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3:20-34

왕상 13:20-34

벧엘의 늙은 선지자 집으로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며 지친 몸을 쉬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임했다. 그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해 말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 때로는 속임수에 능한 사람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일관되게 사용하던 하나님의 사람에서 선지자라고 사관의 표현이 바뀐이유는 무엇일까?)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나귀에 태워 보냈다. 유다에서 온 사람 (이제는 선지자라는 표현도 안쓰고 그저 사람이라고… 음)은 길을 가다가 사자에게 물려 죽어 시체가 길에 버려졌고 (이상하게도) 나귀도, 사자도 그 시체 옆에 서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벧엘로 가서 사람들이게 자신들이 본 것을 말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확신에 유다에서 온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아들들에게 준비 시킨 나귀를 타고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은 사람들이 전해 준 그대로 였다. 사자가 시체도 나귀도 먹거나 찢지 않았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돌아와 슬피 울며 장사해 주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내 형제라 부르며 슬퍼 울었다.

장사한 후에 아들들에게 자신이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장사해 달라고 유언한다. 그리고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예언하였다.

여로보암도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않았다. 여전히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다. 자원하는 사람은 산당의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죄다. 여로보암의 집은 이 일로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서 제사장 엘리의 말년이 떠오른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삼상 3] 엘리는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때였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 사무엘에게 임한다. 엘리는 사무엘에게 임한 이상이 궁금했다. 그는 사무엘을 불러 하나도 숨기지 말고 자신에게 얘기 하라고 명령? 했고 사무엘은 엘리에게 자세히 조금도 숨김없이 말해 주었다. 엘리는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벧엘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은 희귀해졌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제사장이 되는 현장 속에서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도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은 희귀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단을 향해 예언한 사건은 그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싶어했다. 하나님의 사람을 속이기까지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의 대상은 벧엘 제단만이 아니었다.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에 대한 예언이었다.

늙은 선지자의 유언적 예언도 제사장 엘리의 말과 마찬가지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벧엘의 늙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이 나의 처한 상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황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에 대한 기대가 더 커야 함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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