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

삼천명이 세례받고 믿는 남자가 오천이 되고… 제자가 많아졌다. 그때 세상 곳곳에서 온 헬라말을 쓰는 유대인들이 본토박이 히브리 말을 쓰는 유대인들에게 불평했다. 자기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도들, 제자들이 세상 곳곳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말을 했다고 하여도 예루살렘 공식언어는 히브리어, 아람어이었을 것이다. 언어장벽이 엄연히 존재했다고 봐야한다. 당장 내 경우에도 크마애 직원들과 회의 때 언어장벽이 심하다. 당연히 한국어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더 잘되는 직원과 일하는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다. ㅠㅠ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헬라말을 쓰는 일곱 명을 세웠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하였는데, 온 무리가 헬라말을 쓰는 일곱 명을 택해 사도들에게 추천했던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헬라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영어를 좀 한다. ㅎㅎ) 문제의 본질이 구제를 차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에 있었다는 것이다.

소통이 되니 원망(불평) 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지고 제자의 수가 더욱더 많아졌다. 즉 많아진 제자의 수가 구제문제의 본질이 아니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스데반 이야기는 일곱 명의 사역이 단순히 구제관련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는데 스데반, 빌립이 한 몫을 한다. 그냥 집사?가 아니었다.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명중 하나였다. 이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으며, 또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다고 한다. (헬라말을 잘하는) 스데반은 구레네 사람, 알렉산드리아 사람, 길리기아,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논쟁했다.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이길 수 없었다. 이 스데반을 모함하여 공회에 잡아왔다. 피고석에 있는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았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그 얼굴에서 빛났을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만은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구제는 (도움을 주든, 받든)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주된 뜻이겠으나 사역이나 직무로 번역되기도 한다. 사실 초대교회 내에는 가난한 자가 없으니(4:34)라고 누가가 기록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디모데후서에 두 번 이 단어가 사용 되었는데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권면할 때 (4:5) ‘직무’로 번역되었고, 바울이 마가가 자신의 일에 유익하다고 말할 때 (4:11) ‘일’로 번역되었다. 즉 구제란 ‘가르치는 일’도 된다.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이 ”우리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했을 때 말씀 ‘사역’에 ‘구제’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음 그렇다면 헬라파 과부들은 ‘사도들의 가르치는 사역’에서 빠졌다고도 볼 수 있다. 말이 안통해서. 설마 사도들이 헬라어 방언으로 가르쳤을까? 히브리파 유대인이 헬라파 과부들을 가르칠 수 없어서 생긴 문제였다. 그래서 헬라어를 잘하는 스데반, 빌립 등 일곱명을 세워 헬라어 성경공부반 교사로 삼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가르침에 차별이 없으니 7절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로 이어진다.

헬라어 성경공부반도 개설해 주세요.

//그러고보니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치는 일로 구제(사역)하게 하심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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