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정 4:1-12

예수 그리스도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의 경건과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이 낫게 했다고 자신들에게 쏠린 백성들의 주목을 주님께로 돌렸다. 이때 종교지도자들, 제사장,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 그리고 사두개인와서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전했다고 베드로와 요한은 잡았으나 밤이 늦어 일단 가두었다. 그럼에도 믿는 자의 수가 더 늘어났다.

다음날 재판이 벌어졌다. 부활을 가르쳤다고 두사람을 잡아들인 사두개인들이 포함된 무리들뿐 아니라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총 출동해서 심문했다. ‘무슨 권세,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답을 했다.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이 예수는 ‘너희들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10-12 새번역)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십자가고 그리스도는 부활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베드로의 신앙고백이다. 베드로의 이 고백도 혈육이 아닌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알게하셨듯이 오늘 대답도 성령이 충만하여 대답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답이 있다. 다른 이름은 없다. 작년 한해를 강타한 루터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요한복음 9장의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십자가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이 땅에서도 구원(나음)을 받았았다. 요한복음 사건에서 눈 뜬 맹인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라는 고백을 했다. 그는 육신의 눈도 떴지만 믿음의 눈도 떴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결코 보지 못한 믿음이었다. 그 사건의 반복이다. 믿음이 없이는 본다고 하여도 맹인과 다름없다. 차라리 맹인이 되었더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래로 있느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베드로의 입을 통해 다시 울려퍼진다.

종교적 가르침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무슨 권세? 누구의 이름? 답은 ‘하늘의 권세’, ‘예수 그리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