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1:26-43

왕상 11:26-43

내우외환이라 했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내우다. 느밧이 무슨 일을 했는지 성경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도 일찍 죽었나보다. 그래서 여로보암의 어머니 이름을 스루아라고 기록하면서 과부라고 토를 달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여로보암은 착실하게 자랐다. 솔로몬이 부지런한 청년이 큰 용사가 되는 것을 본 것으로 짐작컨데 솔로몬이 느밧을 총애했을 수도 있겠다. 일찍 죽은 신하의 아들이 잘 자라자 감독의 한 자리를 맡겼다고나 할까.

여로보암을 눈여겨 본 사람은 솔로몬만이 아니었다. 하나님도 계셨다. 솔로몬의 불순종에 대한 벌로 여로보암을 선택하셨다.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솔로몬의 손에서 열지파를 빼앗아 주겠다고 하셨다. 솔로몬의 불순종을 이방신들을 경배하여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길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다윗 집안과 한 지파를 남겨두는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하시면 솔로몬이 죽으면 열 지파를 주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과 여로보암의 언약이다. 이 언약은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모순이다.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리라’와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내 마음에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에 합당해야 한다. 우리가 놓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도 마찬가지다.

아히야와 여로보암의 만남이 솔로몬의 귀에 들어갔다. (정말로 낮말은 새가 듣는다더니 아니 솔로몬이 새와 대화한다더니) 이에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했고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애굽왕 시삭에게로 망명한다. 솔로몬이 사울왕처럼 되어버린 것은 많은 지식이 그의 영혼을 핍절하게 했기 때문은 아닐까? 악령에 시달렸을 것이다. 솔로몬의 사십년 통치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부귀영화의 찬란함의 뒤안길.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을 돌린 (귀를 돌린) 지혜자의 마지막이다. 솔로몬의 역사에서 ‘선지자’라는 단어는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선지자 나단’이후 (왕상 1장) 쭉 없다가 오늘 본문 ‘선지자 아히야’에서야 (11장) 다시 나타난다. 이런 예언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솔로몬의 말로가 이렇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솔로몬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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