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8:1-11

왕상 8:1-11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성전의 외내부 장식이 완성되었다고 하여서 역사를 마친 것은 아니었다. 다윗이 성전 건축에 대한 마음을 사관은 이렇게 표현했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삼하7:2]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입주하는 절차가 남았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모았다. 제사장들은 궤를 메고, 레위 사람들은 성전의 기구들을 메고 성전으로 올라갔다. (아마도 성전에 도착해서 궤를 안치하기 전에 성전 뜰에서) 솔로몬과 그곳에 모인 온 회중이 제사를 지냈다. 정해진 법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저 감격에 겨운 제사였던 것 같다. 제물의 수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치 다윗이 옷을 벗고 춤을 춘 것 같은 잔치의 제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언약궤를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 놓았다. 언약궤를 운반하기 위해 꽂아 둔 채를 그냥 두었다고 한다. (사실 운반용 채는 더이상 필요없다.) 그리고 사관은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라고 덧붙인다.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히9:4]

신약시대의 히브리서 기자는 언약궤 안에 만나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있어다고 기록하는데 사관은 왜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라고 기록했을까?

두 사람 모두 언약궤를 열어 보았을리 만무다. 히브리서 기자는 언약궤 자체를 보았을리 없다. 그는 구약 성경을 근거로 히브리서를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히브리기자는 두 돌판을 넣은 언약궤와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함께 놓여 있었던 모세의 때를 염두에 두고 기록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히브리서 기자는 생명의 양식되시고 우주적 대 제사장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하여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상징을 이용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열왕기상 사관도 기록을 보고 썼을 것이다. 언약궤는 아무나 열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손을 댈 수 없어 채를 고리에 걸어 운반해야 한다. 그러니 모세를 제외 하면 궤를 열었을리 없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관은 성전의 주인이 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 그것도 말씀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두 돌판,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을 맺을 때 모세가 넣은 것이라고 사관은 기록한다. 일종의 계약서다. 마치 집문서를 집안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고나 할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놓고 나올 때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했다. 제사장들은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한다. 구름은 여호와의 영광을 상징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곳에서는 제사장이라 하여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한다. 엎드리면 된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거나 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저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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