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열심

이사야 9:1-7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2)

‘생명을 주는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라고 세례자 요한은 증언했다. 그리고 덧 붙였다.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그는 (그리스도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우리는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불순종하게 하는 악한 영을 따라 살았다. 흑암에 행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빛이 비쳤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은 단순히 삶의 곤고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의가 창궐한 세상을 뜻한다. 그래서 노예로 살아가는 것으로 표현되곤 한다. 고통받고 멸시받는 삶이다. 불의하기 때문이다.

성탄절은 참 빛이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성부 예수님을 이땅에 한 아이로 보내 주셔서 흑암의 권세아래 신음하는 우리에게 다시 생명의 빛을 비춰 주신 (아직도 비춰주시는) ‘주님의 열심’을 되새기는 날이다.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셨지만 (변방나라에서 아기로 태어나셔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세상은 알아보지 못한다. 이천여년 전에 주님은 이렇게 오셨고 빛으로 사시면서 세상이 그분을 알아보도록 ‘주님의 열심’을 이루셨다.

‘주님의 열심’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주님의 열심으로 살아야 할 이유다. 성탄을 기념하고 감사하면서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정의과 공의로 살아갈 힘을 구한다.

하나님나라는 ‘정의와 공의로’ 영원히 보존되는 나라다. ‘소금과 빛’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주님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이유는? 정의와 공의는 소금과 빛으로 비유된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은 정의와 공으로 사는 것이다. 성탄절은 정의와 공의로 영원히 보존되는 하나님나라를 굳게 세우시는 주님의 열심을 되새기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