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32-5:11

감출 수 없다

사도행전 2장 마지막 부분의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이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특별히 나눔을 통해 가난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먹고 마시는 나라가 의와 평화와 기쁨의 하나님나라로 세워져 갔다. ‘바나바’라 불리는 요셉이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사도들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다는 구체적인 예까지 들었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은 모양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이야기가 이어진다. 요셉이 사도들에게 위로자라는 칭찬을 받은 것이 (요즘으로 하면 안수집사나 장로로 장립받는 것이) 부러웠을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경건의 모양만 흉내내었다. 부부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문제는 ‘다’ 가 아니라 일부를 감추고 ‘얼마만’ 가져갔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고 아나니아를 책망했다. 성령을 속였다.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성령을 거스리는 잘못은 돌이킬 수 없다. 아나니아는 죽임의 형벌을 받았다. 부창부수인가?

세시간 후 삽비라가 사도들 앞에 섰다. 삽비라는 남편 아니니아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베드로는 삽비라에게 땅을 판 값이 이것뿐이냐고 물었고 삽비라는 ‘예’ 라고 대답했다. 결국 삽비라도 죽임의 형벌을 받았다. 성도들뿐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해 들은 사람들은 모두 큰 두려움에 빠졌다. 당연히 우리도 두려워해야 한다.

천국은 자기 소유 전부를 팔아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의 소유 전부를 팔아 사야할 보화가 묻힌 밭이요, 값진 진주가 하나님나라다. 두 렙돈밖에 없던 과부도 자기 소유 전부를 드렸다. 일부를 감추고 얼마간으론 하나님나라에서 살 수 없다.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경건의 능력은 공동체를 살리지만 경건의 모양만 있으면 공동체를 상하게 한다. 곪은 부분은 도려내야 한다. 감춘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때마다 순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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