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진 후 첫번째 기록은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반복되는 가르침은 성령충만의 외적 특징은 성도의 교제라는 것이다. 며칠동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감’을 맛본 사울은 즉시로 회당을 방문하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했다. 당연히
사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놀랐다. ‘그리스도’의 도들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 온 사람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도를 전파하다니. 그러나 사울을 더 힘을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했다. 유대인들은 놀람을 너머 당혹했다. 급기야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했다. 사울에게도 유대인들이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며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이 알려졌다. 스데반과 같이 순교의 길을 걸을 것인가? 사울이 다메섹에서 며칠이나 예수가 그리스도라 전도했을까? 사울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생겼다.
사울의 제자들은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문이 아니라 성벽을 너머 탈출시켰다. 사울은 예루 살렘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제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은 사울의 제자 됨을 믿지 않았다. 다행히 그곳에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가 사울의 회심과 사울의 전도자로의 행적을 증언해 주었다. 그제서야 사울은 제자들과 교제하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했다. 유대파 사울이었지만 그는 헬라파 유대인들과도 함께 전도 (증언도 하고 변론도) 했다. 사울의 영향이 얼마나 컸으면 예루살렘에서도 사울을 죽이려는 자들이 기세등등해졌다. 다시한번 스데반과 같이 순교의 길을 걸을 수 있었으나 이번에도 형제들이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를 거쳐 다소로 보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 지니라. 사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라는 누가의 기록은 교회에 대한 박해가 사라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받아 흩어졌으며 사울 역시 도망다녀야 했다. 교회가 든든히 서갔다는 의미는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더 건강한 공동체로) 지어져갔으며, (핍박에도 불구하고) 교회공동체에 들어오는 성도가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다고 했다. ‘그리하여’는 ‘핍박이 있어’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간다는 의미가 요즘과 참 다름을 새삼 깨닫는다.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있는 교회공동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