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28-30]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시기까지 순종하셨다. 성부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셨다. 이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시편 69편 다윗의 시를 기억하셨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다윗의 영혼에까지 차오르고,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깊은 물에 빠져 큰 물이 넘치는 상황.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목/이/ 말/랐/다/고 노래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 하셨다.
“내가 목마르다”는 시편 69편의 첫구절 “하나님이시여 나를 구원하소서”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신의 목마름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줄 수 있는 물은 신포주였다. 잠깐이라도 목마름을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갈증과 몸의 고통을 잊게하는 마취의 역할을 했을까?
예수님께서는 다시하번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죽/으/셨/다. 요한은 죽으셨다라는표현대신 ‘영혼이 떠나가시니라.’라고 기록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피하고 싶으셨던 ‘잔’ 그래서 성부 하나님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서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항상 함께 하시던 성부하나님과의 단절이었을 것이다. 영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육의 몸을 입고 이땅을 사시면서도 성부하나님과 하나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영혼’ 즉 성/령/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영혼’이 예수님을 떠나셨다. 육신이 찢기고 피가 흘리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성부하나님과의 단절은 정말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원’을 함께 하신 삼위 하나님께서 그 기간이 아무리 찰라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떨어져야 한다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은 없을 것이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인간성을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부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십자가’를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다.
성령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데도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아간다면 이 세상의 신포도주에 나는 이미 마취가 되어버린 것이다. 때로는 내 영혼에게 하나님을 바라게 하고, 때로는 세상 술(가치관)에 내 몸을 마취시키고…
세상 술에 나를 맡긴 부분이 있다면 그 술에서 깨어나게 하소서. 성령하나님께서 내 속에 거하실 수 있도록 내가 말씀을 순종함으로 나를 더욱 더 정결하게 하소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속에 거하시도록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거룩해지고 교회가 거룩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