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3

타다 꺼낸 나무토막

스가랴는 계속해서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고소하는 환상을 보았다. 피고 여호수아가 누군지 죄명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판자 주님은 사단의 고소가 잘못되었다고 사단을 책망, 거듭책망하셨다. (환상은 당시 독자들에게는  선명한 메세지를 주었겠지만 우리는 연구해야 알 수 있다. 그냥 읽히는 대로 따라간다.)

주님은 여호수아를 불에서 꺼낸 나무토막에 비유하셨다. 고통과 핍박에서 구원받은 존재다. 주위의 천사는 여호수아의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거룩한 예복을 입혀준다. (스가랴의 요청으로?) 머리에는 관도 씌워주었다. 눅15장 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연상된다. 그러고보니 사단의 고소를 기각하며 책망하실 때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했다”고 주님은 설명하셨다. 그렇다. 사랑이다. (주님의 천사가) 함께하셨다.

(용서는 사랑의 시작이지만 끝이 아니다.) 관을 쓰고 거룩한 예복을 입은 여호수아에게 경고가 주어졌다.  ‘네가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여기에서 섬기는 사람들 사이를 자유로이 출입하게 할 것이다.” 가나안 땅을 앞둔 그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명령과 다를게 없다. 그렇다. 순종이다. 순종을 요구하신다.

(순종은 개인적이지만 교회적으로도 적용해야 한다.) 주님은 여호수아와 동료들에게 함께 순종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동료들이 순종의 상징이라고 하시면서, ‘새싹’이라는 ‘주님의 종’을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이어서 일곱 눈을 가진 돌을 놓으셨다. 이 돌에 이 땅의 죄를 하루만에 없애겠다는 글을 새겼다. 그날이 오면 태평성대, (어진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태평성대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셨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어 불가운데 타고 있는 우리를 꺼내주셨다.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거룩한 예복을 입혀주셨다. 관까지 씌워주셨다. 그리고 순종하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 공동체적으로. ( 스가랴 당시에는 여호수아와 동료들이 순종의 상징이었으나 불완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셔서 완전한 순종의 본이 되셨다. 우리도 불완전하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본다. 그날을 기다린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사 61:3)

어제 본 우주적 예루살렘은 하나님나라요,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타다 꺼낸 나무토막같은 우리들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셔서 거룩한 예복, 그리스도로 옷입혀 주셨다. 은혜요 감사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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