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아덴에 혼자였다.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렸다. 혼자 아덴을 돌아보던 바울은 신전으로 (우상으로) 가득함에 마음이 아팠다. 혼자서라도 복음을 전해야 했다. 그래서 바울은
안식일에는 회당을 찾아가 유대인과 경건한 (유대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주중에는 장터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논쟁했다. 철학자들과도 논쟁했다. 철학자들은 말쟁이 (오지랖이 넓은) 바울이 무슨 새로운 철학을 소개하는지 궁금해 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님의 성육신과 부활을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문제로만 생각했다. 그들은 바울을 붙잡아 아레오바고에 세웠다. (아레오바고는 종교재판을 하던 언덕으로 알려져 있지만 재판을 하기 위해 데려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바울을 가르침이 무엇인지 변증할 기회를 주었다. 저들에게 이상하게 들리는 바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아덴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이들은 새로운 얘기를 주고 받기에 바빴다고 누가는 당시 문화를 소개한다.
아레오바고에 선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종교심이 많다는 말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종교심이 많다는 것은 ‘신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는 의미다. 아덴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신전들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했을 것이다. 신전들 중에는 심지어 이름 없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도 있다고 했다. 바울은 이름 있는 신전들도 결국은 그 신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제사하는 것이라며, (참 신이신)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신전에 머무는 분이 아니시라고 소개했다. 신전에 머무시면서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분이 아니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친히 주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이 다양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아덴사람들이 생각하듯 멀리 신들의 세계에만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수 있도록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라고 소개했다. 삶의 원천이요, 생명의 근원 (부모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러니 우상처럼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이 디자인하여 만들어 모시면 안된다고 했다. 알지 못하던 때에 우상을 만들어 섬긴 것은 봐주시지만 이제는 (알았으면)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참 신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을만한 증거라고 전했다.
바울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자 어떤 사람들은 조롱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더 받고자 했다. 그리고 그중에 몇 사람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었다.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 다마리라는 여자, 그리고 또 몇명이 더 있었다. 바울 일행이 박해가운데도 복음을 전하면 많은 사람이, 적지 않은 무리가 믿었는데 오늘을 몇 사람이 믿었다. 그래도 오늘은 누가 믿었는지 두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름이!
아덴 사람들뿐 아니라 사람들은 종교심이 많다. 신적, 영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행복을 추구하든 우주적 질서에 민감하든. 불교국가인 캄보디아도 그렇고, 점집과 무속인이 늘어가는 한국도 그렇다. 바울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소개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라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