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16

고스-로도-바다라-두로에 상륙. 드디어 수리아에 도착. (안디옥에 들릴 겨를도 없이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두로의 제자들을 찾아 일주일 머물며 교제했다. 두로의 제자들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결박과 환난을 성령의 감동으로 보고 바울을 말렸다. 두로의 제자들과 그들의 가족과의 헤어짐도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헤어지듯) 함께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은 재촉되었다. 두로에서 돌레마이로 배를 타고 내려가 그곳 형제들과 하루라도 교제한 후 다음 날 가이사랴에 도착했다.

가이사랴에는 일곱(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서 머물렀다. 빌립에게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딸이 네명 있었는데 모두 결혼하지 않았다. (예언의 은사는 주로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와 연결된다. 네 딸로 빌립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처녀라고 강조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막았다는 기록이 본문에 없다는 것이 새롭다.)

빌립의 집에 머무는 동안 유대로부터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왔다. 아가보 역시 성령의 감동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진다고 예언했다. 드디어 우리(바울 일행)도 그곳사람들과 더불어 (빌립의 네 딸도 포함되었을까?)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울며 권면했다. 바울은 어찌하여 울어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고 대답했다. 결박도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함이요, 죽음도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라면 각오되었다고 하였다. 바울 일행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기도하고 더 이상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여정에 가이사랴 제자 몇 명과, 구브로 사람 나손이 동행했다.

성령의 인도는 모순이 아니다. 바울에게는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명하시고, 주변의 제자들에게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명하시지 않았다. 성령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라 하셨고 주변의 제자들에게는 예루살렘에 간 바울이 결박과 환난 당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니 바울은 성령의 지시함애 따라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야한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했으면 더 이상 내 뜻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했으면 주의 뜻을 따르면 된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내안에 사는게 그리스도가 아니라서 그렇다. 바울과 일행 안에는 그리스도가 사셨다. ‘내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하니라’ 라는 바울의 고백을 찬양으로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