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1-6
다리오왕 제이년에 팔월에 선지자 스가랴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다리오 왕 때니 에스더시대보다 연대가 조금 더 빠르다. 에스더는 무슨 연유였던 간에 귀환하지 않고 포로지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다면 스가랴는 돌아온 유다인들의 이야기다. (배경을 꼼꼼히 따져봐야 헛소리를 안적는데… )
예언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다라고 시작한다. 당대가 아니라 과거 조상의 불순종으로 시작한다. 너희 조상들은 내게 돌아오지 않아서 내가 진노했는데 너희는 내게로 돌아와라. 내가 다시 너희편이 되겠다. 너희 조상들처럼 불순종하지 말아라. 너희 조상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뿔뿌리 흩어지고 말았쟎느냐. 선지자가 언제까지 회개하라고만 외치겠느냐. 너희 조상들도 내게 돌아오라는 똑같은 말을 들었지만 각기 제길로 가서 결국 포로생활이라는 벌을 받았다. 포로에서 돌아와서야 주님께서 조상들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내리셨다는 것을 깨닫지 않더냐.
주님께서는 지리적으로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에게 이제는 영적인 포로상태에서 돌아오라고 명하신다. 포로국에 남아 제국에서 살지 않고 예수살렘으로 결심하고 돌아왔다면 삶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고 스가랴서의 서문을 여신다.
이 아침에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단 하나 주님편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편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로 돌아오시는 길이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눅 15:20 새번역)
주님은 우리가 돌이킨만큼만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시다. 달려오신다. 아들은 먼나라에서 지리적으로만 고향을 향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아버지께 순종하기로 마음의 방향도 바꾸고 왔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는 ‘종’이 되겠다는 결심이고, 종은 ‘순종’하는 자다. 그런데 순종하러 왔더니 자녀 삼아 주신 것이다.)
돌아온 유다인들에게 스가랴를 통해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결국은 사역이 아니라 순종의 삶이다. 청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