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 사두개인,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전문가처럼)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놀랐다. 더군다나 십자형을 받은 예수를 따르던 무리였었다면 당연히 두려워서라도 어디 숨어야 했는데 당당했다. 무엇보다도 앉은뱅이였던 자가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서있었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전문가처럼 담대하게 말했다. 메시야 구세주에 대해서 성경을 풀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시 랍비였다. 앞에서 언급한 제사장,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은 랍비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소위 엘리트교육을 받았다. 박사학위도 있고 교수직함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감히 어디 가방끈이 짧은, 아니 대학근처에도 못가 본 사도들이 가르치려 드니 적지아니 당황했을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 였다. 예수님이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라 이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막 6:3) 라는 평가을 받으셨다. 사도들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똑같이 반복된다.
저들이 내린 결론은 라이센스가 없으면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격이 아니라 자격증이 없으면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 예수님의 가르침은 허가 받지 않은 내용이니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종교기득권자들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문제를 세상법정이 아닌 하나님 앞으로 가져갔다.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할 권리가 있다. 최상위 법을 들고 나온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촛불을 들고 모인) 백성들 때문에 저들은 어쩔 수 없이 베드로와 요한을 석방할 수 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이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누가는 나음을 받은 앉은뱅이의 나이가 사십여 세나 되었다고 사족을 달았다. 그는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거의 한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아왔던 것이다. (물론 고침을 받기까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석방되어 다른 사도들과 제자들, 성도들에게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전했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세상법정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위협가운데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위협가운데서도 치유의 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자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성령충만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나라)의 큰 일을 전하는 것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