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9:1-9
하나님께서 기브온에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심 같이 성전에서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사관은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1]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기록한다. 그동안 적어도 강산이 두번은 바뀌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서론: 내가 너의 기도와 간구를 들었다. 그래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성전에 두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본론: 1) 솔로몬이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행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면 이스라엘 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솔로몬 에게서 끊어지지 않고 견고할 것이다. 2) 솔로몬 당대와 후대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순종하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면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성전이라도 던져버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겠다.
결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을 그 백성에게 내리신다.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언약을 반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변함없은 하나님이신데 솔로몬이 변한 것일까? 사관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신 때를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라고 기록했다.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 아마도 한창 교만해 질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장소가 성전이다. 왜? 솔로몬이 성전에서 자고 (혹은 졸고) 있었을까? 단순히 절기를 따라 제사를 드리러 갔다면 성전에서 잘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성전의 화려함에 취했거나, 손님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함께 방문했다가 졸았나?
하여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기존의 언약만 일깨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 경우의 심판에 대해서도 언급하신다.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불순종의 댓가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성전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도,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에도 평화를 평안을 의심하지 않았다. 설마 하나님께서 진짜 성전을 던져 버리실까?”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다. 불순종은 심판이고 멸망이다. 설마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내가 진짜 구원에서 떨어질까? ‘성도의 견인’은 순종의 열매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7:21] 행하는 사람.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는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들이다.[마7:24-26] 구원의 약속 성경구절을 암송한다고 구원 받은게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마7:20] 그래 삼십여년전에 구원받았다 하자. 오늘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와 네 자손이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등을 돌리거나. 내가 네게 일러준 내 계명과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곁길로 나아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을 숭배하면, 나는, 내가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에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자들을 끊어 버릴 것이고, 내 이름을 기리도록 거룩하게 구별한 교회라도 외면하겠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겠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과거형에 머물러서 안된다. 현재형이고 미래형으로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