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1-12 유언

왕상 2:1-12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했다.

프롤로그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 나도 죽는다.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 그러니…

본론

  1. (힘써) 대장부가 되라. // 대장부라는 단어는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에 처음 ‘남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이어진 구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에 사용된 것으로 보아 다윗의 그늘에서 벗어나 솔로몬의 시대를 열어가라는 축복이 아닐까?
  2.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라. //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의 율법에 법률, 계명, 율례, 증거로 기록되어 있다. 이미 주어졌다는 의미다. ‘지키라’라는 동사가 두번 반복되는데 아마도 개인적으로도 지켜야 하고 또 왕으로서 율법을 수호하라는 두가지 뜻이 있는 듯 하다. 그러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축복한다. 형통에는 지혜롭게 행한다는 의미도 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라. //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다윗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다윗 가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다윗은 율법의 준수와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사람이 되라고 솔로몬을 축복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이루는 길이다.

에필로그

  1. 요압 //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도 다윗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 있다. 다윗의 누이 (혹은 여동생) 스루야의 세아들 중 한명이다. 그러니 다윗의 조카가 된다. 그는 정치적이고 권력욕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아브넬을 죽인 것은 동생 아사헬에 대한 복수라 하자. 이종사촌 아마사를 죽인 것은 권력욕이다. (예델은 스루야의 동생 아비가일의 남편) 다윗은 요압의 권력욕에대한 경계와 심판을 지혜롭게 하라고 당부했다. 괜히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까?
  2.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 //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풀라고 한다.
  3. 시므이 //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갈 때 다윗을 저주한 인물이다. 시므이의 이중적이 태도에 다윗이 죽이지는 않았지만 솔로몬에게는 그의 죄값도 지혜롭게 받으라고 한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은 순전히 다윗의 유언때문이다. ㅎㅎㅎ

다윗은 죽어 다윗성에 장사 되었다. 사십년 왕으로 살았던 다윗도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갔다.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다윗의 왕위에 앉았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삼하 7:12,13 새번역]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나라가 튼튼하게 세워졌다.

왕상 1:38-53

왕상 1:38-53

중요한 것은 반복해야 한다. 솔로몬의 대관식 절차는 아무리 간단하게 기술되었어도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 때, 실제 사건의 서술, 그리고 적대 세력의 보고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때 이렇게 세 번 반복된다. 재탕을 넘어 삼세번이니 확실한 사건이다.

솔로몬의 대관식에 참석한 주요 무리에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추가되었다. 브나야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군대장관으로 임명되었던 것으로 보아 (삼하 8) 이들은 왕의 호위를 맡은 일종의 특수부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난으로 피난 갔을 때도 이들은 다윗과 함께 했다.)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보고 할 때도 그렛 사람 블렛 사람을 빼지 않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다윗의 왕위와 상징적으로 연결되는 군대임에는 틀림없다. 하여간 사병까지 모은 아도니야로부터 솔로몬을 지켜주는 일종의 안전 장치였을 것이다.

요나단은 아도니야에게 솔로몬의 대관식은 이미 끝났고 솔로몬이 이미 왕좌에 앉았다고 보고 한다. 왕의 신하들이 선왕 다윗을 축복하고 다윗왕 역시 침상에서 늙은 몸을 굽혀 솔로몬으로 자신의 왕위를 잊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소식까지 전한다. 자신의 왕위에 앉/을/ 자를 자기 눈으로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니 자신의 왕위에 앉/은/ 자를 보았다고 기록해야 하는데…

// 왕의 신하들이 새롭게 왕위에 앉은 솔로몬을 축복한 것이 아니고 선왕 다윗을 축복하였다고 기록한 것도 새롭다. 축복은 새로운 왕이 선왕을 뛰어넘는 왕이 되기를 하나님께 바라는 내용이다.  마치 돌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이 부모를 축복하듯이.

요나단의 보고가 채 마치기도 전에 아도니야의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기 제 길로 갔다. 당연히 스스로 왕이라고 선언했던 아도니야도 살 길을 찾아 제 길로 갔다. 그 사실을 보고 받은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준다. 집으로 보낸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는 우리 인생과 다르다. 누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다윗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마도 ‘맹세의 딸’이라고 이름한 밧세바에게도 잊혀진 약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자 나단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다윗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 모든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단 혼자의 일이 아닌 각자 맡은 역할들이 있었다. 심지어 일반 백성들도 “솔로몬 왕 만세”로 화답하는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 이유는 요나단의 보고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성읍이 진동 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45] 에서 찾을 수 있다. 백성들이 솔로몬을 선택한 것이다.

대선이 코 앞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권위를 기대한다. 국민들이 선택할 권위를 기대한다.

각기 갈 길로 갈것인가?

왕상 1:28-37 브나야

왕상 1:28-37 브나야

// 나단의 대면보고를 받은 다윗왕은 (깊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났다. 사무엘이 자신에게 기름을 부었던 그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그렇다 왕위는 대관식(사람의 추대)보다 기름부음(하나님의 선택)이 먼저다.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자신이 일전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밧세바에게 네 아들 솔로몬이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맹세한 그것을 오늘 그대로 행하겠다고 다시 맹세하였다. 밧세바가 “다윗왕 만세”하고 물러났다.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군대장관) 브나야를 불렀다. 그들에게 솔로몬을 왕이 타는 노새에 태워 기혼으로 데리고 가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솔로몬왕 만세”를 부른 후 왕궁으로 돌아와 왕위에 앉혀 자신을 대신하여 왕으로 모시라고 후계자 지명을 확실히 하였다.

브나야은 다윗의 후계자 지명에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또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 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의 왕위를 내 주 다윗 왕의 왕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니 브나야의 아멘은 다윗의 후계자 지명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지만 왕위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화답이었다.

// 다윗, 사독, 나단 이 세사람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에 비하면 브나야는 평신도 전문인이다.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절차를 명하자 사독이나 나단이 아닌 브나야가 화답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척 인상적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위치는 아니었지만 성경은 그를 [‘여호야다’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알고 계심’)의 아들 ‘브나야’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라고 반복해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하나님의 일에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직책이나 직함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서 쓰임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는 하루!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나부터)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되는 하루를 기대하며…

 

왕상 1:11-27 국정농단

왕상 1:11-27 국정농단

왕이 되기 전 다윗과 하나님 사이에는 개인적인 대화가 있었다. 그래서 선왕 사울의 우울증?도 달랠 수 있었다. 왕이 된 후 다윗과 하나님 사이에는 선지자 나단이 있었다. 그는 왕권으로 우둔해지는 다윗의 영성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아도니야의 국정농단. 사저에 (침실에) 칩거해서 아비삭의 시중을 받으며 나단의 대면보고마저 받지 않고 죽을 때를 기다리는 다윗은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아도니야가 비선실세였다.

나단은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아도니야의 국정농단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는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밧세바에게 네 아들 솔로몬이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맹세한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나단은 그 당시 바로 잡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단은 그 약속이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도니야 국정농단에 대한 대면보고를 시도한다. 왕의 침실에 접근할 수 있는 밧세바를 먼저 보내 침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등장을 알린다. (어쩌면 아비삭은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신하들이 심어 놓은 문고리로 나단의 대면보고를 막았다고 볼 수 있다.)

나단은 (그의 지시를 받은 밧세바도)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된 것이 반역이라면 (다윗의 뜻이 아니라면) 반역에 참여하지 않은 자신들은 숙청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아도니야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자신들이 왕/의/ 종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아도니야의 국정농단이 다윗의 왕의 뜻인지 아닌지 알려달라고 한다.

// 밧세바. 헷사람 우리야의 아내였다가 다윗의 여덟번째 왕비가 된다. 우리야는 헷사람이니 이방의 피가 흐르지만 다윗의 용사 37인중 한명으로 기록된다. 밧세바은 엘로암의 딸이라고 성경은 알려준다. 엘로암 ( ‘백성의 하나님’이란 뜻)은 다윗의 모사였지만 압살롬에게 조언했던  ‘아히도벨’의 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밧세바’라는 이름에는 ‘맹세의 딸’이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끊어지면 누구에게나 다가 올 수 있는 사건이다. 중요한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뿐만아니라 공동체적 교제가 필요하고 영적인 멘토 (선배든 후배든) 가 반드시 필요하다.  주변에 나의 영적인 문제를 언급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나에게 영적인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성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 주여

왕상 1:1-10

왕상 1:1-10

다윗왕이 늙었다. 신하들이 데려온 심히 아름다운 수넴 여자 아비삭을 품에 안고도 섹스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었다. 죽을 때가 된 것이다. [1-4]

다윗의 세째 아들 압살롬은 죽었고 다음으로 왕위를 승계할 차례는 학깃에게서 난 네째 아들 ‘아도니야’ 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왕이 되고자 준비했다. 사병을 모을 수 있을 정도의 재력과 리더쉽도 있었고, 압살롬 다음이라는 명분도 있었고, 용모가 준수하여 인기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다윗의 총애도 받았다.
아도니야는 요압장군과 제사장 이비아달을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지만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했다. [5-8]

아도니야는 왕이 될 계획을 착수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 장군인 브나야, 다윗의 용사들, 그리고 잠재적 경쟁자 동생 솔로몬을 간과하는 우를 범했다.[9-10]

이스라엘의 왕위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늙어 다 죽게된 다윗은 잊어 버렸고 신하들은 무시했고 아도니야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높이고 지혜로운 체하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아도니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야 말았다.

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