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1:1-13
솔로몬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사관은 이에 더해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명이라고 기록한다.
동양에서는 ‘삼천’이라는 숫자가 아주 아주 매우 많음을 뜻하는 숫자다. 대표적인 예가 ‘의자왕과 삼천궁녀’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일천’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할 때 정확히 일천번의 번제를 드렸다라기 보다는 셀 수 없이 많은 번제를 드렸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솔로몬의 후궁과 첩의 합이 ‘일천’이라는 것도 셀 수 없이 많았다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많은 아내를 거느니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아니다. 신명기에서 이미 이스라엘 왕에 대해 경고하실 때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다. [신17] 솔로몬이 이 말씀을 몰랐을리 없다. 더군다나 하나남께서 두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셨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마다, 죄를 지적하실 때마다 회개하고 돌이켰다. 그래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자라는 평가도 받았는데 사관은 솔로몬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라고 기록한다.
불순종의 결과는 나라를 신하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다윗과의 약속을 지켜 코딱지만하게, 한지파를 더해서 다윗의 왕위를 유지해 주겠지만.
솔로몬은 많은 여인을 사랑했다. 사랑이 죄일리 없다. 그러나 솔로몬은 많은 여인을 탐했다고 번역하는 게 옳을 듯 싶다. 여색에 빠진 것이다. 사관은 이것을 ‘솔로몬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다.”라고 표현한다. ‘마음을 돌린다’라는 이표현이 이 본문에만 네번이나 나온다. [2,3,4,9]
마음을 돌린다는 것은 그곳에 마음을 빼았겨 그곳에 마음을 둔다는 의미고, 그곳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품에 안은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 따라 다른 신들을 따르게 되었다. 사관은 특별히 모압의 그모스, 암몬의 몰렉을 언급한다. 이 두신은 인신제사와 관련된 신들이다.
성경에는 솔로몬의 자녀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과 솔로몬 통치 초기에 지방장관의 아내가 된 두 딸만 언급되어 있다. 일천명은 아니더라도 그 많은 아내들에게서 난 자녀들이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르호보암은 암몬 여인 나아마의 아들로 기록된다. 나아마 역시 성경에 유일하게 솔로몬의 아내 중 이름이 기록되어있다. 아마도 그 수많은 여인들을 물리치고 안방마님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르호보암을 위해 솔로몬의 다른 자녀들은 인신제사를 드리게 하지는 않았을까 상상도 해 본다.
사관은 솔로몬이 나이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고 기록하지만 이미 그 여인들을 사랑할 때부터 시작된 악몽일 것이다.
+++++페북 엔딩
후궁 칠백에 첩이 삼백인데 솔로몬의 자녀이름은 르호보암과 지방장관에게 시집보낸 두 딸 외에는 기록이 없다. 솔로몬의 아내 이름도 르호보암의 어머니 암몬여인 ‘나아마’가 유일하다.
왜? 나아마가 안방마님을 차지 했다면? 사관은 이방신을 기록하면서 모압의 그모스, 암몬의 몰렉을 언급했는데 둘 모두 인신제사와 관련있다. 나아마가 안방마님이었다면 다른 모든 자녀들은 인신제사로 드려졌을 수도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혹은 다른 여인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출산을 감추었을 것이다.
사관은 솔로몬이 노년이 되어서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났다고 기록하지만 르호보암이 41세에 즉위하고 솔로몬 통치기간을 40년으로 보면 이미 왕이 되기 전부터 이방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결국는 늙은 다윗이 자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다. 다윗왕에게 죄송)
오늘의 핵심 단어는 ‘마음을 돌리다’이다. 마음을 ‘둔다’,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다. 부귀영화, 지혜, 성적 탐욕 이런 것들을 사랑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둘 순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기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 마음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