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4:1-20
‘그 때에’ 여로보암이 다스리던 때에는 주목할만한 일이 많았다.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 사건도 기록되어있다. 마치 출애굽 열재앙의 마지막 재앙처럼 어쩌면 여로보암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그 때’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자 아내에게 실로에 거하는 선지자 아히야를 찾으라고 부탁한다. 아히야가 아직 살아 있었다. (살아있네. 방가방가) 여로보암이 아히야 선지자를 찾은 이유는 아히야가 이전에 여로보암이 왕이 될 것이라는 자기에게 듣기 좋은 예언을 했던 선지자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좋은 예언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완전히 무당을 찾아 점을 치는 꼴이다. 여로보암은 아내에게 복비로 떡 열개와 과자와 꿀 한병을 가지고 가라고 했다. 21세기를 살면서 점집에 드나드는 것, 혹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점집에 드나드는 것을 감추려고 하듯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종교창시자인 여로보암은 자신이 다시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는 것을 감추려고 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변장을 하고 가서 아히야의 장래에 대해 점을 치고 오라고 부탁한다.
실로에 기거하는 아히야는 늙었다. (여로보암에 대한 예언으로 그는 솔로몬에게 구박을 받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실로에 칩거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육신의 눈은 어두워졌지만 영안은 여전하였다. 하나님은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의 아내가 올 것을 알려주고 대답할 내용을 지시하셨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찾아왔다. 아히야 선지자는 발소리에 여로보암의 아내인 줄 알고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그대로 전한다.
첫번째로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버린 악을 지적하고 여로보암 집에 속한 사내는 다 쓸어버리시는 재앙을 내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베푸신 은혜, 즉 왕이 되게 하신 것을 말씀하시고, 다윗의 길로 행하라고 명하셨음에도 더 악을 행한 것에 대해 책망하셨다. 그리고 그 악이 여로보암 자신을 위하여 다른 신들을 만들며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다.)
두번째로 여로보암의 아내가 성읍으로 들어갈 때 아비야가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자격을 갖추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백성들이 좋아하는 성품을 가졌던 것 같다.) 온 이스라엘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사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로보암과 달리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비야는 묘실에 장사될 것이라고 하셨다.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으면 개가 먹고, 들에서 죽으면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는 저주와 비교하면 아비야는 복되게 죽은 것이다.
세번째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왕을 일으켜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릴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도 ‘곧’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다.
네째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뽑아 강 너머로 흩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아세라 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기로 하셨다. 여로보암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것, 이것이 ‘여로보암의 길’이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다르사로 돌아가서 집문지방에 이를 때 아들 아비야는 죽었다. 아히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장사하고 슬퍼하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
여로보암은 22년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의 아들 나답이 왕위를 잇는다. 어쩌면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과도 같은 아들 아비야의 죽음. 여로보암은 말씀의 성취를 보고도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도 부적처럼 생각하고, 자신을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드는 여로보암. 나를 네 등뒤에 버렸도다라는 하나님의 책망이 섬뜩하다. 호가호위를 누리다 말갛게 쓸어버림을 당한다. 마치 애굽의 병거들이 홍해에서 수장되는 장면이 연상된다.
오! 여로보암. 다윗에게 ‘그 때’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기회였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 행하여 할 ‘정직’한 일이었다. 이것이 ‘다윗의 길’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그 때’를 회개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범죄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범죄하게 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