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31:25-54

민 31:25-54

전리품 분배는 정결의식 후에 이루어졌다. 즉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전리품 분배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절반, 나머지 회중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전리품중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의 비율도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오백분의 일, 그러니깐 거의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에 반하여 회중은 전리품의 오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예를 들면 포로 사람의 경우 총 삼만이천명중 군인들이 만육천, 회중이 만육천씩 분배 받았지만 하나님께 드려야 할 몫은 군인들이 32명, 회중이 320명으로 열배가 많았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백만명중에 일만이천명이라고 했다. 그러니 군인이 거의 십분의 일 수준이니, 군인들이 열배정도 더 전리품을 분배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전리품을 군인이나 회중이나 나눠 갖는 것은 마땅하나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군인을 배려한 분배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전리품이 아니다.

“군지휘관들, 곧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와서 보고하였다. “소관들이 이끄는 부하들을 세어 보았는데, 우리 쪽에서는 한 사람도 실종되지 않았기에,”[48,49]

바로 아군의 희생정도다. 죽은 군인이나 실종된 군인이 한 명도 없이 일만이천명이 ‘다’ 복귀한 것이다. 군지휘관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다. 그래서 전리품에서 분배받은 패물 즉 금붙이들과 사사로이 전장에서 탈취한 금붙이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이것을 기념했다.

// 궁금한 것은 ‘십분의 일’은 어디 갔을까? 그러니 특별한 소득에 대한 ‘십분의 일’이 당연시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지휘관들이 금붙이를 드린 것 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발적 드림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치열한 삶 속에서 얻은 은혜에 대한 감사는 따지기 어렵다.

++++

“모세에게 말하되 당신의 종들이 이끈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 우리 각 사람이 받은 바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들을 여호와께 헌금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민 31:49,50]

전쟁에서 승리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전리품이 아닌 바로 아군의 희생정도다. 전리품을 분배한 후 군지휘관들이 모세에게 죽은 군인이나 실종 된 군인이 한명도 없이 일만이천명이 ‘다’ 복귀하였다고 보고했다. 전장에서 지휘한 군지휘관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전리품분배와 그에 따른 하나님께 드릴 헌물 (제사장과 레위인 몫으로 돌릴)외에 자신들이 받은 전리품 중 금붙이 패물과, 전장에서 군인들이 사사로이 탈취한 금붙이를 모아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군지휘관들은 이것을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라고 밝힘으로써 한명의 희생도 없었음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자신들의 생명값을 드린 것이었다.

나의 헌물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득에 대한 감사인가? 건강에 대한 감사인가? 자녀에 대한 감사인가? 근본적으로 나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감사여야 한다.

//속전은 한명당 5세겔이었으나 실제로 지휘관들이 일만이천명의 군인들을 대표해서 일만 육천 칠백 오십세겔의 금붙이를 드렸으니 한세겔 조금 더되는 속전을 내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