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1:1-11

애가

긴 시는 어렵다. 더군다나 긴 시의 일부부은 더 어렵다.

슬픔의 노래. 슬픈 이유는

  1. 화려함과 높음이 초라함과 낮음이 되었다.
  2.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고 친구들도 원수가 되었다.
  3. 포로로 잡혀가고, 잡혀가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픽박을 받았다.
  4. 성전을 찾는 사람도 그히고 제자장들은 할 일을 잃었다.
  5. 대적들이 권세를 잡고, 원수들이 형통했다. 대신 자녀들을 포로가 되었다.
  6. 영광이 떠나갔다. 지도자들마져도 도망갔다.
  7. 옛 영화를 기억한들 대적들이 비웃는다.
  8. 조소거리가 되었고 업신 여김을 받았다.
  9. 수치가 내 옷에 그대로 묻어있었는데도 씻지 않아 추락을 자초했다.
  10. 대적이 내 보물을 빼앗았다.
  11. 구차하게 연명하려고 보물을 팔아 먹을 것을 구했다.

이렇게 슬픈데도 하나님을 향해 크게 부르짖지 못하니 얼마나 슬프랴. 이게 다 내 잘못이니 어쪄랴. 기껏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밖에 달리 기도하지 못한다. 반대로 뒤집어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1. 부자가 되는 것이고 높은 지위를 얻어 강제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요
  2. 사랑하는 사람에게 위로 받고 많은 친구들과 노는 것이요
  3. 쉴 곳을 얻으며 핍박을 면하는 것이요
  4. 모여 시끌벅쩍 잔치를 하는 것이요
  5. 대적들을 누르고 원수들이 망하는 것을 보고, 죄가 많아도 자신들은 잘되기 바라는 것이요
  6. 영광을 누리며 지도자들이 권세를 얻는 것이요
  7. 옛 영화를 유지하여 대적들의 조롱을 피하는 것이요
  8. 칭찬을 받아야지 업신 여김을 받지 않는 것이요
  9. 더러움을 가려서라도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이요
  10. 보물을 지키는 것이요
  11. 먹을 것이라도 풍성한 것이다.

삶의 기쁨을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서 구하지 않는다. 삼자의 위치에서 보면 슬퍼도 싸다. 그러나 나를 돌아보고,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이 슬픔이 나에게 한국교회에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시인은 이게 다 죄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하나님과의 기쁨의 교제은 어디가고 입술에 풀칠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처지가 되었다. 오호 통재라!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유씨부인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바늘이 부러졌는데도 슬퍼 조문을 지었다. 한국교회의 소문도 애가를 부르게 한다. 나의 삶은 어떤가? 누군가 조문을 부르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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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도 슬퍼도 자신의 죄때문이라는 것을 아니,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니 하나님께 감히 부르짖지도 못한다. 기껏 신음 소리라도 내어서 구한다는 것이 일용할 양식도 아니고 겨우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의 이스라엘. 나라의 찬란함도 공주로서의 화려함도 없어졌다. 옛 영화를 기억하는 것 조차도 비아냥거리가 되었다. 지도자들은 도망가고 자녀들은 포로로 잡혀갔다. 이게 다 수치를 옷에 묻히고도 씻지 않은 결과다. 금고의 보화까지 빼앗기고 길거리의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우리도 옛 영화를 기억하기 전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해야 한다. 옷에 묻은 수치를 씻어내야 한다. 죄가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말씀에 뿌리 박고 열매를 맺지 않으면, 열매 없는 가지되어 잘리우고 만다. 애가 부를 날이 멀지 않다.

예레미야보다 더 슬프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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