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36-16:5

며칠 후 바울이 바나바에게 이전에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고 제안했다. 바나바는 동의했고 마가 요한도 데리고 가자고 말했다.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다. 이 일로 둘은 심히 다투어 갈라섰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바울은 실라를 불러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아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했다. 선교와 전도에 형제들에 대한 심방이 중요함을 배운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속적으로 함께 지어져 가야한다.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곳이다.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라는 제자를 만났다. 믿는 유대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났다. 디모데는 루스드라뿐 아니라 이웃 이고니온에서도 칭찬받는 제자였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한 이유는? 회당중심 유대인 전도의 걸림돌 제거라는 모범적인 답은 있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왜 누가는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인줄 앎이니라고 안적고 아버지는 헬라인인줄 앎이라고 썼을까? 더군다나 바울과 디모데의 (실라포함) 사역을 여러성에 다니며 예루살렘에서 정한 규례를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었다. 무할례자도 주의 은혜로 구원받는다의 본질을 훼손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더군다나 바울이. 무슨 계산이 섰던 것일까? 개인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믿음 안에서 해오던대로만 해도 믿음이 더 굳어지고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늘어간다. 그러나 열매가 있다고 하던대로만 해서는 안된다. 미리 흘깃 다음절을 보았다. 결국 성령께서 간섭하신다.

//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 앱으로 사도행전에서 ‘성령’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50개, 헬라어 프뉴마로 검색하면 67개가 나온다. 성령 대신 거룩한 영으로 번역도 되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뒷부분으로 갈수록 뜸해지기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오늘 본문에는 없다. 절묘하게 사도행전 15:36-16:5 로 구분해서 그렇다. 여기에 사도들간의 다툼이 있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다. 내가 뭘 말하려고 하는거지. 음

결론적으로 믿음 안에서 해오던 대로 행하기만 하여도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간다.(16:5) 그러나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으면 다툼도 있고 불필요한? 할례도 행한다.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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