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승천 후 열흘이 지난 오순절 /그들이/ 다같이 한곳에 모여있었다. /그들이/ 앉은 온 집에 성령이 가득 임했다. /그들이/ 서로 볼 수 있도록 (성령이) 각각 임했다. /그들이/ 다 거룩한(성) 영으로 채워졌다. /그들이/ 다 성령의 (능력으로) 지배를 받아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그 때
세계 곳곳에서 예루살렘에 순례 온 유대인들이 있었다. 이들이 각각 자기나라 말로 /그들이/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랍고 신기해서 서로 이렇게 물었다. “갈릴리 출신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각 나라의 언어로 말할 수 있지?” 이들은 자기네 나라의 언어로 그들이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에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이들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그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말했다.
성령 강림은 그들 (제자들) 사이에서는 들을 수 있었고 볼 수 있었다. 바람소리로 들렸고 불꽃으로 보였다. 결정적 증거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증거가 기도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는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게 진짜 놀라운 것은 제자들이 (배운적이 없는 나라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다는 것이다. 승천 직전까지 이스라엘의 일(세상 일)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들이 하나님나라의 일에 대하여 말했다는 것이다.
나도 새 술에 취하고 싶다. 그래서 크마애를 잘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일’은 크마애를 잘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하신다. (아직도 크마애를 버벅거리는 핑계인가) 반박할 수 없는 핑계라고 하더라도, 오순절 성령강림의 초자연적인 역사의 정점은 (방언의 은사가 아니라) 제자들이 ‘하나님(나라)의 큰 일’을 말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이여 내 입을 열어 ‘하나님(나라)의 큰 일’을 말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