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와 율법준수가 구원의 전제냐는 문제는 베드로의 “우리는 그들이 (이방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라는 선언으로 일단락되었다. 다시말하면 유대인들도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지 할례와 율법준수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온 무리는 잠잠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오히려 바나바와 바울이 전도여행을 떠났을 때 자신들과 함께 하시며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들어야 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더 큰 표적과 기사가 무엇이랴.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의 보고가 끝나자 (그래도 유대인 형제들 가운데 마음의 동요가 있었을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입을 열었다. 야고보는 베드로의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줄을 믿노라”라는 선언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함을 아모스 9장 11,12절 말씀을 인용하여 확증했다. 그리고 (사견을) 덧붙인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아라” 마찬가지로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은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이 할례와 율법준수로 이방인을 옭아맬 수 없듯이 이방인들이 할례와 율법준수의 자유함으로 유대인을 정죄해서는 안된다고 권면하자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 형제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선 서로의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한다.
캄보디아에서 불교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 캄보디아 불자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권면할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함께 지어져 가기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한다. 원리적으로는 확실하다. 적용은 항상 어렵다. 성령하나님의 인도에 예민해야 할 이유다. 야고보와 같이 성경적 확신과 개인적 의견이 조화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