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25-40 (공동번역)
그날 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비의 일곱 살 된 살진 소를 끌고, 네 부하 열 사람을 데리고 가서 네 아비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곁에 있는 아세라를 찍어라. 그리고 이 산성 꼭대기에 너의 하느님 야훼께 바칠 제단을 차곡차곡 쌓아라. 그리고 그 살진 소를 잡고 찍어낸 아세라 목상을 태워 번제를 드려라.” 기드온은 부하 열 사람을 데리고 야훼쎄서 시키신 대로 하였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과 성읍사람들이 두려워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해치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성읍 사람들이 일어나 보니, 어이없게도 바알의 제단은 헐려 있었고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은 찍혀 있었으며 새로 선 제단 위에는 살진 소가 번제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고 서로 부산을 떨며 조사하고 캐어본 결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한 일임을 알아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요아스를 닦달하였다. “당신 아들을 내놓으시오. 죽여버려야겠소. 바알의 제단을 헐고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을 찍어벼렸는데 어찌 그냥 두겠소?” 요아스는 둘러선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답변하였다. “당신들이 바알을 역성하겠다는 거요? 당신들이 바알을 도울 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바알을 역성하는 사람은 해뜨기 전에 죽을 테니 그리 아시오. 만일 바알이 신이라면,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헐었으니 친히 나서서 기드온을 칠 것이 아니오?” 그날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었다. 바알의 제단을 헐었기 때문에 바알이 그와 맞설 것이라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마침 미디안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백성들을 다 모아가지고 강을 건너 이즈르엘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기드온은 뿔나팔을 불어 아비에젤 일족에게 따라 나서라고 하였다. 그는 또 전령들을 므나쎄 온 지파에 보내어 므나쎄 지파도 따라 나서라고 불러내었다. 아셀 지파와 즈블룬 지파와 납달리 지파에도 전령들을 보내니 그들도 올라와서 기드온과 합세하였다. 기드온이 하느님께 아뢰었다. “이미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제 손으로 구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이렇게 해주십시오. 보십시오. 제가 타작마당에 양털 한 뭉치를 이렇게 펴놓습니다. 만일 이 양털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고 땅바닥은 말라 있으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제 손으로 구하시려는 줄로 알겠습니다. 정말 그대로 되었다. 기드온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털 뭉치를 짜보니 한 대접 가득 물이 나왔다. 기드온이 다시 하느님께 아뢰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노하지 마십시오. 양털뭉치로 꼭 한 번만 더 시험하게 해주십시오. 이번엔 양털만 말라있고 사방이 땅바닥은 이슬로 젖게 해주십시오. 그 날 밤 하느님께서 그대로 해주셨다. 양털은 말라 있었고 사방의 땅바닥은 온통 이슬로 젖어있었다.
삿6:25-40
//어제 기드온에 대해 살펴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천사는 기드온을 힘센 장사라고 불렀다. 개역개정에서는 큰 용사라고 불렀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일하고 밤에 몰래 일한 기드온에게 적합한 표현일까 묻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힘센 장사라고 부르시면 힘센 장사다. 큰 용사가 아니었어도 큰 용사다. 오늘 25절에 보면’ 기드온은 적어도 십부장이었다. 부하 열사람이 있었다. 34절부터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기드온이 힘센 장사, 큰 용사로 이스라엘을 이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작은자로 하나님께 징표를 구한다. 양털로 하나님의 뜻을 반복해서 묻는 것은 확실히 불신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믿음이) 작은 자 기드온의 요청을 들어주셔서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뜻을 확인시켜 주셨다. 이렇게 기드온을 힘센 장사로 (믿음이 큰 용사로) 만들어 가셨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험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병이 낫는 것으로, 복권에 당첨되는 것으로,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는 것으로, 시험을 잘 보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어서는 소용이 없다. 대신 내가 손해보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시험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 그 말씀에 순종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하나님만으로 기뻐해야 한다. 적어도 나의 유익과 무관해야 한다. 나를 기쁘게 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아니어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굳이 하나님께 징표를 구할 필요가 없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