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4

주님께 성결

‘그 날’은 ‘여호와의 날’이다. 주님의 날이다. 이 날의 특징은 주님나라의 백성과 이방백성들간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주님 백성들의 재물이 약탈되어 보이는 앞에서 빼앗기기도 하지만(1) 이방나라들의 보화 곧 금과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지는(14) 날이기도 하다. 주님의 백성 절반이 사로잡혀가도 남은자가 있듯이(2)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이방나라들 중에도 남은 자가 있다(16).

주님의 날에 일어날 일의 징조를 하나 하나 따져보기에는 말씀이 쉽지 않다. 그러나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는(마 25:33) 날이다. 오른편의 양이 ‘남은 자’다.

‘주님의 날’에 ‘남은 자’가 되는 것은 ‘주님께 성결’한 자다. 거룩한 자들이다.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기록된 흉패를 둘렀던 (대)제사장뿐 아니라 하찮은 물건에 까지 ‘주님께 성결’이라는 표어가 기록되는 날이다. 그 날에는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한다고 하신다. (가나안 사람은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요, 재물을 섬기는 사람들을 뜻한다.) 더 이상 두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 만물이 ‘주님께 성결’한 자가 되는 날이다.

주님이 천하의 왕이 되시는 날이다. 주님이 홀로 한 분 주인이시요, 주님 이름이 경배 받으실 단 하나의 이름이 될 것이다. (14:8)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사61:10)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정결하게 살게하소서.

스가랴 13

불 속에서 완성되는 구원?

(1) 그 날에 (슬피 우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릴것이라고 하신다. 슬피 우는 것이 끝이 아니다.

(2) 주님은 (죄와 더러움을 씻는 그 날) 우상도 거짓 선지자도 악한 영의 세력도 이 땅에서 진멸하실 것이다. 새 땅이 되는 것이다.

(3) 더이상 예언이 필요 없는 날이다. 더이상의 예언은 주님의 이름을 빙자한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자녀가 예언을 한다면 부모는 자녀를 칼로 죽여야 한다.

(4) 그 날에 선지자들이 (이들은 선지자 행세를 하던 거짓 종교지도자, 삯군 목자들이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가르침이 들키지 않도록 선지자 복장을 벗어 버리고,

(5) 자신은 선지자가 아니라 농부라고, 심지어 노예라고 사람들을 속이면서까지 선지자 행세 한 것을 부인할 것이다.

(6) 사람들은 선지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문책할 것이고 선지자들은 끝까지 자기는 선지자 행세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7) 주님은 칼에게 내 ‘목자’, 내 ‘짝’을 치라고 명하신다. (11장의 삯군 목자를 제거하시고 양 떼들을 흩으신다는 내용과 비슷하다.) 그러나 작은 자는 돌보신다고 하신다.

(8) 주님의 심판은 준엄하다. 온 땅의 2/3는 멸망하고 1/3만 남을 것이다.

(9) 남은자 1/3을 불로 정결케 하신다.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께 간구할 때 주님은 들으실 것이며 그들은 내 백성이라고 하실 것이다. 그들은 주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이다.

내가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왕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에서 나를 씻었기 때문이고, 우상과 거짓 선지자와 악한 영의 세력에서 떠나 (심지어 가족보다) 주님을 더 의지(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칭 종교지도자 행세를 부리는 사람들의 부끄러운 가르침에 속아서는 안된다. 작은 자로 살아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믿음을 지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스가랴 12

종말에 관한 말씀은 어렵다. 여러번 읽어도 문맥이 매끄럽게 흐르지 않는다.

  1. 하늘과 땅과 사람을 창조하신 주님이 주님의 백성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이다.
  2. 주님이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예루살렘은 주변의 모든 민족을 비틀거리게 할만큼 강하게 할 것이다. (예루살렘이 포위당하고 하나님나라가 포위당한다고 하여도)
  3. 사방에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날에, 세상이 예루살렘을 대항할 때에 주님은 예루살렘을 (천하장사도 들 수 없는) 반석이 되게 할 것다. 세상 모든 민족이 힘을 모아도 (천하장사 여럿이 달라 붙어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적들이 다칠 것이다.
  4. 대적하는 이방민족의 말과 마병은 쳐 부시고, 유다 백성은 지켜주실 것이다.
  5. 유다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이 강해진 것이 주님 때문이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겠지만
  6. 주님은 유다 지도자들을 용광로와 횃불로 사용하셔서 주변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다. 대신 예루살렘는 보호하셔서 예루살렘에 백성들이 계속해서 살게 하실 것이다.
  7. 유다를 먼저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다윗집안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보다 유다의 영광의 크다고 하신다. (그러니 유다는 혈육적 유다인보다 구원받은 우리들, 하나님나라 백성이라고 이해하는 게 더 좋을 듯 하다.)
  8. 주님은 예루살렘 주민도 보호하신다. 사회적 약자, 가난한자에 더 관심을 가시지고 이들을 다윗같이 다윗집안같이 주님과 주님의 천사처럼 사람들 앞에 세우실 것이다.
  9. 그날 (이방나라들이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치러 오는 날)에 주님은 모든 이방나라를 멸망시키시겠다고 하신다.
  10. 그러나 예루살렘에 사는 주님의 백성은 보호하실 것이다.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구하는 영을 부어주셔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셔셔) 주님을 의지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찔러 죽인 그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죽었어야 함을 깨닫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11. 그날은 모든 이방을 물리친 승리의 날 같지만 은혜와 용서의 영을 받은 예루살렘 거민들, 주님의 백성들도 슬프게 울 것이다.
  12. -14 온 나라가 슬피 울 것이다.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슬피 울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개인적으로 슬피 울 것이다.

반복되는 그날은 구체적으로 무슨 날일까?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이 주님과 주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날이다. 심판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다. 그날이 언제 어떻게 임했고, 임할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창조하신 주님이 이기신다는 것이고, 주님의 백성들은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이다. 주님에게는 승리의 날이지만 주님의 백성에게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날이기도 하다. 주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방민족들보다 나은게 없기 때문이다. 은혜의 영, 용서의 영을 부어주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한 우리는 다음의 말씀으로 위로 받는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사 61:3)

종말론적 예언이지만 매일매일 삶에 닥치는 문제이기도 하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는 자에게 순종할 힘을 주신다고 하셨다. 내 자신을 돌아봐도 하나님 뜻대로 해야 할 근심 투성이다. 슬프다.

 

스가랴 11

삯군 목자

(1)    (아궁이 문을 활짝 열어 장작들이 잘 타게 하듯이) 레바논의 백향목이 불사르게 하라고 하신다. (귀환한 백성들이 머물곳이 부족할 정도로 번성한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터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    백향목이 불살라질뿐 아니라 잣나무 큰나무 상수리나무 등등 무성한 산림이 넘어지고 찍혀버린다.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터전이 무너진다.)

(3)    목자들은 (하나님나라 백성들, 양 떼를 먹이는 지도자들일 것이다) 목장이 황폐해지자 통곡한다. 어린 사자 (목자들과 대칭되기 때문에 젊은 차세대 지도자라고 이해)들도 자신들의 목장이 황폐해지자 통곡한다.

(4)    주님은 스가랴에게 목장의 (황폐해진 목장에서 잡혀 죽게 될) 양을 먹이라고 명하신다. (왜? 잡혀 죽을 양을 먹이라고 하실까?)

(5)   당시 목자들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사고 팔고’ (매매,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었다. 매매에 관심이 없는 목자라고 하여도 양 떼들을 제대로 돌보지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6)   주님은 (목자들의 직무태만에) 양 떼들을 마져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목자들이 양들을 매매하듯이 백성들을 이웃나라 이웃왕에게 넘겨주신다고 하셨다. 이웃나라 이웃왕이 백성들을 학대해도 구해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목자들의 잘못에 양 떼에게 그 피해가 그대로… ㅠㅠ)

(7)   (이런 상황에 처한 양 떼를 스가랴에게 먹이라고 하셨으니, 4절) 스가랴는 순종해서 양 떼를 돌보았다. 스가랴는 양 떼 중 억압 당하는 (사회적 약자, 가난한 자) 양을 집중적으로 돌보았다. 은총과 연합 (은혜와 평강)으로 돌보았다.

(8)   (스가랴는 양을 잘 돌보기 위해 세명의 목자를 세웠다.) 그러나 세 목자는 불순종했다. 그들은 삯군에 불과 했다. 삯군 목자들은 오히려 스가랴마져도 싫어했다. 스가랴는 세 목자를 한달만에 다 해고해 버렸다.

(9)   스가랴도 목양에 지쳤을까? 그마져도 “될대로 되라” (케세라 세라?) 라는 마음을 품었을까? 양 떼에게 ‘될대로 되라’고 말하였다. (양 떼들마져도 목자의 음성을 안들은 듯하다.) 삯군 목자들에게 잘못 길들여진 결과다.

(10)   스가랴는 은총이라는 목양의 원칙 중 하나를 꺾어 버렸다. 예언자 스가랴라도 주님께서 ‘양 떼를 먹이라’라고 하신 언약을 지킬 수 없었다.

(11)   (더 이상 ‘양 떼를 먹이라’는 언약은 지켜질 수 없는 것일까?) 은총의 언약은 취소되었고 양 떼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주님의 말씀의 의한 것임을 깨닫는다.

(12)   스가랴는 양 떼들에게 목자로서의 품삯을 쳐달라고 하였고 그들은 품삯으로 은 삼십개를 주었다. (은 삼십은 ‘종’ 한명의 생명값에 불과했다. 출21:32) 목자를 종으로 취급한 것이다.

(13)   주님은 스가랴에게 은 삼십을 토기장이에게 주라고 하셨고 스가랴는 순종했다.

(14) 스가랴는 ‘연합’이라는 목양의 원칙마저 꺾어버렸다. 더 이상 형제가 동거하는 아름다움도 없어진 것이다. (사랑이 식은 교회라고 해야 하나)

(15) 주님은 삯군 목자들이 양을 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을 뺏으라 하셨다.

(16) (왜냐하면) 삯군 목자는 잃어버린 양에 관심도 없고, 흩어진 양들을 찾지도 않고, 다친 양을 치료할 생각도 않고, 양 떼를 먹이지도 않고, 오히려 살찐 양을 잡아 먹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17) 주님은 이런 삯군 목자의 능력 (오른팔)과 욕심 (오른쪽 눈, 안목의 정욕)을 도려내실 것이다.

솔로몬 성전만 믿고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만 가르친 지도자들, 그 결말은 예루살렘 패망과 포로 생할이었다. 포로에서 귀환하고 성전을 재건한(할)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다가 올 미래도 다르지 않다고 하신다. 은혜 베풀기로 하셨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약속에(8:15) 취해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다. 주님은 특별히 지도자들, 삯군 목자들의 잘못에 진노하신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삯군 목자에 길들여진 양 떼에게 떠넘겨진다. (뭐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ㅠ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스가랴 10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 9장은 ‘하나님의 백성은 형통하고 아름다우며, 자자손손 (청년과 처녀) 태평성대 (풍성한 햇 곡식과 새 포도주)를 누리게 될 것이다’ 로 끝났다. 이 하나님나라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겸손하신 왕이 다스린다고 그냥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기도하고 순종하는 백성들이 요구된다.

(1) 하나님나라 백성은 철에 따라 (약속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비가 내려야 할 때 (봄비가 와야 할 때) 비를 간구해야 한다. (간구하면) 주님은 비를 (충족하게) 내려주셔서 약속하신 소출을 수확하게 하신다.

(2) 우상들은 지각도 능력도 없으며, 술객과 무당들의 위로도 헛되어, 이들을 의지하면 목자 없는 양처럼 떠돌이가 되며 고난을 당하게 된다.

(3) 주님은 (숫염소처럼) 대적하는 지도자들(목자들)에게 화를 내시나 대신 유다족속은 훈련된 주님의 군사로 쓰실 것이다.

(4) 주님이 모든 지휘관들을 (훈련된 유다 족속에서) 세우시고 진두지휘 하실 것이다.

(5) 주님이 군대에 함께하시며 친히 대장되셔서 대적 원수를 물리치시고 대적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

(6) 주님의 군사 유다 족속을 세워주시고 이스라엘도 구원하실 것이다. 이렇듯 주님은 긍휼하시다. 언제 포로로 잡혀가도록 내버려 두셨나는듯, 백성들의 왕이 되시며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실 것이다.

(7) (에브라임) 이스라엘 백성들도 주님의 군사가 되어 대대손손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다.

(8) 목자가 휘파람 소리로 양들을 부르듯이 백성들을 불러모아 다시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9) 주님께서 흩으셨으나 원근각지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자들을 자녀와 함께 다시 불러모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10) 사방 원근각지에서 다시 돌아 오게 하시니 오히려 거주할 곳이 부족할 것이다.

(11) 백성들을 세상풍파로부터 지켜주시며, 세상나라들의 교만은 꺾으실 것이다.

(12)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견고할 것이며, 주님의 이름으로 (왕의 자녀로) 행할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다. 백성과 왕의 관계는 간구하고 응답하는 관계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주님께 간구할 수 밖에 없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주님의 이름으로 순종할 수 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는 자는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아니요, 주님을 의지 하지 않으니 세상풍파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특별히 자기 자신만의 노하우를 드라빔처럼 의지하는 지도자,  거짓 말씀으로 양들을 가르치는 삯군 목자들에게서 배운 형통은 오히려 세상풍파에 시달리게 한다. 주님은 교만을 꺾으신다. 주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주님을 의지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