입다의 사절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아르논 개울과 야뽁강 사이에 있는 내 영토를 요르단강에 이르기까지 빼앗지 않았느냐? 이제 그것을 고이 돌려보내라.” 입다는 암몬족 임금에게 다시 사절을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나 입다가 말한다. 이스라엘은 모압 영토나 암몬족의 영토를 빼앗은 적이 없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광야를 거쳐 홍해를 지나 카데스에 이르러 에돔 왕에게 사절을 보내어 그의 영토를 지나가게 해달라고 청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에돔 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모압 왕에게도 사절을 보냈으나 그도 거절하여 할 수 없이 카데스에 머물러 있다가 광야를 지나 에돔과 모압 영토를 돌아서 모압 영토 동편으로 갔었다. 아르논 개울이 그 국경이었으므로 아르논 개울 건너편에 진을 치고는 모압 국경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헤스본에서 왕노릇 하는 아모리족의 임금 시혼에게 사절을 보내어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토를 지나게 해달라고 청을 넣었다. 그런데 시혼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기는 커녕 군대를 총동원해 가지고 나와서 야하스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과 싸웠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시혼과 그의 온 군대를 이스라엘 손에 부치셨으므로 이스라엘은 그들을 쳐부수고 그 지역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아르논 개울과 야뽁강 사이에 있는 아모리 사람들의 온 땅을 광야에서 요르단강에 이르기까지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아모리 사람들을 몰아내셨는데, 이제 와서 네가 우리를 몰아내겠단 말이냐? 너는 네가 섬기는 신 그모스가 빼앗아준 땅을 다 차지하고 있지 않느냐? 우리도 우리의 신 야훼께서 빼앗아주신 땅을 차지하고 있는데, 어떻단 말이냐? 모압왕 시뽈의 아들 발락도 이스라엘과 대항할 엄두를 못 내고 싸우지 못했는데, 네가 얼마나 잘났다고 감히 덤비느냐?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거기 딸린 촌락, 아로엘과 거기 딸린 촌락, 또 요르단강을 끼고 있는 마을들에 자리잡고 산 지도 삼백 년이나 되었는데, 너는 왜 여태까지 이 고장들을 찾지 않았느냐? 나는 너에게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네가 나에게 막의를 품고 전쟁을 걸어오다니 어찌 된 일이냐? 심판자 야훼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과 암몬 백성 사이를 판가름해 주시기 바란다.” 그러나 암몬족의 임금은 입다에게서 온 전갈을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다.

삿11:12-28
//사사기 저자가 입다를 굉장한 장사 (큰 용사)라고 부른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단순히 그가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역사를 꿰고 있어서다. 출애굽의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나님을 알고 있으니 큰 용사라고 불릴만 하다. //입다는 무력으로 암몬을 물리치려고 하지 않았다. 사절을 보내 먼저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땅을 찾으러 왔다는 암몬 왕에게 입다는 무단점유가 아니라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그 땅은 이미 지난 삼백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자리잡고 살고 있는 땅이라며 점유취득시효도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입다는 영토문제를 심판자 하나님 앞으로 가져갔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암몬 왕은 입다의 전갈을 무시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힘으로 해보겠다는 자세다. ////큰 용사, 사내 대장부라는 표현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믿음이 크다는 성경적 표현이다. 주님은 우리의 작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큰 자라고 불러주신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하게 살아내야 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더이상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불러주셨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못 들은 체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도 친구되신 주님처럼 살아야 한다.

사사기 11:1-11

사사기 11:1-11 (공동번역)

마침 길르앗 사람 가운데 입다라는 굉장한 장사가 있었는데, 그는 길르앗이라는 사람이 창녀의 몸에서 얻은 아들이었다. 길르앗의 본처에게서 난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아들들이 자라서 입다에게 “너는 바깥 여자에게서 난 놈이야. 그러니 우리 아버지의 상속을 받을 수 없어.” 하면서 그를 쫓아내었다. 그래서 입다는 자기 형제들을 떠나 돕이라고 하는 지방에 도망가서 살았는데 건달패들을 모아 비적떼의 두목이 되어 있었다. 암몬 사람들이 쳐들어 온 것은 이런 일이 있은지 얼마 뒤의 일이었다.
암몬 백성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자, 길르앗 원로들은 돕 지방으로 입다를 데리러 가서 그에게 청했다. “그대가 와서 우리의 장군이 되어주어야 우리가 암몬 군을 칠 수 있겠소.” “나를 미워하여 내 가문에서 쫓아내던 때는 언제고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해서 나한테 올 때는 또 언제요?” 입다는 길르앗 원로들의 청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그대를 찾아온 것이 아니오?” 하며 길르앗 원로들은 입다에게 청하였다. “우리하고 같이 가서 암몬 백성을 물리쳐만 준다면, 우리 길르앗 사람들은 그대를 수령으로 모시겠소.” 입다가 길르앗 원로들에게 재우쳐 물었다. “내가 당신들하고 같이 가서 암몬 백성과 싸운다고 합시다. 그 때 야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부치시면 당신들이 나를 수령으로 받든단 말이지요?” “야훼께서 우리 사이에 오고가는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장군 말씀대로 하는가 하지 않는가 두고 보시오.”길리앗 원로들이 이렇게 다짐하자, 입다는 길르앗 원로들을 따라 나섰다. 백성들이 그를 수령이자 사령관으로 받들어 모시게 되자, 입다는 야훼 앞에서 백성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그 곳은 미스바였다.

삿11:1-11
//입다. 굉장한 장사. 길르앗이 창녀(기생)에게서 나은 아들이다. 굳이 본처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연 설명한다. //입다는 서자 홍길동보다도 못한 처지였다. 하여간 집나온 홍길동이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면, 쫓겨난 입다는 비적떼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개역개정에서는 공동번역이 건달패라고 번역한 단어를 잡류라고 번역한다. 입다를 따르는 무리들이 가치없는 무익한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암몬이 쳐들어오자 입다가 이끄는 비적떼에 대한 길르앗 장로들의 태도가 싹 바뀌었다. 굉장한 장사 (큰 용사) 입다 외에는 암몬과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큰 용사 – 길르앗 사람들이 입다를 처음부터 큰 용사로 여겼을리 만무다. 기드온도 큰 용사라고 불렸는데, 이는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에게 사령관과 수령 자리를 약속하고 입다를 모셔왔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온 백성이 입다를 수령이자 사령관으로 받들기로 다짐했다. 혹은 입다가 하나님 앞과 온 백성 앞에서 수령/사령관의 임무를 다하겠다고 선서했다. (마치 오늘날 대통령 취임선서처럼) ////우리는 모두 한 때, 잡류였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가치없고 무익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영적으로 이미 죽었었다. 그런데 대장 예수를 만났다. 세상 잡류도 굉장한 장사를 만나면 그를 두목으로 모신다. 하물며 우리랴! 우리는 굉장한 장사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으니, 예수를 왕이요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 세례식에서 나는 아버지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자매들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서약을 했다. 성도라면 이 서약에 신실하게 살려고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

사사기 10:1-18

사사기 10:1-18 (공동번역)

아비멜렉 다음에는 이싸갈 출신인 돌라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하러 일어났다. 그는 도도의 손자이자 부아의 아들이었는데 에브라임 산악 지대에 있는 사밀이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는 이십삼 년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있다가 죽어 사밀에 묻혔다.
그 다음에 길르앗 출신 야이르가 일어나 이십이 년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에게는 나귀를 타고 다니는 아들 삼십 명이 있었고 그들이 차지한 천막촌이 삼십 개 있었다. 아직도 야이르의 천막촌이라 불리는 곳이 길르앗에 있다. 야이르는 죽어 카몬에 묻혔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백성의 신들,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겼다. 이렇게 그들은 야훼를 저버리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이런 짓들이 노여우시어 야훼께서는 그들을 블레셋 사람과 암몬 백성의 손에 넘기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요르단 강 건너편 길르앗지방 아모리 땅에 사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십팔 년 동안 억압하며 짓밟았다. 암몬 백성은 또 요르단 강을 건너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쳤다.
이스라엘의 고생은 막심하였다. 그리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께 부르짖었다.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하느님 야훼를 저버리고 바알 신들을 섬겼습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이집트인들과아모리 사람과 암몬 백성과 블레셋 사람과 시돈 사람과 아말렉족과 미디안 족이 너희를 못살게 굴 때에 너희는 나에게 부르짖었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그들의 손아귀에서 건져내 주었다. 그랬는데도 너희는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어떻게 내가 이제 너희를 다시 건져내 주랴? 너희가 선택한 신들에게나 가서 부르짖어 보아라. 너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신들이 너희를 살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께 아뢰었다. “우리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다만 이번만은 우리를 살려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남의 나라 신들을 없애버리고 야훼를 섬기자,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수 없게 되었다. 마침 암몬 군이 길르앗에 몰려와 진을 쳤다. 이와 대치하여 이스라엘 군은 미스바에 모여 진을 쳤다. 그 때 길르앗 백성의 추장들은 누구든지 나가서 암몬 군과 싸우면, 그 사람을 길르앗 전 주민의 통치자로 삼자고 의견을 모았다.

삿10:1-18
//아비멜렉의 탐욕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내우는 하나님의 심판과 이어지는 사사 돌라와 야일에 이르러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이 둘이 사사로 있었던 기간이 도합 45년이다. 사사라는 약처방 기간이 사십 년에서 이십여 년으로 줄어드는 인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주변의 온갖 신들을 섬겼다. 결국 하나님은 블레셋과 암몬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치셨고 이스라엘의 고생은 막심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죽을 죄를 지었지만 ‘이번만은 한 번 더’ 자신들을 살려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떼를 썼다. 이번에는 다행히 떼만 쓴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의 신들을 없애버리고 하나님을 섬겼다. 그제서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게 되었다. //죄인인 줄 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만을 섬겨야 한다. 여전히 온갖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말로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 구원이란 임마누엘이라고 누차 적용해 왔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는데 그 품에 안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다른 신(것)들을 섬기는 사람들을 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제하여 버린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만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을 품으신다. 더럽고 냄새나고 꾸질꾸질한 모습이라도 다른 신들을 쫓아버리고 제거하고 주님께 나와야 한다. 그러면 죄인이라도 품어주신다. 의롭다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품었다가도 토해내실 것이다. ////나는 누가복음 18:13 에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기도한 세리가 부럽다.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는 세리의 자리에 서있는 나 자신을 떠올리며 어쩔줄 몰라할 때가 많다. 세리는 주님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자신의 처지만 조용히 읊조렸다. 우리가 주님께 떼를 써야 한다면 이런 자세로 떼를 써야한다. 감사보다 앞서 해야할 기도다. 구원 말고 주님께 떼를 써야 할 문제가 또 있을까?

사사기 9:46-57

사사기 9:46-57 (공동번역)

이 소식을 듣고 세겜 성루에 들어가 있던 어른들은 엘브릿 신당 밀실로 피신하였다. 아비멜렉은 세겜 성루에 있던 어른들이 모두 거기에 모여 있다는 말을 듣고는 휘하 군대를 모두 이끌고 살몬산으로 올라가며 손에 든 쌍날 도끼로 나무를 찍어 어깨에 메고 뒤따르는 군인들에게 일렀다. “내가 이러고 있는데 어째서 보고만 있느냐? 어서 내가 하는 대로 하여라.” 군인들이 저마다 나무를 찍어가지고 아비멜렉을 따라 나무를 쌓아놓고 그 밀실에 불을 질렀다. 그리하여 세겜 성루에 있던 사람이 다 죽었는데 남녀 천명 가량이 죽었다.
그 후에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진군하여 포위하고 공격해서 그 성을 함락시켰다. 그런데 그 성읍 한가운데는 견고한 성루가 있었는데 그 성의 어른들뿐 아니라 남녀 주민이 모두 그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 문을 걸어 닫고 성루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비멜렉은 그 성루로 공격해 가서 성루 문 가까이에 불을 지르려고 하였다. 그 때 한 여인이 아비멜렉의 머리에 맷돌짝을 내리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수었다. 아비멜렉은 즉시 무기 당번을 불러 일렀다. “내 칼을 뽑아 나를 죽여라. 여자한테 죽었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다.” 그리하여 아비멜렉은 무기 당번에게 찔려 죽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각기 제 고장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자기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아버지에게 못할 짓을 한 죄를 아비멜렉에게 갚으셨고 세겜 사람들도 죄를 받아 죽게 하셨다. 여룹바알의 다른 아들 요담이 퍼부은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삿9:46-57
//세겜 장로들은 세겜 성루로 피했다. 아비멜렉은 그 성루에 불을 놓아 그곳에 피해 있던 남녀 천명 가량을 모두 죽였다. 세겜은 이렇게 끝장났다. //이어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진군한다. 데베스는 왜? 단지 세겜의 이웃이라는 이유로? 아비멜렉은 반역의 뿌리를 뽑는다는 명목으로 데베스를 침공했지만 하나님은 데베스를 아비멜렉을 벌하시는 덫으로 사용하셨다. //결국 아비멜렉은 한 여인이 성루에서 던진 맷돌짝에 맞아 두개골이 부서졌다. 여자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기 싫다며, 아비멜렉은 무기 당번에게 자신을 찌르라고 했고, 아비멜렉은 무기 당번에게 찔려 죽었다. 이렇게 세겜과 아비멜렉의 불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요담의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가시나무! 가시나무도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나무와 함께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따라서 가시나무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만드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가시나무는 양들을 야생포식자 동물로부터 보호하는 좋은 울타리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내야하지 가시를 휘두르며 군림해서는 안 된다. 좋은 목재나 땔감이 되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창조질서를 거스려서는 안 된다.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 가시도 감사~~기쁨과 슬픔, 아픔과 절망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돋은 가시가 있다면 이웃을 향해 사용되지 않게 하시고, 가시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이유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