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3:1-12

열왕기하 3:1-12 (공동번역)

유다 왕 여호사밧 제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위에 올라 십이 년을 다스렸다. 그는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지만 그의 부모처럼 악하지는 않았다. 그는 부왕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철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저질렀던 것과 같은 죄에 매여 그것을 떨쳐버리지는 못하였다.
모압 왕 메사는 목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왕에게 암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쳐왔었다. 그러다가 아합 왕이 죽자 모압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호람 왕은 즉각 사마리아를 떠나 이스라엘 군을 총동원하여 출정하는 한편,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전갈을 보냈다. “모압 왕이 나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모압을 치러 갈 터인데 당신도 함께 가서 싸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유다 왕이 대답하였다.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가 내 것 네 것 찾을 사이입니까? 내 군대 네 군대, 내 군마 네 군마 따질 사이입니까? 어느 길로 쳐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에돔 광야를 통과합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 유다 왕, 에동 왕이 함께 출정하였다. 돌아가는 길로 칠일 동안 행군하였는데 그만 군인들과 데리고 하는 짐승들이 마실 물이 떨어졌다. 이스라엘 왕이 걱정을 하였다. “큰일 났다. 야훼께서 우리 세 왕을 끌어내셔서 모압 군대의 밥이 되게 하셨구나.”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이렇게 물었다. “여기 야훼의 예언자가 없습니까? 야훼의 뜻을 알아보게 말입니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 하나가 “마침 사밧의 아들 엘리사라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엘리야의 시중을 들던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에게서라면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오” 하고 여호사밧이 말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더불어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왕하3:1-12
//아합 왕이 죽자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던 모압이 반기를 들었다. 이스라엘 왕은 유다 왕과 동맹하고 길을 내준 에돔 왕과 연합하여 모압을 치러 원정을 떠났다. 세 왕의 연합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강으로 남기 위한 처사였다. //이들의 원정은 물부족의 어려움을 만났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께 원망했고 유다 왕은 그제서야 모압원정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고자 했다. 에돔 왕은 /정/명(모압)/가/도/를 요구하는 이스라엘 왕에게 길을 내 준 것 뿐이었지 실제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다 왕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선지자를 찾았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 하나가 엘리사가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했다. 엘리야의 시중을 들던 선지자라는 말에 유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두 왕과 더불어 엘리사를 찾아 내려갔다. 여전히 엘리야의 그늘에 있는 엘리사!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약육강식으로 몰아부쳐서는 안 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치러지는 전쟁이 약육강식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강대국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그런데 서로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착각한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전쟁이라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전술이라면 하나님께서 친히 전쟁의 방해군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은 전쟁이 아니라 화평을 원하신다. 다만 전쟁을 통해 불순종의 백성들과 이방들을 벌하신다.

열왕기하 2:15-25

열왕기하 2:15-25 (공동번역)

예리고에서 온 예언자 수련생들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엘리야의 영검이 엘리사에게 내렸구나.” 그러면서 엘리사 앞으로 나와 땅에 엎드려 절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굳세고 용감한 장정이 오십명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보내셔서 당신의 스승 엘리야를 찾아보게 합시다. 어쩌면 야훼의 기운이 그를 들어다가 산 위에나 계곡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엘리사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하였지만, 그들이 계속 졸라대는 바람에 얼굴을 붉히며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오십명을 보내어 사흘 동안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이 예리고에 머물러 있는 엘리사에게 돌아오자 그가 나무랐다. “내가 뭐라고 하였나? 갈 필요 없다고 하지 않던가?”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스승께서도 보시다시피 저희 성읍은 매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고장에서는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엘리사느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오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자, 엘리사는 샘터에 가서 그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아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정하게 하리라, 이제 다시는 사람들이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물을 엘리사가 말한 대로 정하여져서 오늘에 이르렀다.
엘리사는 그 곳을 떠나 베델로 올라갔다. 그가 베델로 가는 도중에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하며 놀려대었다. 엘리사는 돌아서서 아이들을 보며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아이들 사십이 명을 찢어 죽였다. 엘리사는 그곳을 떠나 가르멜 산으로 올라갔다가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왕하 2:15-25
//엘리야를 붙좇았던 엘리사가 엘리야의 승천을 보았다면 멀찍이 바라보던 선지자 수련생들은 엘리야의 승천을 보지 못했다. 엘리사는 보아서 소원대로 갑절의 영감을 받았지만 다른이들은 엘리사 혼자서 엘리야처럼 겉옷으로 물을 쳐서 마른길로 요단을 건너 오는 것만 보았지 엘리야의 승천을 보지는 못했다. 결국 그들은 엘리야의 시체를 찾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들은 말로만 엘리사의 승천을 인정했을 뿐, 마음으로는 승천 같은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여리고의 나쁜 물을 내는 우물을 정화한 엘리사. 엘리사는 소금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소금 자체에 물을 정화시킬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을 정화시켰다. 물이 나빴던 것은 소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여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베델에서 나온 어린이가 아닌 청년들. 어린이들이 무리지어 엘리사를 모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이들로 번역된 단어에는 청년도 포함된다. 따라서 선지자 수련생과 같은 또래의 청년이었을 것이며, 아마도 베델의 우상을 섬기는 수련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엘리야처럼 승천하라고 놀렸던 모양이다. 대머리라고 불렀던 것도 아마도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 아닐까? 하여간 그들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엘리야의 승천도 믿지 않았다. 엘리야에게 함부러 대했던 오십인부대원들이 죽었던 것처럼 엘리사에게 대적했던 그들은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자 하나님이 보내신 곰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엘리사는 갈멜산에 들렀다가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갈멜산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신) 여호와가 참 하나님(신)이심을 드러낸 장소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마리아에서 사역하기 위해서 엘리사의 갈멜산 방문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갈멜산 방문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 갑절을 받아 챙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열왕기하 2:1-14

열왕기하 2:1-14 (공동번역)

야훼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태워 하늘로 데려가실 때가 되어 엘리야가 길갈을 떠나는데, 엘리사가 따라 나섰다. 그러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네는 여기 남아 있게. 나는 야훼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겠네.” 하고 말하였다. 엘리사는 “결코 안 됩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스승님과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베델로 내려갔다. 베델에 있던 예언자 수련생들이 마중나왔다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당신이 모시는 스승은을 오늘 야훼께서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알고 계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좀 잠잠하시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여기에 머물러 있게. 나는 야훼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예리고로 가야겠네.” 그러나 엘리사는 “결코 안 됩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스승님과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고 말하고 함께 예리고로 내려갔다. 예리고에 있던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물었다. “당신이 모시는 스승을 오늘 야훼께서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알고 계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좀 잠잠하시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여기에 머물러 있게. 나는 야훼의 분부를 따라 요르단으로 가야겠네.” 그러나 그가 대답하였다. “결코 안 됩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스승님과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같이 길을 가는데, 예언자 수련생 오십 명이 뒤를 따라가다가 두 사람이 요르단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는 것을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다.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말아가지고 그것으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면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야훼께서 이제 나를 데려가실 터인데, 내가 자네를 두고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말해 보게.” 엘리사가 청하였다. “스승님, 남기실 영검에서 두 몫을 물려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엘리야가 말하였다. “자네는 아주 어려운 청을 하는군. 내가 떠나는 것을 자네가 본다면 소원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한다면 그렇게 안 될 것일세.” 그들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길을 가는데, 나데없이 불말이 불수레를 끌고 그들 사이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는 떨어지면서 엘리야는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지키던 병거여, 기병이여…” 엘리야가 다시 보이지 않게 되자,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두 조각으로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겉옷을 집어 들고 되돌아와 요르단 강 가에 서서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쳤으나 물이 갈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의 하느님 야훼여, 어디 계십니까?” 하면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엘리사아 강을 건너는데

왕하2:1-14
//엘리야의 승천. 엘리야의 승천에 대한 예고는 선지자 수련생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승천에 대한 믿음은 엘리사와 다른 선지자 수련생들 간에 큰 차이가 있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남아 있으라는 권고에도 승천할 엘리야를 붙좇았고 다른 선지자들은 그럴리가 하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였지만 사마리아 왕에게 끊임없이 쫓기는 자리였다. 그런데 엘리사는 붙쫓았고, 나머지는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엘리사는 엘리야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동행한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엇을 해주고 떠나면 좋겠냐고 물었고, 엘리사는 엘리야가 남길 영검 (영적유산)의 두 몫을 남겨달라고 말했다. 두 몫은 장자의 몫이다. 다시 말해 엘리사는 엘리야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리를 물려받기를 원한 것이다. 엘리사는 사마리아 왕의 박해 가운데서도 선지자적 삶을 이어가기 위해 갑절의 영감을 원했던 것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은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답을 했다. 만약 엘리사가 엘리야가 떠나는 것을 본다면 일종의 선지자의 장자권을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엘리야는 불병거를 타고 승천했다. //이제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권세를 이어받았는지가 궁금하다.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찍어버리고 엘리야가 남기고 간 겉옷을 들었다. 그리고 돌아가기 위해 요단강의 물을 쳤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엘리야의 겉옷에 무슨 효능이 있을리 만무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하나님을 찾았다. 그제서야 요단 강물이 갈라졌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권세는 이렇게 엘리야에게서 엘리사에게도 계승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는 명예직이나 세상 권위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자리다.) 능력은 하나님을 찾을 때 드러난다. 선지자의 능력도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위기 때, 엘리사는 떠난 엘라야를 찾지 않았다. 엘리야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다. 영적 지도자 선배들은 언젠가 우리를 떠난다. 그래도 그들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다. 예수께서 떠나 가셨지만, 성령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로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열왕기하 1:9-18

열왕기하 1:9-18 (공동번역)

(사마리아 왕은) 오십인대장을 부하를 딸려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들이 산으로 올라가 보니, 엘리야는 마침 산 위에 앉아 있었다. 대장이 “하느님의 사람이여, 당장 내려오시오. 어명이오.” 하고 외치자, 엘리야는 그 오십인대장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렇다,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 대장과 함께 너희 오십인부대를 삼켜버릴 것이다.” 그러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대장과 함께 그 오십인부대를 삼켜버렸다. 왕은 다시 다른 오십인대장을 부하를 딸려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도 또한 산으로 올라가 외쳤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어명이오, 산에서 즉시 내려오시오.” 엘리야가 그들에게, “그렇다,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 대장과 함께 너희 오십인부대를 삼켜버릴 것이다.” 하고 대답하자 하느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대장과 함께 그 오십인부대를 삼켜버렸다. 왕은 세번째로 오십인 대장을 부하를 딸려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는 산에 올라가서 엘리야를 만나 그 앞에 무릎을 꿂고 애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소인과 이 군인 오십 명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미 두차례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인부대를 대장과 함께 삼켜버렸습니다. 이제 이 목숨만은 아껴주십시오.” 그 때 야훼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일렀다. “그와 함께 내려가거라. 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하여 엘리야는 그와 함께 하산하여 왕 앞에 나타나 그에게 말을 전하였다. “야훼께서 이렇게 선언하셨소. ‘네가 에크론의 신 바알즈불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사람을 보내다니, 이스라엘에는 신이 없느냐? 네가 그런 일을 했을므로, 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이대로 죽고 말 것이다.'”
엘리야가 전한 야훼의 말씀대로 왕이 죽자 그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아우 여호람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제이년이었다. 아하지야 왕의 나머지 역사는 이스라엘 왕조실로에 기록되어 있다.

왕하2:9-18
//사마리아 왕을 엘리야의 신탁을 들었음에도 엘리야를 잡아오라고 오십인부대를 보냈다. 첫 두 오십인부대는 사마리와 왕편에 섰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타죽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은 엘리야의 필살기가 아니던가? ㅎㅎ 엘리야의 반응이 정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말을 들어주셨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비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다. //세번째 오십인부대의 대장은 어명을 집행하기 보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군사라면 왕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주의 백성이라면 왕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세번째 대장은 첫 두 오십인부대장과 달리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하나님 대하듯 했다. 물론 첫 두 대장도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저 수식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번째 대장은 하나님께서 목숨을 가법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 목숨이 달렸다는 것도 알았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사람을 대하는 것도 달라진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에 합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을 참 하나님(신)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마리아 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없어 교회 다닌다면서도 점집을 들락거리느냐고 주님은 책망하신다. 그 결국은 죽음이다. 우리가 믿는 신(하나님)이 참 신(하나님)이신줄 모른다면 그 자체가 이미 생명이 없는 것이다. ////최근에 오디세이 영화를 봤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영웅들과 일반인들의 차이는 영웅들은 신들과 함께 하고 일반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웅들은 정의와 경건을 행한다. 정의는 사람들과의 관계고 경건은 신들과의 관계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영웅들이다. 임마누엘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성도가 영웅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정의와 경건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방 신화에서도 사람들이 정의롭지 않고 불경하자 신들이 사람들과 멀어졌다. 하물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랴!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또 부르신다. 정의와 경건의 삶으로!

열왕기하 1:1-8

열왕기하 1:1-8 (공동번역)

아합이 죽은 뒤에 모압이 이스라엘에 반기를 들었다. 아하지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의 다락방 난간에서 떨어져 몹시 다쳤다. 그래서 그는 에크론의 신 바알즈붑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의 병이 회복될 수 있는지를 문의하게 하였다. 그런데 야훼의 천사가 디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나타나서 사라미아 왕이 보낸 사람들을 만나 이렇게 전하라고 명하였다. “이스라엘에는 신이 없어서, 에크론의 신 바알즈붑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가느냐? 나 야훼가 선언한다. 너는 결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대로 죽고 말 것이다.” 엘리야는 이 말을 전하고 떠났다. 왕의 특사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왜 이렇게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도중에서 웬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께 돌아가서 야훼의 말씀을 전하여라. – 나 야훼가 선언한다. 이스라엘에는 신이 없어서 에크론의 신 바알즈붑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사람을 보내느냐? 바로 그 때문에 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대로 죽고 말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왕은 그 말을 한 사람이 어떻게 차린 사람이더냐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가죽으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몸에는 털옷을 걸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틀림없이 디스베 사람 엘리야다!” 하면서

왕하1:1-8
//이스라엘의 신(하나님) 여호와. 에그론의 하나님(신) 바알세붑.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은 엘리야를 통해, 사마리아 왕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신)이 없어서 에그론의 신(하나님)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책망하신다. 사마리아의 왕은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을 세상 하나님(신)처럼 대했다. 적어도 아픈 몸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신보다 에그론의 하나님이 더 잘 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신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섬기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신(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의 기쁨을 도모하는 예배다. 참 예배가 될 수 없다.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이스라엘의 신만이 참 신(하나님)이심을 다시한번 보여주실 것이다. 사마리아 왕은 참(신) 하나님 대신 생명없는 하나님(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었다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엘리야가 누군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의 신(하나님) 여호와가 참 신(하나님)이심을 증거한 자가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신)이 그냥 신(하나님)이 아니라 참 신(하나님)이심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모두 자기 신들을 믿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요즘은 최고에 The 자를 붙이는 시대다. The 하나님(신)! 그래 봤자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님(신)이면 여전히 그저 신(하나님)이다! 참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참 하나님 한 분의 다스림에 순종해야 한다. 그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위기가 닥치면 또 다른 하나님(신)을 찾을게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