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8:39-19:16] 포스트모던의 뿌리
빌라도는 사도신경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길 그렇게 원했을까? 예수님을 무죄라고 생각했음에도 석방하지 못했다. 대신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유월절 ‘특별사면’ 대상자로 제안했다. 그런데 치명적인 실수를 한다.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빌라도가 진리의 왕이신 예수를 믿거나 이해했을리 만무다.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고발한 이유, 즉 로마에 대한 반역을 뜻하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고발자체를 인정하고 말았다. 이에 유대인들은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특별사면하라고 큰 소리로 시위했다.
여론에 휘말려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헤롯이 요한의 목을 베었듯이) 바라바를 특별사면 하였다.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고문하였다.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왕처럼 입혀놓고 오히려 때렸다. 그렇다고 무죄한 예수님을 어쩔 수 없었다. 빌라도는 마지막까지 무죄를 선고한다.[4] 그리고 예수를 데리고 법원을 나선다.
다시한번 인민재판이 시작되었다. 바라바를 외쳤던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다. 빌라도는 로마법으로는 무죄라고 다시 한번 선언하고 무리들에게 너희가 알아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다시한번 예수님은 유대법으로 하면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사형’이지만 (로마법 아래에서) 자신들은 사형시킬 권한이 없다고 항변한다.
빌라도는 다시 예수를 데리고 법원에 들어가 예수를 심문한다. 묵비권을 행사하시는 예수님께 놓아줄 권한이 있으니 협조하라고 한다. 이때 예수님은 잠시 입을 열어 말씀하신다. 놓아줄 권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 줄 방도를 찾으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십자가의 길을 막을 순 없었다. 여론에 밀려 마지 못해 십자가 형을 언도한 것 같지만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가셔야 할 십자가의 길이었다.
세상법을 따라 살랴 아니면 하나님나라의 법을 따라 살랴.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라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대제사장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빌라도는 ‘진리’에 대해 알기를 원했다. 그런데 진리를 가르쳐야 할 대표들, 대제사장들조차 진리를부인하고 세상법에 자신들의 문제를 맡기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진리’가 설자리는 없었다. 포스트모던의 뿌리다.
// 세상을 향해 진리를 전해야 할 교회도 하나님나라의 법이 아니라 세상 법에만 의존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 교회마저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다. “돈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