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8 흑암

시편 88 흑암

좌절과 절망 그리고 죽음에 직면한 시편기자는 구원의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는 자신에게 임한 고난과 절망적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안다.

살아서 주의 기적을 찬양하고 주의 인자와 성실을 전하고 주의 공의를 누리게 해 달라고. 매일 한결같이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간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편기자의 기도를 정녕 외면하시고 진노만 쏟아 부으시는 것일까?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 마져도 자신에게서 떼어 놓으셨다고 항변한다.

그렇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흑암이 삼켜 버렸다.

그래도 밤낮으로 아뢸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다. 잊지말자.

// ㄱㅅㄷ 교수님께서 이 시를 위로로 삼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실 때 주님과 동행하시길

시편 87 본향

시편 87 본향

하나님께서는 모든 족속을 등록하실 때 모든 사람의 고향을 ‘시온’이라고 기록하신다고 한다.[6] 심지어 라합, 바벨론, 블레셋, 두로,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고향도 ‘시온’이라고 적으신다.[4] ‘시온’이 어디인가? 영광스러운 하나님나라다.[3] 지존자께서 세우신 나라다.[5]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이다.[1]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왔던 바로 그 땅이다.[2] 노래하는 자, 춤추는 자 모두 우리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7] 시편기자는 마무리 한다.

고라 자손이 부른 노래다. 이들은 ‘핍박과 고난’의 음율에 맞춰 이 노래를 불렀다. 어쩌면 자신들만 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는 아무개나 모두 ‘시온’출신이라고 인정하시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그러나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본향이 같은 사람들이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인가?

 

시편 86

시편 86

다윗의 시로 돌아 왔다. 한나라의 왕이었던 다윗. 그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노래를 시작한다.[1] 이어서 “나는 경건하오니”, “(나는) 주를 의지하오니”라고 말한다.

가난하고 궁핍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5:3] 다윗은 한나라의 대왕이었지만 자신을 가난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하나님나라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시하였고 하나님나라에서는 한참 작은 자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다윗은 자신을 “나는 경건하오니’라고 소개한다. 경건이라는 단어는 ‘성도’라는 단어와도 연결된다.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가난하고 궁핍하다고한 다윗은 자신을  ‘경건’한 성도라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를 의지한다고 고백한다. 그러고 보니 ‘가난하고 궁핍한 것’과 ‘경건’과 ‘주를 의지하는 것’을 다윗은 동일시 하는 것 같다. 그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노래한다. 돌고 돌아 하나님나라에 속한 삶을 살고자 한다.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경건합니다.

주를 의지 합니다.

하나님나라 백성의 특징이다.

나한테서도 드러나야할 특징이다.

시편 85 정의II

시편 85 정의II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 [13 새번역]

시편기자는 과거의 용서를 먼저 기억하며 노래한다.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덮어 주셨고, 그리고 노여움과 진노를 거두어 주셨다고 한다. [1-3] 그리고 과거에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다시 요청한다. “우리에게 *다*시* 돌아와 주십시오.”[4] ‘다시’라는 단어는 지금 시편기자가 처한 상황이 포로 되었으며, 죄악가운데 있으며, 그래서 주님의 진노가운데 있음을 드러낸다. 그의 간구는 노여움을 푸시고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5]

구원을 바라는 시편기자는 그 첫번째 이유를 “주님의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도록’이라고 노래한다.[6] 다시말해 백성의 기쁨을 위해 구원을 베풀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라고 한다. 두번째 이유는 주님의 속성인 ‘사랑’을 드러내 달라고 한다.[7] 시편기자는 구원이란 사람이 지음을 받은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라고 노래 하는 것이다.

시편기자의 간구는 하나의 서원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듣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겠으니 참된 평화를 달라고 한다. [8] 순종과 망령되이 행치 않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고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에 주님의 영광이 깃들것이라고 노래한다.[9]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10]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11]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는다.[12]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13]

주님 앞에 앞서가도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의’다. 이땅에서 정의롭게 사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진실이 개인적인 정직이라면 정의는 공동체적인 정직이라고 이해하면 안될까? 스스로도 정직하고 (진실하고) 공동체도 정의롭게 하는 것이 복음이 아닐까? 주님께서 가실 길을 평탄게 하는 것이다.[13]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시편 84 정의

시편 84  – 정의

얼마전 목사인 후배가 유럽을 여행하며서 사진을 올렸다. 함께 가지 않았어도 파리, 피사, 베니스 등등의 도시는 알아 볼 수 있었다. 에펠탑, 사탑, 수로와 같이 확실한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한 사진때문이다.

하나님나라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시편기자는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노래를 시작한다.[1] 어떤 장면의 사진을 보았기에, 혹은 하나님나라에 대해 어떤 말을 들었기에 정말 가보고 싶어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되었을까? 그런데도 갈 수 없는 듯 하다.[2]

시편기자의 탄식은 새들도 하나님 가까이에 [3] 둥지를 트는데 자신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는 하나님나라의 사랑스러움이나 하나님나라에서 주거의 안정이 아니라 주님 가까이서 항상 찬송하는 복을 누리고 싶어 한다.[4]

그러나 시편기자의 하나님나라에 당장 가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주님께로부터  마음으로라도 하나님나라를 늘 꿈꾼다면, 언젠가 가게 될 것이라는 큰 소망을 얻은 복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복되다고 한다.[5] 소망을 얻은 자들은 고난 (눈물 골짜기) 가운데서도 도움을(복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6]  어쩌면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히려 힘을 더 얻고 마침내 하나님나라에 도착해 하나님 앞에 서는 더 큰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이다.[7]

그래서 시편기자는 자신도 같은 꿈을 꾸며 기도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나의 기도도 들어주소서.[8] 그도 하나님나라를 꿈군다. 단순히 개인만을 위한 간구가 아니라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 (아마도 나라의 통치자)도 살펴달라고 한다. 하나님만이 모든 어려움으로 부터 공동체를 지켜 주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우리 방패라고 한다.[9]

주님과 사는 것이 얼마나 좋으면 하나님나라에서의 하루가 그 어떤 (좋은) 곳에서의 천날 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악인의 장막 (번듯한 집)에서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집 경비로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10]

시편기자가 꿈꾼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에게) 골고루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시다. 은혜와 영화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덧붙인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다.”[11] 이런 만군의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12]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하나님나라는 정직하게 행하는 자가 복을 누리는 나라다.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다. 하나님을 믿으면 개인적인 복을 받는 나라가 결단코 아니다. 주께 의지 하는 자가 복이 있다. 손해보더라도 정직하게 행하게 해 달라고 의지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무엇을 구해야 할지는 자명해졌다. 누가는 이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한다. 정직하게 행할 수 있도록 구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하나님께서 정직하게 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오! 이것이 하나님나라를 맛보며 이땅에서 사는 것이다. 마음에 하나님나라를 향한 고속도로가 있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정직하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거다. 하나님나라의 특색은 “정직하면 손해야”라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