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나은 사람과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 개인의 경건과 능력에 주목하자 베드로가 반문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언급하고,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그 이름이 앉은뱅이를 고쳤고,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 낫게하였다고 선언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의 이름이다.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 당시 흔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주님만의 이름이 아니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단순히 소망을 담은 예수라는 이름이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가 되신 것이다.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이 예수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바로 그 그리스도 예수라고 밝혔다.
그러니 회개하고 돌이켜 죄사함을 받아 새롭게 되라고 한다. 새롭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 예수가 주인으로 오신다. 물론 이 과정들은 순차적이지 않다. 그리스도 예수가 오셔서 이 일을 이루신다.
세상이 왜 우리를 주목하는가? 어떻게 나의 경건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능력이 주목받도록 할 수 있을까? 자꾸 내가 세상적으로도 잘 되어야 한다는 유혹이 있다. 내가 경건하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유혹. 그러나 내게 필요한 것은 경건의 모양이나 능력이 아니다. ‘경건의 능력’이다. 이것은 예수의 이름만으로 가능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이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다. 능력이 아니라 믿음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