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8:17-35

열왕기하 18:17-35 (공동번역)

아시리아 왕은 라기스에서 총사령관과 내시장관과 시종장관에게 상당한 병력을 주어 히즈키야 왕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마전터로 가는 길가 윗저수지 물길 있는 데로 와 서서 왕을 불렀다. 그들을 맞으러 궁내대신 힐키야의 아들 엘리야킴과 시종무관 셉나와 공보대신 아삽의 아들 요아가 나가자 시종장관이 말하였다. “히즈키야에게 전하여라. 아시리아의 대왕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냐? 참모도 없고 군대도 없는 주제에 입술의 빈말만으로 싸움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무엇으 믿고 나에게 반역하느냐? 네가 믿는 이집트는 부러진 갈대에 불과하다. 그것을 지팡이처럼 믿는다마는 그것을 잡았다가는 도리어 손만 베일 것이다. 이집트 왕 파라오는 자기를 믿는 모든 자들을 그렇게 대한다. 너희는 나에게 말하기를 너희 하느님 야훼를 믿는다고 하겠지마는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 앞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며, 야훼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헐어버린 것이 히즈키야가 아니냐?’ 자, 나의 주인이신 아시리아 왕과 승부를 겨루어보아라. 네가 기수만 내놓을 수 있다면 내가 너에게 말 이천마리를 주겠다. 너에게 우리 주인의 하잘것없는 졸병 하나인들 물리칠 힘이 있겠느냐? 그러면서 이집트에서 병거나 기병부대가 오려니 하고 있구나. 내가 야훼의 분부도 없이 어떻게 이곳을 치러 올라왔겠느냐? 야훼께서 나에게 일찍이 이 땅을 쳐부수러 올라가라고 분부하셨다.”
힐키야의 아들 엘리야킴과 셉나와 요아가 시종장관에게 청하였다. “아람어로 말씀해 주시오. 우리는 아람어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백성이 성 위에서 듣고 있는데, 유다 말로 말씀하지 말아주시오.” 시종장관이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께서 너희 상전이나 너희에게만 이 말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신 줄 아느냐? 성 위에서 너희와 같이 제 오줌과 제 똥을 먹고 앉아 있는 자들에게도 전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다.” 이어 시종장관은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말하였다. “들어라, 아시리아 대왕의 말씀이다. 대왕께서 말씀하신다. ‘히즈키야에게 속지 마라. 그가 나에게세서 너희를 구해 내지 못하리라. 그가 너희를 설득하여 야훼를 의지하자고 하고 또 야훼가 너희를 구할 것이므로, 이 성이 절대로 아시리아 왕에게 함락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도 그 말을 믿지 마라. 히즈키야가 하는 말은 듣지 마라.’ 아시리아 왕께서 말씀하신다. ‘나와 강화 조약을 맺자. 나에게 항복하여라. 그리하면 너희는 각기 자기가 재배하는 포도와 무화과를 먹을 수 있게 되고 자기 물통의 물을 마실 수 있게 될 것이다. 때가 되면 내가 와서 너희의 조국 땅과 다름 없는 땅, 곧 고식과 새포도주가 나고 빵과 과일, 올리브 나무와 좋은 기름과 꿀이 나느 땅에 너희를 정착시키리라. 너희는 모두 죽음 대신에 생명을 택하여라. 히즈키야의 말을 듣지 마라. 그는 야훼가 너희를 구해 줄 것이라고 말하여 너희를 그릇 인도할 뿐이다. 그 어는 민족의 신이 아시리아의 왕으로부터 자기 영토를 구하였더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은 어디 갔느냐?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은 어디 갔느냐? 사마리아 땅의 신들은 어디 갔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게 건졌더냐? 여러 민족의 신들 중에 자기 영토를 나에게서 구해 낸 신이 하나라도 있었느냐? 야훼가 어찌 예루살렘을 구하겠느냐?

왕하18:17-35
//히스기야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침으로 일단락 된 줄 알았겠지만, 앗수르는 얼마후 말만 강화조약이지 완전한 항복을 요구했다. 앗수르는 총사령관 내시장관 시종장관을 예루살렘에 보내 항복하라고 했다. 히스기야는 궁내대신 시종무관 공보대신을 내보내 협상단을 맞았다. 앗수르는 유다가 이집트를 믿어도 발등만 찍힐 것이며, 그동안 앗수르가 물리친 열방의 신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유다를 치라고 분부하셨다며 망말?을 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히스기야 왕의 말을 듣지 마라고 전했다. //앗수르 사절단은 이 모든 내용을 자신들의 아람어가 아닌 유다 말로 말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대화를 주고 받았기 때문에 유다 백성들도 다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앗수르 사절단은 백성들이 듣도록 유다와 유다의 하나님을 비하하는 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유다 대표가 아람어로 말해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물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언급한 것이 독이 되어 돌아올줄 몰랐을 것이다. ////앗수르도 유다의 믿을구석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알았다. 어쩌면 그래서 유다가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도록 약을 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세상도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도전한다.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의 도전은 거세다 못해 모든 것을 휩쓸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믿을구석은 하나님뿐이다. 그렇다면 한눈을 팔 이유가 없지 않은가? 믿을구석을 붙드는 수밖에. 여러 처방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열왕기하 18:1-16

열왕기하 18:1-16 (공동번역)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가 유다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의 일이었다. 그는 이십오 세에 즉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즈가리야의 딸로서 이름을 아비라 하였다. 그는 그의 선조 다윗이 그러하였던 것같이 야훼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그는 산당들을 철거하고 석상들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들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모세가 만들었던 구리뱀을 산산조각 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때까지 느후스탄이라고 불리우던 그 구리뱀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를 의지하였다. 유다 왕들 가운데 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 그는 야훼를 배반하지 아니하고 충성을 다하여 야훼께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들을 준수하였다. 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시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이루어주셨다. 그는 아시리아 왕에게 반기를 들어 그의 지배를 벗어났다. 가자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전지역을 감시만대니 요새화된 성이니 할 것 없이 모두 쳐부순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히즈키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아시리아 왕 샬마네셀이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삼 년 만에 함락시켰다. 사마리아가 함락된 것은 히즈키야 제육년, 곧 이스라엘 왕 호세아 제구년이었다.
아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끌고 가 할라 지방과 고잔의 하볼 강 연안과 메대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희 하느님 야훼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모세에게 세워주신 계약과 모세가 지시한 모든 것을 어겨, 듣지 아니하고 그대로 따르지도 아니하였기 때문이었다.
히스키야 왕 제십사년에 아시리아 왕 산헤립니 유다를 침략하여 모든 요새화된 성읍들을 점령하였다. 유다 왕 히즈키야는 라기스의 아시리아 왕에게 전갈을 보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돌아가 주시기만 한다면 어떤 처벌을 내리시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하여 아시리아 왕은 유다 왕 히즈키야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바치라고 하였다. 히즈키야 왕은 야훼의 전과 왕실 금고에 있는 은을 있는 대로 다 아시리아 왕에게 바쳤다. 히즈키야가 야훼의 전 본관 문짝들과 문설주에 자기 손으로 입혔던 것마저 벗겨서 아시리아 왕에게 바친 것도 그 때였다.

왕하 18:1-16
//사관의 히스기야 왕에 대한 평가는 놀랍다. 다윗과 같은 선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다고 평가한다. 심지어 유다 왕들 가운데 전무후무하다고 한다. (다윗보다도 높이 평가 하는듯.)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충성을 다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고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사관은 특별히 히스기야가 모세의 놋뱀을 산산조각 낸 사건을 언급한다. 전통을 타파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모세의 놋뱀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나님과의 교제(사귐)을 대체할 수 없다. //임마누엘이면 태평성대를 누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왕이었다고 해서 유다에게 태평성대가 임한 것은 아니다. 한 때 앗수르에 반기를 들어 앗수르의 지배를 벗어났던 히스기야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는 것을 보았다. 이에 놀랐을까? 히스기야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유다를 침공한 앗수르에 조공으로 평화를 구해야 했다. ////샬롬이라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지는 않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일이 평생따라 다닌다. 선한목자 되신 삼위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데리고 건너셔서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영원한 집에서 살기까지 이 땅에서 가야할 길은 험하고 험하디 때문이다. //사관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앗수르에게 망했음을 분명히 한다. 이제 앗수르는 남유다도 침공했다. 북이스라엘처럼 히스기야도 우선은 조공으로 임박한 멸망을 피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했다고 평가받는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는 남유다의 운명은 어떨까? 과연 북이스라엘과 다를까?

열왕기하 17:24-41

왕하17:24-41 (공동번역)
아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사마리아 성읍들엑 이주시켜 그들로 하여금 그 곳에서 자리잡고 살게 하였다. 그들은 그 곳으로 옮겨 와서 처음에는 야훼를 공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야훼께서는 사라들을 보내시어 사람들을 잡어먹게 하셨다. 이 일이 아시리아 왕에게 보고되었다. “임금님께서 데려다가 사마리아의 여러성읍에 이주시키신 민족들이 그 지방의 신을 위하는 법을 모릅니다. 그 지방의 신은 자기를 위하는 법을 아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여 사자를 보내어 사람들을 잡어먹게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시리아 왕이 명령을 내렸다. “사마리아에서 잡아 온 사제 한 명을 그리로 보내도록 하여라. 그 곳에 가서 살면서 그 지방의 신을 위하는 법을 가르치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사라미아에서 잡혀 온 사제 하나가 베델에 가서 살면서 그들에게 야훼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네가 사는 곳에서 저희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인들이 지은 산당들 안에 두었다. 바빌론 사람들은 수꼿브놋을 만들었고 구다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으며 하맛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아와 사람들은 니브하즈와 다르닥을 만들었다.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들의 신인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자녀들을 제물로 살라 바쳤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야훼도 공경하였다. 자기들 가운데서 출신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뽑아 산당의 사제직을 맡겨 그 곳에 있는 산당들에서 사제 일을 보게 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야훼를 공경하면서도 각 민족이 붙잡혀 오기 전에 가졌던 풍습을 따라 저희의 신도 섬겼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그러한 옛 풍습을 지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야훼를 참으로 공경하는 사람이 없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지어 주신 야곱의 후손들에게 분부하신 규정과 법령과 가르침과 계명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과 계약을 맺으실 때 야훼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던 것이다. “너희는 다른 신을 공경하지 마라. 절하여 섬기며 제사드리지 마라. 오직 큰 힘으로 팔을 뻗어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나 야훼만 공경하고 절하며 제사를 드려라. 너희들에게 준 규정과 법령과 가르침과 계명을 사뭇 성실히 지키고 다른 신들을 공경하지 마라. 내가 너희와 맺은 계약을 잊지 말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마라. 다만 너희 하느님 야훼만을 공경하여라. 너희를 모든 원수에게서 건져줄 다른 이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옛 풍습만을 따라 살았다. 이 민족들은 한편으로는 야훼를 공경하면서 동시에 저희의 우상들도 섬겼다. 그들은 후손들도 대대로 이 날까지 선조들의 풍습을 그대로 지켜 내려왔다.

왕하 17:24-41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이 사마리아 지방신이 되어버렸다. 다른 민족들의 신들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공경하지 않으니 어찌 열방과 민족들이이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신)으로 공경할 수 있으랴.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을 공경하도록 포로로 잡아온 사마리아 출신 이스라엘 제사장을 보내어 그 땅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가르치게 했다. 그러나 신앙은 가르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사마리아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각자가 가져온 자신들에게 친숙한 하나님(신)들을 섬겼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신(하나님)도 섬겼다. 그러나 이주민들에게는 출애굽의 하나님(신)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 때부터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적이 없으니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길 이유가 없다. 이렇게 사마리아에서 창조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지방신이 되었다. //그때부터 사마리아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공경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이 가져온 우상들도 섬기는 풍습이 그대로 지켜져 내려왔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신들의 신이 되기까지에는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이 인격적인 만남은 경험이나 가르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경험과 배움이 중요하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는 치유의 하나님으로, 누구에게는 물질적으로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누구에게는 지식과 지혜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신다. 그래서 한 영역에만 강조된 창조주 하나님만을 만난 그들은 하나님을 지방신처럼 공경한다. 봉사가 코끼리를 설명하듯 간증한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욥과 다윗이 좋은 예다. 그들의 삶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는 복원력이 있었다. 성도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면 전도는 불가능에 가깝다. 또 하나의 신(하나님)을 소개할 뿐이다.

열왕기하 17:1-23

열왕기하 17:1-23

왕하17:1-23
//도대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의 경우 전에 있던 이스라엘 왕들만큼 악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악이 덜 악하다고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들은 사마리아(이스라엘)를 멸망으로 이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한 것은 자신들의 신(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다른 신을 섬기며, 다른 민족들의 풍습을 따르며, 자신들이 만든 규례를 따라 살았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속을 썩였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에게 예언자들과 선견자들을 시켜 악습을 버리고 돌아와 하나님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라고 경고하셨다. 그래도 그들은 예언자들과 선견자들의 경고를 드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 못지않게 고집이 세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업신여겨 하나님을 본받지 않고 주위의 민족들을 본받았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우상숭배와 인신제사와 점쟁이와 술객들을 의지하는 죄의 종의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속을 썩여드렸다. //결국 하나님께서 크게 노하시어 이스라엘을 당신 앞에서 쫓아내셨다. (이제 유다 지파만 남았다. 그러나 유다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이스라엘이 받아들여 지키던 풍속을 따랐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침략자들에게 넘겨주시어 포로 끌려가게 하셨다. 여로보암이 지은 온갖 죄에 빠져 그 죄를 버리지 못해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앗수르로 사로잡혀갔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그 자체가 죄의 포로요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다. 이미 지옥에 사는 것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으면 이미 하나님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생이다. 유다는 형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아 이방에 포로로 끌려감을 보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이스라엘이 걸은 길을 따라갔다. 이 모든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는 과연 다를까? 우리 역시 하나님의 속을 썩여드리며 살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열왕기하 16:1-20

열왕기하 16:1-20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즈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다윗처럼 하느님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전철을 밟았다. 심지어 가나안에서 쫓아냈던 민족들의 고약한 풍속을 본받아 자기의 아들을 불살라 바치기까지 했다. 이런 아하즈에게 시리아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이틈에 에돔 왕은 엘랏을 (유다로부터) 탈환해서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아하즈는 나라에 있는 금은을 있는대로 모아 아시리아 왕에게 사절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아시리아 왕은 아하즈의 간청을 받아들여 시리아를 정복하고 시리아 왕 르신을 죽였다. 아하즈는 아시리아 왕을 만나러 가서 그곳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형과 자세한 도본을 만들어 사제 우리야에게 보냈다. 사제 우리야는 아하즈가 돌아오기 전에 그 제단을 완성했다. 아하즈는 돌아와 그 제단에 올라가서 번제와 친교제를 드렸다. 그리고 야훼 앞에 있던 놋쇠 제단은 치워버렸다. 그런 뒤에 하하즈는 사제 우리야에게 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명했다. 이전 놋제단은 자신이 야훼께 문의하는 데만 쓰겠다고 말했다. 사제 우리야는 아하즈 왕의 지시대로 하였다. 아하즈는 이렇게 성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왕이 출입하던 성전의 바깥 대문을 봉하였다. 아하즈는 죽어 그의 선조들과 나란히 다위 성안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히즈키야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하 16:1-20

//유다 왕 아하스. 그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전철을 밟았다. 첫째 아하스가 이전 가나안 사람들의 풍속을 따라 인신제사를 드렸다. 둘째 아하즈는 시리아 왕(아람 왕)과 이스라엘의 침공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앗수르에 조공을 바쳐 위기를 모면했다. 세째 아하즈는 자신을 구해 준 앗시리아를 방문해서 본 앗시리아 신전의 제단을 도입하고 새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고 성전기물을 옮겨 성전의 기능을 마비시켰고 결국 마침내 성전 문을 봉해버렸다. 더이상 하나님께 나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듯 이스라엘 왕들의 전철을 밟았다는 것은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겨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을 죄에 빠뜨리는 것이다. 제사장 우리야까지 왕명에 동참했다. //날이 갈수록 세상에는 매력적인 새로운 의지할 것이 늘어난다. 말씀을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린다. 그러니 점점 더 하나님께 나갈 생각은 뒷전으로 밀린다. 마침내 참 하나님(신)께 나아가는 문을 스스로 봉해 버린다. 아하스와 우리가 다를게 없다. ㅠㅠ 이렇듯 하나님께 나가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사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