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2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항우는 마지막임을 알고 부인 우희에게 ‘해하가’를 지어부른다.
산을 옮길 힘이 있고 세상을 덮을 기운이 있지만 /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항우의 애마)도 달리지 않는구나 /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하리요 / 우희여 우희여 어찌할꼬
천하?를 양분하고 있던 항우의 마지막은 평생의 여인 우희에 대한 염려였을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한탄이었을까? 어찌할꼬 묻는다. 하여간 항우의 ‘해하가’에 우희 (우미인)은 ‘화항왕가’를 지어 답했다.
한나라 군인이 이미 땅을 침략해서 / 사방에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리네 / 대왕의 힘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 천한 첩이 어찌 살리요
우희는 답시를 다 부르고 칼로 자결했다는 전설이 있다.
예레미야 심정에서 우희를 발견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앞에 사면 초가의 상황이라고 예언했는데, 실상은 예레미야가 패역한 백성들의 조롱에 사면초가가 된 것이다.[10] 심지어 친구들까지 저들 편에 섰다. 오직하면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고 좌절의 심정을 토해낼까? ‘어찌 살리요’ 항우나 우희보다 예레미아의 상황이 더 심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해야 하는데… 예레미야는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간구한다.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 참고 인내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생과 슬픔을 보며 하나님과 함께 함이 부끄러움이라는 조소를 [렘 20:18]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국도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러움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고후4:8 말씀이 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세상을 인내함으로 이길 큰 능력이다. 이 큰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세상을 이길 능력이 없다. 어찌 살리요. 어찌살리요. 통곡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몰랐던 항우와 우희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본다. 나도 부끄러움을 너머 면류관을 본다.
나도 하나님을 바라본다. 사면초가라면 위를 향해 눈을 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