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9:17-26

대곡문화.

대신 울어주는 문화. 우리나라에는 곡비가 있었다. 품삯을 받고 대신 울어주는 노비를 뜻한다. 주로 여자여서 ‘곡녀’라고도 한다. 원래 상례 (장례) 규정에 따르면 대곡하는 것은 상주의 몸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한다. 죽은자보다 산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위해 돌아가며 곡을 하다보니 대곡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나중에는 있는 사람이 곡하는 사람을 돈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돈받고 울어주는 것도 쉽지 않으니 대곡하는 노비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곡비가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찌 대신 울어주기를 바랄 수 있으랴.

이스라엘에도 대곡문화가 있었나보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곡녀를 부르라고 하신다.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와서 애곡하라고 하신다. 듣는자가 눈물을 흘리도록 곡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 심판에 대한 예언을 듣지 않으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을 알기 싫어하니 이보다 더 애통할 일이 어디 있으랴. 온 나라가, 민족 전체가 울어야 한다. 그런데 지혜와 용맹이나 부요함을 자랑하려고 하다니.

자랑거리는 건강도 아니요, 부의 축적도 아니요,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삶을 사는 것, 자녀들도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을 자랑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대신 울어준다. 교회의 잘못에 대해서 자정의 목소리보다 세상에서 뭐라하는 소리가 더 많은 것 같다. 개독교라는 비난은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마음에 할례를 받게하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곡비의 울음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설상가상으로 할례가 면책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못해서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해서 벌을 받아야 한다. 날이 이르면 심판을 받는다. 예수 믿는다고 쉽게 말하지 말자. 예수님이 함께 하셔야 한다. 영접한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 예수님 손잡고 다녀야한다. 예수님 손을 뿌리치고 믿는다고 한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