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38-53
중요한 것은 반복해야 한다. 솔로몬의 대관식 절차는 아무리 간단하게 기술되었어도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 때, 실제 사건의 서술, 그리고 적대 세력의 보고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때 이렇게 세 번 반복된다. 재탕을 넘어 삼세번이니 확실한 사건이다.
솔로몬의 대관식에 참석한 주요 무리에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추가되었다. 브나야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군대장관으로 임명되었던 것으로 보아 (삼하 8) 이들은 왕의 호위를 맡은 일종의 특수부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난으로 피난 갔을 때도 이들은 다윗과 함께 했다.)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보고 할 때도 그렛 사람 블렛 사람을 빼지 않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다윗의 왕위와 상징적으로 연결되는 군대임에는 틀림없다. 하여간 사병까지 모은 아도니야로부터 솔로몬을 지켜주는 일종의 안전 장치였을 것이다.
요나단은 아도니야에게 솔로몬의 대관식은 이미 끝났고 솔로몬이 이미 왕좌에 앉았다고 보고 한다. 왕의 신하들이 선왕 다윗을 축복하고 다윗왕 역시 침상에서 늙은 몸을 굽혀 솔로몬으로 자신의 왕위를 잊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소식까지 전한다. 자신의 왕위에 앉/을/ 자를 자기 눈으로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니 자신의 왕위에 앉/은/ 자를 보았다고 기록해야 하는데…
// 왕의 신하들이 새롭게 왕위에 앉은 솔로몬을 축복한 것이 아니고 선왕 다윗을 축복하였다고 기록한 것도 새롭다. 축복은 새로운 왕이 선왕을 뛰어넘는 왕이 되기를 하나님께 바라는 내용이다. 마치 돌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이 부모를 축복하듯이.
요나단의 보고가 채 마치기도 전에 아도니야의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기 제 길로 갔다. 당연히 스스로 왕이라고 선언했던 아도니야도 살 길을 찾아 제 길로 갔다. 그 사실을 보고 받은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준다. 집으로 보낸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는 우리 인생과 다르다. 누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다윗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마도 ‘맹세의 딸’이라고 이름한 밧세바에게도 잊혀진 약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자 나단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다윗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 모든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단 혼자의 일이 아닌 각자 맡은 역할들이 있었다. 심지어 일반 백성들도 “솔로몬 왕 만세”로 화답하는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 이유는 요나단의 보고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성읍이 진동 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45] 에서 찾을 수 있다. 백성들이 솔로몬을 선택한 것이다.
대선이 코 앞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권위를 기대한다. 국민들이 선택할 권위를 기대한다.
각기 갈 길로 갈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