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92

시 92

시편 90편을 노래한 시인은 마지막절에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라고 두번이나 간구했다. 그런데 시편 92편을 노래한 시인은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기뻐 외친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손’과 ‘주의 손’, 그 크기가 다름은 분명하다. 아니 백세인생을 노래한들 영원토록 지존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다.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에 감사하는 시편기자의 노래는 시편 1편을 떠올린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1:4~6/92:9). 그러나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다(1:3/92:12-14). 시냇가 대신 하나님의 집에 심겼다고 더 구체화 된다. 늙어도 고목이 되지 않고 열매를 맺는 생명력을 유지한다.

하나님의 집 마당이라고 온갖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낮에는 뜨거운 해와, 밤에는 추위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 마당에서는 ‘사람이 낸 꾀’ 대신에 정직함, 정의와 공의가 선포된다. 세상과 다른 점이다. 내 ‘꾀’ 대신 정의와 공의가 선포된다면 그곳은 하나님의 집 마당이다.

 

시 91

시 91

탄탄대로를 노래하는 시는 드물다. 아니 없다. 어느 인생도 탄탄대로만 걷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가 밤에 찾아오고 화살이 낮에 날아드는 개인적인 어려움만 아니라 전염병과 재앙이라는 공동체적 재난까지 겹친다. 구원이란 근본적으로 이런 온갖종류의 환란을 겪지 않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다. 놀이동산에 있는 귀신의 집처럼 통과가 보장된 길이기에 두려움없이 걷는다. 두려움이 노래로 변한다.

시편기자는 14-16절에서 하나님이 되어 노래를 이어간다.

“나에게 부르짖는 자를 내가 건져주며 나의 이름을 아는 자를 내가 높여주리라. 나를 부르는 자에게 대답해 주고 환난 중에 그와 함께 있으리니 나는 그를 건져주고 높여주리라. 그로 하여금 마음껏 오래 살게 하고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여주리라.”

구원이란 인생 순간 순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인생너머에 있는 것이다.

 

시90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 예수 믿고 가장 처음 찾아 본 구절 중 하나다. 선배 한 분이 관주성경을 펴서 자신이 빨간 연필로 줄 친 시편의 여러 구절들을 보여 주셨는데 그 때 왜 이 구절이 내 기억에 남았는지 모른다. 시편 몇편에 이 구절이 있는지 몰라 처음부터 쭉 살폈던 기억이 새록새록.

요즘 사람들은 백세인생을 노래한다. 그러나 칠십, 팔십을 너머 백세를 노래한다고 하여서 수고와 슬픔으로 화살처럼 날아가서 사라질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달라지게 하는 것은 연수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롭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일생을 기쁘게 한다. 이 사랑이 영생을 소망하게 한다. 고생한 날 수 만큼, 고난을 당한 횟수 만큼 기쁨을 누리게 해 달라는 시편기자의 노래는 바울의 고백과도 어우러진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롬 8:18 새번역]

오늘 아침도 나를 만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지혜로운 마음을’ 주옵소서.

민 36

민36

주님께서는 슬로브핫 딸들의 경우를 두고 이렇게 명하셨소. 그 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누구하고든지 결혼할 수는 있소. 그러나 그들이 속한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만 시집갈 수 있소. [민 36:6]

땅의 상속문제는 정말 어렵다. 그것은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뭣인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있겠냐마는 땅은 더욱 그렇다. 특별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는 중요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받은 땅은 결혼과 함께 남편에게 귀속되고, 희년이 되어도 남편 지파의 유산에 포함된다. 그러니 슬로브핫이 속한 므낫세 지파의 경우 그 만큼의 땅을 손해? 보게 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요셉 자손, 므낫세 지파의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자기 조상의 지파의 가족에게만 시집갈 것을 명하였고 슬로브핫으리 딸들은 사촌과 결혼하므로 순종하였다.

//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면 삶은 여자를 따라가게 되는 데 땅은 남자를 따라가게 되는가보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방 여인들의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을 경계함이다. 다른 지파 남자와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땅을 잃기 때문이다.

민 35:22-34

민 35:22-34

부지중에,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살인한 사람은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도망하여 도피성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심판대에 서야 한다. 부지중 살인이라는 선고를 받아야 도피성에 머물 수 있다. 아니 머물러야 한다.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거주해야 한다.

부지중, 악의가 없이 살인하였다고 하여도 살인자다. 그가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피를 보복하는 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고 이경우 피를 보복하는 자의 살인은 정당화 되었다.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살인에 대한 판결 규례는 엄중했다. 한 증인의 증거만으로는 사형을 선고할 수 없었고 고의로 살인한 자는 돈으로 사형을 면제받을 수 없도록 했다. 도피성에 피한 자도 돈으로 도피성을 나올 권리를 살 수 없었다. 고의든 부지중이든 사람을 죽인자는 그 땅을 더럽히는 자들이라 사형에 처하든지 도피성에 가둬야 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거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