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1-23] 부활 – 내 형제
막달라 마리아! 빈무덤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러 갔던 마리아가 무덤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경주하듯 달려온 베드로와 요한보다 한참 늦게 다시 온 듯 하다.) 그가 왔을 때 두 제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였던 것 같다. 그녀는 다시 울면서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다. 먼저는 보지 못했던 광경. 두 천사가 무덤 안에 있었다. (그럼 두 제자는 왜 천사들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천사들은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고 마리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몰라 운다고 답했다. 보통 천사를 보면 무서워 떤다. (심지어 마태는 무덤을 지키던 자들 천사들이 돌을 굴려 무덤을 열 자 무서워하며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이 순간 마리아는 천사에 대한 두려움보다 예수님에 대한 열망이 더 컸던모양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마리아 뒤편에 서 계솄다. 마리아가 뒤로 돌이켜 예수님을 보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서인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천사들 대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했다.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이 순간 만큼은 동산지기라도 ‘주님’이 되는 순간이었다. 예수님 시체를 찾을 수 있다면 세상의 낮아보이는 사람에게도 ‘주여’라고 부를 수 있다.
“마리아야” “선생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부활의 몸을 드러내셨다. 육을 입으셨으나 썩지 아니할 새로운 몸을 입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고 하셨다. 새로운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더 이상 이 땅에 얽매이지 않는 다는 뜻일 것이다. 그 어떤 장애물도 방해할 수 없고 심지어 중력도 거스리는 몸! 곧 승천하실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제자들. 처음에는 종에 비유되었다. 그리고 친구라고 부르시더니 이제는 ‘내 형제’라 하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아멘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부활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두려워 하며 모여있는 제자들을 찾아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의 두려움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주변 상황은 달라진게 하나도 없는데도 내적인 변화가 가져온 결과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고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이 구절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평강은 성령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용서를 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역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성령을 받을 수도 평강을 누릴 수 없다.
“아바 아버지” 부활의 주님이 나도 형제라 부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