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10-19

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사울. 그에게도 필요한 것은 성령충만이었다. 사마리아 성도에게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필요하다.

사울이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고 있던 사흘, 주님께서서는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부르셨다. 주님은 사울이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기도중에 보았다고 말씀하시며 아나니아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아나니아는 자신의 생각, 즉 사울은 ‘그리스도’의 도에 해를 끼쳤고 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님께 아뢨다.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가라’고 하셨고 아나니아는 순종했다. 제자는 순종하는 자다.

제자 아나니아는 사울을 안수하며 “형제 사울아”하고 불렀다. 성령 충만의 역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이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임을 다시 본다. 핍박하던 자를 , 핍박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형제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힘은 성령충만 외에 다른 곳에서 나올 수 없다.

아나니아의 안수로 사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육의 눈만 뜬 것이 아니라 엉적인 눈도 뜬 것이다. 사울은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졌다고 누가는 기록한다. 예수님을 만나고도 보지 못할 수 있고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한다고 해도 쇠약할 수 있다. 성령충만하여 성도가 서로 교제하니 강건해진다. 강건하니 서로 교제하게 된다.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하는 이유가 점점 더 분명해 진다.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함이다. 복음 전파를 너머,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함께 살기 위함이다.

// 성령충만은 제자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