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9:22-45

사사기 9:22-45 (공동번역)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이 지났다. 하느님께서 악령을 보내시니, 아비멜렉과 세겜의 어른들 사이가 나빠져, 세겜의 어른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여룹바알의 아들 칠 십명이 당한 억울한 죽음을 원수갚는데 자기 형제를 죽여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에게 갚으시고 제 형제를 죽이는 자를 도와준 세겜의 어른들에게도 그 죄를 갚으시려고 하신 것이다. 아비멜렉을 괴롭히려고 세겜의 어른들은 언덕에 사람을 매복시켜 놓고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을 모두 털게하였는데 이 일이 아비멜렉에게도 알려졌다.
마침 에벳의 아들 가알이라는 사람이 자기 형제들과 함께 세겜으로 이사왔는데, 그는 세겜 어른들의 신망을 얻었다. 때는 밭에서 포도를 따서 밟아 즙을 짜는 추수철이었다. 사람들이 잔치를 베풀고 신전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면서 아비멜렉을 욕하는 자리에서 에벳의 아들 가알이 외쳤다. “아비멜렉이 누군데, 그 세겜의 피를 받았다는 자가 누군데, 우리가 그의 종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 여룹바알의 아들과 그의 심복 즈불이 도리어 세겜의 조상인 하몰 집안 사람들을 섬겨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가 그의 종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나에게 이 백성을 거느릴 권한만 준다면, 나는 아비멜렉에게 싸움을 걸겠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을 몰아내 보이겠습니다. “
그성의 추장 즈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전해 듣고 화가나서 아루마에 있는 아비멜렉에게 전갈을 보냈다. “보십시오, 에벳의 아들 가알이라는 자가 제 형제들과 함께 세겜에 와서 온 성읍을 충동질하여 역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휘하 군대를 몸소 이끌고 출동하셔서 어둠을 틈타 들에 매복하셨다가 아침 일찍 동틀 때 행동을 개시하여 성을 기습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알이 무리를 이끌고 대적하러 나오거든 닥치는 대로 해치우십시오.” 그 말대로 아비멜렉은 어둠을 틈타 휘하 군대를 총출동시켜 세겜 맞은편에 이르러 군대를 네 패로 나누어 매봅시켰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성문 어귀에 나와 섰는데, 아비멜렉이 거느린 군대가 매복해 있던 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가알이 그들을 보고 즈불에게 물었다. “저기 산꼭대기에서 웬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소?” 즈불이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잘못 본 것이 아니오?” 하고 시치미를 떼었지만, 다시 가알이 말하였다. “저것 보시오. 사람들이 저기 배꼽마루에서 내려오고 다른 한 떼는 점쟁이 상수리나무 쪽에서 오고 있소.” 그제야 즈불이 말하였다. “아비멜렉이 누군데 우리가 그의 종이 되어야 하느냐 으스대더니, 그 용기가 어디로 갔소? 저 사람들이 바로 당신이 우습게 보던 사람들이오. 어서 나가서 싸워보시오.” 가알은 세겜의 어른들을 거느리고 앞장서 나가 아비멜렉과 맞붙어 싸우다가 아비멜렉에게 쫓겨 도망치게 되었다. 가알의 부하 군인들의 시체는 성문 앞까지 너저분하게 뒹굴었다. 그 후 아비멜렉은 아루마로 돌아가고 즈불의 가알과 그의 형제들을 쫓아내어 세겜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다음날 세겜 백성들이 들로 나갔다는 소식이 아비멜렉에게 전해졌다. 그는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세 패로 나누어 들에 매복하고 있다가 백성들이 성읍을 떠나는 것을 보고 들이닥쳐 쳐죽였다. 아비멜렉은 한 패를 이끌고 쳐들어가 성문 어귀를 지키고 나머지 두 패를 시켜 들에 있는 사람들을 덮쳐 쳐죽이게 하였다. 아비멜렉은 그날 종일 그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죽이고 온 성읍을 헐고 소금을 뿌렸다.

사사9:22-45
//이합집산! 아비멜렉과 세겜의 장로들 사이가 나빠졌다. 뻔하다. 세겜의 장로들은 자신들이 아비멜렉의 킹메이커였는데 그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없었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아비멜렉은 심복 즈불을 추장(총독)으로 파견해서 성 관리를 맡겼다. 세겜 장로들은 사람들을 언덕에 매복시켜 노상강도짓을 일삼으며 자신들의 배를 채워야 했다. (호루므즈 해협을 막고 강도질 하는 미국과 이란이 연상되는 이유는?) //하여간 이 때, 에벳의 아들 가알이 세겜으로 이사와서 신망을 얻은 후 세겜의 장로들을 부추겼다. 세겜의 장로들이 아비멜렉에게 거사 자금을 댔던 것처럼 이번에는 자기를 밀어주면 아비멜렉을 몰아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세겜에는 아비멜렉이 파견한 추장 즈불이 있었다. 그는 아비멜렉에게 역모를 알렸다. 뿐만 아니라 역모를 이길 군사적 전술까지 알려주었고 가일의 방비를 무력화 시켰다. 결국 가일의 역모는 실패하고 세겜 성은 함락되었고 성읍 사람들은 죽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이합집산한다. 세겜 사람들은 무슨 죈가? 그들은 세겜 장로들의 탐욕에 희생양들이 되었다.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힘들어 진다.

사사기 9:7-21

사사기 9:7-21 (공동번역)

이 소식이 요담에게 전해지자 그는 그리짐 산 꼭대기에 가 서서 소리 높이 외쳤다. “세겜의 어른들은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도 여러분의 말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서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기로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청을 드려보았소.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사양을 했소. ‘내 기름은 모든 신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런데 나 어찌 기름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청을 드려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주게나’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사양을 했소. ‘나 어찌 이 훌류한 과일을 내지 않고, 나 어찌 이 달콤한 맛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청을 드려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주게나.’ 그러나 포도나무도 사양을 했소. ‘내 술은 모든 신과 사람을 흥겹게 해주는 것, 그런데 나 어찌 이 술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모든 나무는 가시나무에게 청을 드려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주게나.’ 그러자 가시나무는 그 나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소! ‘너희가 정말로 나를 왕으로 모시려는가? 정녕 그렇거든 와서 내 그늘 아래 숨어라. 그러지 않았다가는 이 가시덤불이 불을 뿜어 레바논의 송백까지 삼켜버릴 것이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는 것을 어찌 떳떳한 일이라 하겠소? 그러고도 어찌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겠소? 그러고도 여룹바알과 그의 집안에 잘해 드렸다고 하겠소? 그것이 어찌 그의 업적에 보답하는 것이 되겠소? 내 아버지가 죽음을 무릎쓰고 싸워 여러분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냈는데 여러분은 오늘 내 아버지의 집안을 뒤엎으려고 즐고 일어나 칠십 명이나 되는 그의 아들들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소. 그리고 여러분 세겜의 어른들은 계집종의 자식인 아비멜렉을 여러분의 혈육이라고 해서 왕으로 떠받들었소. 만일 여러분이 이 날 여룹바알과 그 집안에 한 것이 떳떳하고 하무 잘못이 없다면 여러분의 아비멜렉과 행복스럽게 잘들 지내보시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의 어른들과 밀로의 집안을 삼키고 세겜의 어른들과 밀로의 집안에서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삼키라고 나는 빌겠소.” 이렇게 말을 마치고 나서 요담은 도망하여 브엘에 이르렀다. 그는 형 아비멜렉을 피하여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삿9:7-21
//요담의 스토리에서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의 대답에 반복되는 말이 있다.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으스대겠는가?’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알았다. 자신이 무엇을 내야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았다. ‘내지 않고’는 ‘버리다’라는 의미의 단어다. 무기력하고 부족하고 게으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내지 않고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창조목적을 저버린다는 뜻이다. ‘으스대다’는 우쭐댄다는 뜻이다. 잘난 척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실 올리브/무화과/포도 나무는 으스댈만한 것을 가졌다. 그래도 그것으로 으스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내는 것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창조 목적/질서에 따라 주어진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야 기득권을 내려 놓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시나무는? 무엇을 내는가? 가시덤불을 낸다. 가시덤불은 어떤 유익을 줄까? 잘 관리만 된다면 야생포식자로부터 지켜주는 좋은 울타리가 될 수 있다. 가시나무도 창조 질서에 따라 지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방어적으로 사용해야 할 가시를 공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가시를 창조목적에 어긋나게 사용하겠다고 말하니 교만인 것이다. //세겜 장로들과 밀로 집안 사람들은 가시를 공동체를 위한 방어용이 아니라 탐욕을 만족시키는 공격용으로 사용했다. 가시를 정의와 공의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사로운 탐욕을 위해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요담은 아비멜렉과 세겜 장로들 모두 자신들의 포악성때문에 그대로 앙갚은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은대로 거둔다. ////내야 할 것을 내야 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한다. 창조 질서대로 살아야 한다. 어째서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 대기업을 선호하고 청소직은 싫어하게 되었을까? 어째서 소위 사자 달린 직업인들은 우러러 보고 일꾼들은 얕잡아 보게 되었을까? 우리는 좋던 싫던 내야할 것을 내고 살아야 한다. 사람들끼리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교만한 자는 망할 것이다.

사사기 9:1-6

사사기 9:1-6 (공동번역)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으로 외삼촌들을 찾아가서 외삼촌들과 외가댁 온 일가에게 청하였다. “세겜의 모든 어른들에게, 여롭바알의 아들 칠십 명의 지배를 받는 것과 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과 어느 것이 나으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그들과 한 골육이라는 것도 잊지 말라고 해주십시오.” 그의 외삼촌들은 이 말을 세겜의 모든 어른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아비멜렉이 자기들과 한 혈육이라는 생각에서 마음이 그에게 기울어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세겔을 내다가 그에게 주었다. 아비멜렉은 그 돈으로 할 일 없는 건달패를 사서 졸개로 삼아 거느리고 오브라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자기 형제들 곧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다. 그러나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만은 어디엔가 숨어 있었으므로 살아남았다. 세겜의 모든 어른들과 밀로의 온 집안은 세겜에 있는 석상 옆 상수리나무 아래에 모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받들었다.

삿9:1-6
//아비멜렉!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는 의미다. 이름이 바로 ‘왕자’다. 왕이 되겠다는 탐욕이 담겨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아비멜렉 자신이 이름을 지었을리 없다. 그렇다면 세겜 사람들이 (적어도 아비멜렉의 혈육들이) 자신들도 왕족임을 드러내기 위해 (기드온의 소실이 낳은) 아기를 아비멜렉이라고 불렀다고 보는게 맞다. 다른 기드온의 칠십 명의 아들들의 이름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아비멜렉과 오직 막내 아들 이름만 요담이라고 나온다. 요담은 ‘여호와는 완전/정직/성실 하시다’ 라는 뜻이다. 요담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것을 암시하는 이름이다. // 아비멜렉은 외척을 부추겨 왕이 되고자 했다. 아니 반대로 외척들이 아비멜렉을 부추겨 왕이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아비멜렉에게 거사 자금을 대준 것이다. 그 돈으로 아비멜렉은 시정잡배를 고용해 칠십 명의 이복 형제들을 죽였다. 아비멜렉은 자신과 자식들은 왕이 되지는 않겠다던 아비 기드온의 뜻도 따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기드온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어도 왕의 권세를 누렸으니 아비멜렉이 무엇을 보고 자랐겠는가? 세겜의 장로들과 밀로 집안 사람들은 아비렐렉을 왕으로 받들었다. 이렇게 아비멜렉은 왕(골목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담을 아비멜렉의 학살에서 살려주신다. 요담이 의로워서라기 보다는 언약에 성실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왕이 되신다. 다른 왕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언젠가 ‘난 난 난 난 어린 왕자다. 하늘 나라의 어린 왕자다. 내가 비록 어릴지라도/나는 왕 나는 왕 나는 왕자다’ 라는 주일 학교 찬송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는가 돌아보자. 예수께서는 결단코 왕자의 권세를 누리지 않으셨다.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예수를 생각해 보자!

사사기 8:29-35

사사기 8:29-35 (공동번역)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은 자기 집에 돌아가 살았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친아들이 칠십 명이나 되었다. 세겜에 그의 소실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도 기드온에게 아들을 하나 낳아 주었는데, 그는 그 아이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불렀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수를 다 누리고 죽어 아비에젤의 성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무덤에 묻혔다. 기드온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바알들을 따라 음란을 피우며 바알브릿을 자기네 신으로 삼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저희를 건져내신 저희 하느님 야훼를 기억하지 않았다. 여룹바알이라고도 하는 기드온의 집안이 그렇게도 많은 은덕을 입혀주었는데도 이스라엘은 그 은혜를 저버렸던 것이다.

삿8:29-35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기드온은 왕처럼 살았다. 왕 되기를 거절했던 기드온은 세상 왕처럼 칠십 명이나 되는 많은 아내를 두었다. 칠십이 상징적인 수라면 기도온은 자신이 원하는 여자를 다 품었다는 뜻이다. 기드온이 소실에게서 낳은 아이의 이름은 아비멜렉이다. 아비멕렉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는 뜻이니, 기드온은 결국 왕이나 다름없었다. //기드온이 많은 아내를 둔 것은 음란을 상징한다.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이 음란을 피우며 바알브릿을 섬겼다고 한다. 그들이 바알을 언약(브릿)의 하나님(신)으로 섬긴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다. 그래도 기드온이 살아 있는 동안 호가호위라고 주변국들은 기드온 뒤에 있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스라엘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기드온 집안이 이스라엘에게 베푼 은덕은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기드온에게서 음란 말고 하나님은 보지 못했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열매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의 은혜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것이다. ////과거의 영웅담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한국교회도 우리도 과거의 간증만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과거에 만난 하나님을 오늘도 만나 교제하지 않는다면 도루묵이다. 하나님을 잊고 산다면, 살인이나 간음 같은 큰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영적으로는 다시 죽은 것이다. 임마누엘을 누리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 안에 거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한다.

사사기 8:13-28

사사기 8:13-28 (공동번역)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싸움을 끝내고 헤레스 고개를 넘어 돌아오다가 수꼿 젊은이 하나를 잡아 수꼿 추장과 장로들의 이름을 대라고 하였다. 그든 그들 칠십칠 명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기드온은 수꼿에 이르러 그 곳 사람들에게 일렀다. “제바와 살문나를 보아라. 너희는 제바와 살문나의 손목이라도 잘라 가졌느냐고 하면서 우리 기진맥진한 군대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를 우롱하였다.” 기드온은 그 성읍의 장로들을 체포한 다음, 들가시와 찔레를 베어다가 수꼿 사람들을 찢어버렸다. 또 브누엘 성의 망대를 헐어보리고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그런 다음 그는 제바와 살문나에게 물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당신 같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왕자다운 귀골을 타고 났더군요.” 기드온이 말하였다.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 너희가 그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절대로 너희의 목숨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맏아들 예델에게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 소년은 아직 어린이였으므로 끔찍한 생각이 들어 칼을 뽑지 못하였다. 그것을 보고 제바와 살문나가 말하였다. “사내 대장부답게 네게 일어나 우리를 쳐라.” 이 말을 듣고 기드온이 일어나 제바와 살문나를 쳐죽이고 그들이 타던 낙타의 목에서 목걸이를 떼어가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청하였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주십시오.” 기드온은 “내가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니요, 내 자손이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하며 그들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대들을 다스리실 분은 야훼시오.” 기드온은 말을 계속하였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소. 각자의 전리품 가운데서 루리 하나씩을 내놓으시오.” 적군은 이스마엘 사람이었기 때문에 금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드리고 말고요.”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전리품 가운데서 고리 하나씩을 기드온이 펴 놓은 겉옷 위에 던졌다. 그의 요청대로 들어온 고리의 무게는 금 천칠백 세겔이나 되었다. 그 밖에도 목걸이뿐 아니라 여러가지 고리가 있었고 미디안 왕들이 입던 붉은 옷과 낙타 목에 두르는 사슬도 있었다. 이 모든 것으로 기드온은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가 사는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온 이스라엘이 그 에봇으 섬기며 음란을 피웠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되었다. 이와같이 하여 미디안은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기세가 걲여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 기드온 생전 사십년 동안 세상은 평온하였다.

삿8:13-28
//미디안 두 왕을 사로잡은 기드온은 돌아오는 길에 수꼿과 브누엘 들려 저주한 대로 수꽂의 장로들을 찢어버리고 브누엘의 망대를 허물어 버리고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수꼿과 브누엘은 이방나라 사람들이 아니었다. 동족에게 행한 일이다. 마치 앞으로 기드온을 돕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없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기드온은 미디안 두 왕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한다. 그들이 기드온의 형제들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기드온은 자신의 장자에게 미디안 두 왕을 칼로 쳐죽이라고 명령했다. 기드온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기 아들에게 미디안 두 왕을 쳐단하는 영광을 물려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기드온의 아들은 두려워 칼을 뽑지 못했다. 결국 미디안 두 왕이 기드온에게 사내 대장부처럼 굴라고 하자 기드온이 미디안 두 왕을 칼로 쳐죽였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기드온은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며 왕위에 오르기를 거절했다. 과연 기드온이 겸손해서 왕위를 거절한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 왕이심을 알아서 거절했을까? 아니다. 기드온은 (하나님 대신) 금붙이를 택했다. 기드온은 사내 대장부 답지 못한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힘센 장사, 큰 용사라고 불러주셨지만 그는 끝내 작은자였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작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니 에봇을 만들어 에봇을 섬겼다. 하나님을 다만 부적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이라도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다.) 미디안으로부터는 평화을 얻어냈지만 역시 사십년 평화에 그쳤다. ////우리에게 자비가 없는 것은 믿음 역시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다고 말하면 그러니깐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러나 작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결국 우리에게 그 작은 믿음마져도 있다 없다 하는 모양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공동번역)”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 기드온은 믿음이 작은 사사였다. 예수를 만난 우리의 믿음은 적어도 기드온의 믿음보다는 커야하지 않을까… 믿음의 사람이라면 자비를 베푸는 것이 당연하고,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