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32-43

‘그 때에’로 시작한다. 그 때는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던 때다. 이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녔다. 왜? 첫번째는 복음전도 였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베드로의 복음전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대신 성도들을 든든히 서가게 한 사건이 나온다. 첫번째

룻다에서 중풍병으로 8년을 누워지내던 애니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해 주었다. 이를 통해 룻다뿐 아니라 인근 사론에 사는 사람들도 주께로 돌아왔다.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는 교회에 믿는자의 수가 더해진다. 교회가 자란다. 두번째

욥바에 선행과 구제를 열심히 하던 다비다 (도르가)라고 부르는 여제자가 죽었다. (사람들은 도르가의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눕혀 두었다.) 욥바에 있던 제자들이 가까이 룻다에 베드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사람을 보내 베드로를 불러왔다. 욥바에 온 베드로는 다락에 있던 사람들을 내 보내고 혼자 무릎꿇고 기도한 후 다비다를 살렸다. 베드로는 다비라를 일으켜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비다가 다시 살아 난 것을 보여 주었다. 욥바에서도 이 사건을 인해 많은 사람이 주를 믿었다.

첫번째 두번째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주를 믿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베드로의 복음전도 사역이 아니다. 교회를 든든히 서 가게 하는 사건이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갈 때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된다. 복음전도도 필요하지만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가기 위해서는 주를 경외함으로 성도들 간에 피차 복종함 (서로 사랑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의와 평화와 희락 (기쁨)의 나라지만 당연히 희노애락이 다 있다. 성령의 위로가 함께 해야 한다. 성령께서 성도들간의 교통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오늘도 성도는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내실에 충실해야 하는데, 내실이 무너지는 교회들, 성도들의 수가 줄고 ‘가나안’이 되는 이유가 아닐까? 그 때에 베드로 사도는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찾아 다니며 주를 경외함으로 성령의 위로함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갔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다.

 

그 때에 베드로가 움직였다. 이번에는 룻다(와 사론)와 욥바지역이다. 전도여행이었을까? 누가는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에대한 심방임을 강조하는 듯 하다.

‘그 때’는 앞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31)와 연결된다.

애니아를 고치고 도르가(다비다)를 살렸다. 이 사건들로 룻다와 사론,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고, 주를 믿었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가야 교회가 자란다. 주를 경외함은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로 드러난다. 성령의 위로함은 핍박받는 교회에 풍성히 부어진다. 교회가 건강하면 교회는 자란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