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일행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예루살렘 형제들은 바울 일행을 기쁘게 맞아주었다. 도착 다음 날, 야고보를 비롯한 장로들을 만나 문안하고 사역 보고를 했다. 야고보를 비롯한 장로들은 바울의 선교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야고보와 장로들은 수 많은 유대인 형제들이 아직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는데,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모세 율법을 배반하고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고 알고 있어서, 바울에게 적대적이니 어찌할꼬 하며, 서원한 사람 네명의 결례를 행하고 그 비용을 대신 지불하여 유대인 형제들에게 율법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이라고 권면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을 다시한번 언급했다. (이방인에게 유대 관습을 존중해 달라고 편지했었듯이, 바울에게 유대 관습, 율법도 존중하라는 압박이었을까?)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의 권면을 따라 결례를 행했다.
바울이 (잠시나마) 무너졌다. 아니, 야고보와 장로들도 무너졌다. 가래로도 못막을 일을 호미로 막으려했다. 이번 기회에 예루살렘 교회는 첫 회의 결정을 다시한번 공고히 해야 할 기회로 삼아야 했다. 예루살렘 형제들 중에는 바울 일행을 기꺼이 맞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17). 바울은 자기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셨다고 낱낱이 보고했고 야고보와 장로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9,20). 그렇다면 야고보와 장로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첫 결정이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바른 결정이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음을 선전해야 했다. 유대인 형제들을 바로 가르칠 기회였다. 물론 바울 자신은 겸손하게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원리를 적용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방 전도의 선구자적 위치에서는 따르지 말아야 할 권면이었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이렇게 그냥 덮지 않으실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를 (문화와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 그래도 한가지 원칙이 있다면 먼저 된 자들이 나중 된 자들을 더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야고보와 장로들은 예루살렘에 갇혀 땅끝에서 (지리적인 땅끝보다, 문화적 사회적 땅 끝)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생생한 일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지리적 땅 끝에와서 사는 엠들도 문화적 사회적 땅 끝을 인식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수가 많다. 하물며 파송 교회는 어떨지 뻔하다. 노래(ㄱㄷ)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