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3)

// 약속, 예언의 내용은 같은데 상황과 반응은 사뭇 다르다. 시리아와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공 앞에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 왕에게 대적들의 연합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대적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예언의 말씀이 미덥지 않으면)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하스는 불신하고 앗수를 의지하고 만다. 이때 불신하는 (징조를 구하지 않은) 아하스에게 주신 말씀이 첫번째다. 이 불신에도 주님은 약속을 지키셨다. 두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때 요셉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두 예언의 촛점은 동정녀 탄생이 아니다. (특별히 이사야의 예언은 동정녀 탄생과 상관이 없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만이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유다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지만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불순종했다. 요셉은 예수님 족보 제일 마지막에 이름을 올렸고 그는 순종했다. 그러니 동정녀 탄생에 대한 믿고/안믿고 문제가 아니다. 대신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은 ‘믿고/안믿고’를 떠나 주님의 백성들에게 임마누엘을 약속하셨다. 임마누엘의 약속을 누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가져온다. 동정녀 탄생을 믿고 안믿고가 아니라 임마누엘의 약속을 따라 사느냐가 중요하다. 임마누엘의 삶을 사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대신 자신과 세상을 의지 하는 것이 불신이다. 임마누엘의 삶에는 동정녀 탄생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해야 할 길이다.

의로운 사람 요셉. 그는 자신의 생각(가만히 끊고자 함)을 버리고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였다.  (오늘날 세상에서 이만한 기적이 또 있을까?) 의롭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의로운 사람의 집안을 통해 주님이 오셨고 온전하고 완전한 (흠 없는) 의로우신 분으로 사셨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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