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순교로 사도들을 제외한 성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다. 누가는 곧바로 (헬라어 성경공부반의 교사로 뽑힌 일곱명 중 하나인) 빌립이야기로 넘어간다. 장소도 사마리아 성이다.
‘그리스도’가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 곧 복음전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는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기록했다.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빌립은 예수님처럼 (찾아가서) 가르치고 병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나라를 전파했다. 예루살렘에 앉아서가 아니라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유대인인 빌립의 사마리아행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이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한 그 사랑에 대한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없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과 북이 가깝지만 멀듯이) 사마리아는 유대인에게는 가지 말아야 할 이방, 즉 땅끝과 다를 바 없었다. 빌립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것으로 적용했을까? 성령의 이끌림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전파된 결과 사마리아 성에는 큰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나라는 의와 평화와 기쁨의 나라다.
복음을 듣고 세례받은 자 중에는 마술사 시몬도 있었다. 그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두로부터 시느님, 갓몬이라는 (신이 내린 능력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마술사였다. 그런 시몬도 빌립에게서 하나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동안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의 변화를 시몬은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마술이나 속임수가 아닌 능력에 그 역시 믿고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으며, 빌립의 표적과 능력에 놀랐다.
하나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르치는 것은 믿고 세례받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 ‘믿다’ 동사가 ‘믿음’ 명사가 되기위해선 보혜사 성령님이 필요하다. 성령을 받지 못하였기에 시몬은 믿고 세례받았지만 빌립의 능력과 표적을 이해할 수 없어서 놀랄뿐이었다.
성령받기를 사모해야할 이유다. 은사를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큰 일을 깨닫기 위해서다. (언제까지 놀라기만 할 것인가.) 빌립이 사마리아로 내려갔다는 사실이 곧 복음의 능력이라고 되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